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ko – 마이클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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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24298f size=2>멋진 신세계의 병원, 그리고 의료보험 </FONT>

세상에는,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 줄을 서고, 치료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민영 보험에 들어야 하는 나라가 있다더라.

중지와 약지가 절단된 환자가 보험에 들지 않았을 때 지불해야하는 돈은, 각각 $60,000과 $12,000이다. 자신이 로맨티스트라서 약지를 살리는 나라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이 영화는 “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보험을 들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게다가 그 보험사는 통상적으로 돈을 지급을 안하기 위해서 변호사와 의사들을 동원하고, 대부분의 경우는 환자가 옴팡 뒤집어 쓴다.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 자신의 병적을 말해야 하고, 자신이 아픈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 가입했다가는 곧바로 해지 판정을 받기 일쑤다. 아펐을 때 혜택을 받기 위해서 가입하는 의료보험이, 자신의 병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 ‘의학 선진국’의 모습이다.

감독은, 세상 뭐 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나라를 찾아본다.

세상엔 왜 병원에 가는 데 돈을 내야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분명히 있었다.

가장 부강한 나라의 가장 취약한 의료제도. 국영 의료보험 제도를 ‘사회주의 = 소련 = 사회화 = 국가통제의 세금폭탄’ 식으로 해석하면서 그런 나라들을 살펴보지만, 지지부진한 의료의 진행, 혹은 국가 통제하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의사들을 볼 줄 알았지만, 그런 건 없고, 오히려 그의 시선은 곧바로 선망으로 변해버린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관타나모 수용소, 쿠바의 의료 시설을 가본다.

9/11 테러 현장에서 현장복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원봉사자들은, 미국과 가장 적대적인 국가인 쿠바에서 치유를 얻는다. 가장 사회주의적이고 여전히 빅브라더를 거느리고 있는(그는 현재는 권좌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그 나라는 오히려 가장 완벽한 치료와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적대적인 국가인 미국의 자원봉사자들을 치료해 준다.

영국은 전후 모든 것이 박살난 상태에서 NHS를 성립시켜 무상의료가 정립되었고,

캐나다는 정치의 과정을 통해서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고,

프랑스는 시민들의 연대성을 통해서 무상의료를 쟁취했고, 쿠바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통해서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담배, 와인, 치즈로 쩔어있는 프랑스보다도 미국의 기대수명은 낮으며, ‘열악한’(?) 자원도 없는 가난한 쿠바보다도 미국의 기대명은 낮다.

공통적인 것은, 경제적인 부유함과 의료 체제, 교육 체제의 공공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 영국 노동당의 전 의원이 지적하지만, 시민들의 각성 그리고 그것의 정치적 표현을 통해서 쟁취되는 것이다.

더 이상 그들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당장 ‘혁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 그것이 그들에게 ‘사회화된’ 공공 의료 체제를 만들었다.

잠시 우리나라를 생각해 본다.

의료의 민영화가 현실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벌어질 지.. 멋진 신세계가 기다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