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와 폭력

이 글을 쓰는 건 누구를 지칭해서 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몇몇 소수’ 좌파들의 ‘습관’에 염증을 느껴서다. 아직도 데모질만 열심히 하면 좌파라고 생각하고, 어떤 정파가 더 ‘간지’나기 때문에 그걸 택하는 ‘꼰대’ 같은 젊은 좌파는 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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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를 표현할 때 보통 어떤 말로 자기를 표현할까? 대학 진학률이 80%를 훌쩍 돌파해버린 지금 종종 많은 이들이 “X대 Y학과 Z학번 아무개”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건 두 가지를 보여주는데. 먼저 자기가  X대 Y학과를 다님을 통해 자신의 ‘학벌’의 위계를 은연 중에 배치시키고 Z학번이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서열’을 나이나 학번으로 매기려는 효과이다. 386 운동권 문화가 만든 거지 같은 속성 하나가 그런 자기 소개인데, “안녕하십니다. 민족(해방, 통일, 자주 등등) X대 민주(민족, 해방, 등등) Y학과 잘나가는 Z학번. 아무갭니다! 반갑습니다”하는 것에서 나왔다. 이러한 문화는 예전 한총련 출범식이나 노학연대 출정식 뭐 이런 장소들에서 자주 활용되곤 했다. PD들은 민족 대신 민중을 말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그냥 자랑스런 어떤 ‘상징’들을 가지고 자신의 소개라는 귀찮은 의례를 면할 수가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소개를 특별히 할 말이 없게 가르친 한국 교육의 효과이다. “저는 개무아에요. 그냥 난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빨강색을 좋아하구요. 그건 제가 빨갱이라서겠죠? 그리고 브릿 팝을 좋아하는데 오아시스는 불쉣이구요, 요즘은 콜드 플레이를 사랑해효! 또,, 음.. 꼰대 좆나 싫어해요.”라는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효과들은 경우에 따라 연대감을 잘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권력의 우열을 손쉽게 나눠주기 때문에 보통 가부장적 문화에서 편리한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되곤 한다. 알고 봤더니 우리 학교 선배더라, 알고 봤더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등등. 문제는 다들 손쉽게 알 수 있듯이, 대학과 학과와 학번이 다 ‘거지같다’같다고 누군가가 느낄 때이다. 발화 당사자가 별 인식을 안 하고 말했는데 상대가 허접하다고 느낄 수가 있는데 그 때는 이유없이 자신을 깔아보는 시선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위화감’이 순식간에 조성된다. 또 다른 한편에서 자기가 그게 싫어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구태여 “어느 학교 몇 학번이세요?”라고 손쉽게 물어보면 듣는 사람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상처받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 젠더까지 개입되어 여자이다. 이러면 볼만한 자리가 어느 자리에서든 종종 펼쳐진다. 곧 막장 타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다시는 가기 싫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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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합리적’인 인간들은 종종 그냥 그런 방법의 말하기는 ‘편리’하기 때문에 별 걱정없고, 자신들은 그 ‘학벌’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평등’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쯤 되면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고 ‘진상짓’의 절정이 펼쳐진다. 왜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고 계속 상처를 주게 된다. 약자는 계속 짜부라지고 ‘강자’는 계속 지랄을 한다. 문제는 문제제기를 들을 계획이 없다는 것에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런 ‘합리적’ 인간들은 서울대 출신에 잘나가는 학과에 더 고학번이면서 더 많은 문화자본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주눅들거나 씹거나 뭐 이런식으로 패턴이 가곤 한다. 사실 그 서울대 출신들이 자신의 소속을 구태여 말하려 하지 않을 경우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저 새끼는 서울대라 잘난척이 너무 심해.” 식으로 이야기는 손쉽게 상승한다. 자신들이 말하는 ‘학벌’에 대한 비판은 자신보다 더 좋은 학벌에 대한 ‘비난’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신들보다 권력이 없는 이들에게 ‘평등’하다는 둥 말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칼이 있는 데 널 안 죽이는 건 내 도량이 넓어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놓고 다른 이에게 ‘칼’이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 편에서 그 ‘합리적’ 인간들은 “너는 그 학벌이 부끄럽냐? 그냥 말하면 되는 거잖아? 게이들이 커밍아웃하듯이 말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봐라. 그(녀)가 커밍아웃을 하든 아니든 그건 자신의 ‘결심 사항’이다. 누구든 그에게 발언을 강요할 수는 없다. “네가 말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리지 않을 거야!” 다시 돌려 말해보자. “네가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안 벌어졌을 거야!” 이건 이를테면 누군가가 청년실업에 대해 왜 20대들이 어려운 일을 피하냐고 했을 때, “일단 어려운 일부터 해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그 ‘어려운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고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아무런 미래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인데, 질문자인 누군가는 자기의 질문 프레임에 던져놓고 대답 안 한다고 힐난하는 것이다.

이러니 여기에다가 ‘젠더문제’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게다가 성소주자에 대한 ‘입장’은 공적으로는 진보적인 냥 하지만 사실은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자신 안의 ‘호모 포비아’를 맹렬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출발은 ‘상상력’의 부족이었는데 결과는 폭력이 된다. 문제는 자신들의 ‘감수성’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 놓고 한나라등을 손쉽게 까고, 민주당도 손쉽게 까고, 누구도 손쉽게 까곤 한다. 투쟁 좀 돌아다녀봤다고 오지랖질을 해대곤 한다. 결국 그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은 우파가 되거나 그들을 꺼리게 된다. 이러면 똑같은 도식으로 그들은 “대중이 무지하다”라고 화를 낸다. 누가 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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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신좌파의 유명한 테제가 있다. ‘합리적’인 누군가들은 그 말이 간지나니까 손쉽게 차용해다가 지들이 ‘상상력’을 추구한다고 이빨을 턴다. 하지만 그 ‘상상력’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것에 있었던 ‘권력관계’를 폭로하고 대안적인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상상력’. 아무 때나 그냥 갖다 붙이면 장땡이 아닌 거다.

좌파는 ‘남성연대’나 ‘학벌’이나 ‘학번’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다시금 자신들을 묶어내는 게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