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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을 생각해 본다 – (생태주의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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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0000>녹색 희망</FONT> – ![]() 알랭 리피에츠 지음, 허남혁 외 옮김/이후(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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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피에츠의 인식틀에도 그런 생각들이 깃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생산’으로 모든 것을 수렴하는 인식에서 좌파가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생각 근저에 깔려있는 ‘생산지상주의’가 좌파의 진정 걷어내야할 눈비늘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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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항상 ‘여유’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최소한의 ‘비빌데’가 없는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자면, 그는 공동체의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성격을 부여받기 힘든 사람이 될 것이고, 자신의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둔감할 수밖에 없고, 지껄임과 타락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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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는 노동하고 낚시하고 토론하는 ‘자유인의 공동체’를 말했지만, 좌파들이 만들어 놓았던 ‘사회구성체’들에 사실 그러한 ‘자유인의 공동체’가 있었는 지에 대해 의문을 삼는 것이 비단 우파만의 일은 아니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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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빌데’가 있어야 자신의 온전한 이익이 아닌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그렇기에 생태주의자들의 ‘생산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다. 생태주의자들이 ‘환경문제'(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류)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치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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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생태주의자들의 가치라는 것이 연대성, 자율성, 생태적 책임성, 민주주의라는 점은 적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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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를 읽으면서도 생각이 들었던 문제인데, 그것이 리피에츠등의 생태주의자로부터 출발했다는 단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미래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환경 파괴라는 것은 단순히 지금 ‘내가 마시는 공기’가 좋지 않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살 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우리가 누렸던 것을 ‘미래 세대’에게서 빼앟고 있다는 것, 즉 ‘미래 세대’에 대한 착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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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중심성에 대한 문제들. ‘권력의 획득’이라고 정해진 정당론의 ‘정당’에 대한 명제에 대한 파괴가 생태주의의 기치이기도 한데,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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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 세계의 복잡성이나 수많은 모순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고, 특수한 사회관계(경제, 에너지 소비 또는 그 밖의 것)에 의한 ‘최종 심급의 결정’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중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운동 개념이 없기 떄문에, 녹색주의자들에게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의 결정적 계기, 즉 최고 권력의 획득(적색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이 가능하지 않다.
> > …..(중략)…..
> > 국가권력이 노동관계, 소비자의 멘탈리티,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보다는 미셸 푸코와 펠릭스 가타리의 후예로서, 녹색주의자들은 과거와 수많은 작은 단절을, 그리하여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분자혁명(molecular revolution)을 꿈꾼다. 이들 또한 권력을 쥐게 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고 투쟁을 진행시킬 수 있으며 역학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것, 즉 수많은 행동양식의 변화이다(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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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부터 진보주의는 연대의 윤리라는 이름으로 항상 ‘가난한 자의 편’에 있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가난한 자들의 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소외 자체가, 운명은 반드시 역전될 것이라는 해방의 변증법의 전제조건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는 지금과는 다른 근대성을 표방해야 하며, 행동의 자유, 혁신의 자유, 앎의 자유,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이와 동시에 연대와 생태적 책임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자율성에 대한 열망을 표출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유럽을 재창조해야 한다(p.149).</BLOCKQUOTE>정치적 생태주의는 “이성의 겸손이며 의지의 포부”라고 저자는 결론 짓는다(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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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1990년대 중반에 나온 책이다. 지금 프랑스의 녹색당은 어떨까? 그게 좀 궁금하고, 리피에츠는 90년대의 유럽연합의 이슈들-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생태주의자들이 처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도 길게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통화주의자들의 이론에 대한 반박이 주된 것들이다. 또한 프랑스 국내정치 이야기-좌파와의 관계-도 한 장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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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보게 되는데, 생태주의자들의 명제가 너무 환상적이랄까 라는 생각도 좀 하긴 하는데, 동시에 그들이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펼쳐내는 활동 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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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생각했다는 좌파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적’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리피에츠가 말하는 ‘녹’의 입장이라는 것과 크게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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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더 생각을 가다듬어 볼 필요를 준다. 연대를 통한 돌파로 ‘현실’에 대한 대응을 하는 생태주의자들에게 조금 더 주목을 해 본 후 판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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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녹색당은 커녕, 매번 ‘좌빨’에 대한 반사작용에 함몰되는 한국의 현실. 안타깝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DIV></DIV>
불편한>
반노동의>생태주의>자본주의>국제정치경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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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NT color=#000000>반노동의 유토피아</FONT> – ![]() 차문석 지음/박종철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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