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3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문학] – 멋쟁이 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 – 안재성, <경성트로이카>, 2004</a>). 안재성의 책을 읽을 때는 ‘모던뽀이’에 대한 느낌하고 이어져서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허지웅의 ‘간지좌파’와 비슷한 파토스 말이다. 그런데 김경일의 책을 읽다보니 좀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1~2학년 쯤. 그러니까 거의 10년 쯤 전 술집에서 들었던 S 선배의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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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주사파가 정말 싫었다. 그들의 수령론은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혁명 전통’이라는 것에 대해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건 순전히 내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인데. 그 답답함을 S 선배에게 털어놓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책을 잘 찾다보면 1930년대에 김일성만 투쟁한 게 아니란 걸 알 수가 있어!” 난 바로 “유레카”를 외쳤었다. 그리고 난 박헌영과 이현상을 발견했고 ‘혁명전통’에 주눅들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사파가 근처에서 김일성의 혁명 투쟁을 언급할 때 “지랄하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재작년에 읽었던 안재성의 <경성트로이카>와 김경일의 이번 이재유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난 오히려 헛다리를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유를 읽었으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재유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내가 찾았던 ‘자생적 혁명가’의 삶을 보여주었다. 코민테른의 지령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구체적 일상에서부터 혁명을 모색했던 이재유를 찾아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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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국내에서는 모든 민족해방 투쟁과 노동해방 투쟁이 씨가 말랐을 것 같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일제의 보고에 의하면 1934년 이래 이재유가 관여한 운동의 관계자로 경찰이 검거 · 취조한 수는 대략 500여 명에 달하였고 이 사건으로 송국된 사람이 250여 명, 기소자가 약 70여 명이라고 하였다“(p.306). 그리고 이 운동은 순전히 ‘서울’에서만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이재유가 더 매력적인 것은 그가 내가 늘 갖고 있던 ‘민주집중제’라는 좌파들이 욕을 들어먹는 맥락에서 한 발 빗겨났다는 거다. 이를테면 그람시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언급했던 ‘대중의 자율성’을 이재유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재유는 1930년대 경성 꼼 그룹의 운동가들이 ‘지도’를 언급할 때 그것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했다. 누가 누굴 ‘지도’하나? 당시 운동가들은 ‘오르그(organizer:조직책)’들의 지도를 통해 노동계급이 혁명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재유는 이를 믿지 않았다. “트로이카운동이란 개인적 접촉에 의한 이론적 통일에 기초하여 당재건을 위한 기초공작(공장내에서의 대중 획득)운동을 계속하는
것인데, 그것은 각 성원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므로 서로 접촉하는 사람들의 사이에는 제재나 규율 · 통제가 전혀 없으며 또한
상호간의 활동범위나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며 또한 알리지도 않는다“(p.66).
“각각의 운동자가 자기의 자유의사에 따라 개인적으로 접촉하고 대중을 획득하여 상당한 그룹이 결성될 때 비로소 조직을 한다는 이
이론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이른바 오르그에 의한 중앙집중적 하향식 조직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레닌의 이른바 민주집중제가 이후에
‘민주’적 요소는 무시된 채 ‘집중’적 요소만 관철된 상태에서 스탈린 체제로 이행했던 역사적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p.300).
이재유 노선은 당장 코민테른의 강령에 맞춰 적색 노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하고 그들의 맥락에 맞는 실천들을 함께 모색했고, 학생들과는 독서회 등을 통해 적절한 그들의 ‘말’을 찾으려 했다. 이는 마치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에 나오는 의식화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은 침잠 상태에서 탈출하여 현실 속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현실 개입 ㅡ 역사적 자각 ㅡ 은 탈출로부터 한 단계 전진한 것이며, 상황에 대한 의식화의 결과다. 의식화는 모든 탈출의 특징인 자각의 자세를 심화시킨다”(프레이리, <페다고지>,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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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혁명을 구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재유가 재판을 받으면서 했던 말들은 그와 인민노련의 활동가들이 했던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는 주장을 잇게 해준다. “이재유는 현재의 사회제도는 모순이 많으며 자신이 복역 중에 확실한 공산주의자가 되었던 것과 같이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사상을
탄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 이재유는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운동을 위하여 생명을 버릴
결심이고 또 그러한 자가 진실한 공산주의자“”(김경일, <이재유 나의="" 시대="" 혁명="">, pp.249-250)라 말했다. 누구에게도 혁명이 억압이 아니고 자신들의 활력을 끝까지 분출할 수 있는 혁명. 그것은 ‘제도화된 혁명’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인민노련이 스탈린주의 교과서와 <강철서신>이라는 주체사상의 교과서의 혁명론에서 벗어난 순간 그들에게 길이 열렸던 순간이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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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혹은 사회주의 모국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맥락에 맞게 했던 조선의 혁명가 이재유. 혁명의 파토스를 발견한다. </div>
강철서신>이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