Governance 거버넌스

민노씨: 거버넌스(Governance) 혹은 지적 된장질 : 이건 무슨…
오마이뉴스 – 박원순 “좋은 정부 만들기 고민”

민노씨에게 답글을 달려다가 길어져서 트랙백 처리를 한다.

leopord의 말에 대해 좀 지적질을 해야겠네요. 저도 전공이 정치외교인데가 쓸데없이 가방끈 길게 정치학 석사과정을 조금 더 한 관계로.. ;;

버넌스는 논의가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까지 논의였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90년대 초 중반) 최장집이 자주 던지는 프레임인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 이야기를 통해서 시민사회론이 한 동안 화두였지요. 당시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경실련 등의 민중단체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음으로 어느 정도는 한국의 정세의 필요성의 요청에 의해서 진행된 좀 자생적인 담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의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1992년에 나온 책인데 한국 정치학회와 사회학회가 공동으로 기획했던 책인데요. 그 책을 보면 당시 담론지형에 대한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문제는 거버넌스 담론인데. 위에 leopord가 언급한 것은 순전히 global governance에 대한 이야깁니다. governance라는 것 자체를 정치학에서 쓸 때에는 시장 실패, 국가 실패의 맥락에서 the third sector로서의 시민사회를 이야기하고 그 3자가 협치(governance)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정치가 이야기되는 것이지요. 통상 local governance, national governance, regional governance, global governance 모두 생각만큼 우스운 개념은 아닙니다.

Global Governance에 대한 구상은 David Held가 Anthony Giddens를 팔로잉 하면서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Cosmopolitanism을 주창하면서 Global Civil Society를 해보자고 해서 나온 개념이구요. 전지구적 변환(Globalization)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Global Governance를 말하는 것이 기본적인 구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한물 갔다고 말하기에는 1년 마다 한번 씩 나오는 Global Civil Society 연감의 힘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본과 국가들과 시민사회를 전지구적 맥락에서 매개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은 종종 G20나, WEF, WSF의 의제가 되곤 합니다. 한국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시들한 건 일단 정치학자들이 관심을 끊었다는 것이 있을 거고(정진민을 위시하여 정당론을 하는 사람들이 거버넌스 논의를 접었던 순간이 있죠. 지구당 혁파에 올인하던 200x년을 기억하시나요.), 또 시민사회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맥락에서 아작이 나면서 한 섹터가 죽어버리니 더 이야기할 게 없게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죠. 어쨌거나 거버넌스 자체를 된장질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성급한 감이 있습니다.

박원순이 Governance를 강조하는 것은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욕하거나 이뻐하거나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일관된 흐름입니다. 그가 말하는 시민사회는 제3섹터로서의 시민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참여연대 때나 희망제작소나 사실상 박원순의 입장변화는 별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Governance는 ‘중도’ 혹은 ‘실용’과 아무 상관없는 개념입니다. 좌파도 governance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영국 노동당 좌파(켄 리빙스턴 같은 지방 사회주의 주창자들) 그룹이 그러한 전술로 지역의회와 지역의 시민사회운동들을 결합하는 시도들을 펼쳐놓곤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영어를 쓴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힐난거리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