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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좌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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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3366>목수정, 레디앙</FONT>
목수정의 글을 레디앙에서 읽었던 적인 작년(2007) 쯤으로 기억된다.
레디앙에서 목수정의 글들을 읽었을 때 파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프랑스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후아얄과 같이 동거는 하고 아이는 낳아서 키우되 결혼은 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도 열살은 더 많은 프랑스 남자와 그렇게 산다는 것이 일단 충격적이었고, 또한 그의 딸(사실 아들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였다.
(목수정과 희완의 딸 – 칼리)
몇 달전 촛불정국이 한참이었을 때, 목수정의 촛불집회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좌파’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좀 답답하고’,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이미지 역시 그것과 같다.
좌파에 대해서 그려보면, 수더분한 닳고 닳은 민짜 셔츠에 낡은 청바지, 그리고 시커멓고 주름진 얼굴, 머리에는 왠지 농부들의 모자가 하나 쓰여 있을 듯하고, 셔츠를 덮은 것은 노조의 “단결투쟁” 조끼. 뭐 그런 이미지 아닌가? 나이는 그냥 한 40대쯤 되어보이고,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악다구니를 치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을 듯해보이는…
실제로 좌파들을 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이라는 것이 딱 정확한 것은 아닌데, 그런 인상들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 아닌가?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지니는 평균적 색채는 ‘무던함과 진솔함’이다. ‘도드라지게 자신만의 매력을 갖춘’ 경우는 많지 않다. 우파 정당의 지지율이 하는 일없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이 시대에 좌파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도발적 선택이다. 그런 이들에게서 자신만의 강렬한 색채가 묻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썩 자연스럽지는 않다.
<FONT color=#ff0000>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충실한 선택으로서의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모습만이 좌파의 전부는 아니며, 그런 자세가 좌파의 승리를 앞당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FONT>(p.213).</BLOCKQUOTE>대학교 2학년 때, 내 동아리 게시판(선배들은 대개 범NL 계열인데)에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유쾌한 만남”을 하는 것이 이 시대 좌파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썼다가 들은 대답이 있다. “술 취했냐? 쳐 자라.”술 한모금도 안먹었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의에 자신을 초개와 같이 던지라는 주장에 대해서 난 반대한다. 좌파는 감수성이 살아있어야 하며, 동시에 생활로 겪는 것들을 테제화 하되 그 주장이 기각되었을 때 그것을 다시금 재구성하여서 ‘다른’ 버전으로 각색하고 그것들을 통해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진화하지 않는 좌파는 멸종한다.”
<FONT color=#003366>자유로운 영혼, 좌파로 프랑스와 한국을 거닐다</FONT>
지금의 20대와 30대초반의 ‘자생적’으로 좌파가 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매력적인 저자는 아마, 홍세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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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VERTICAL-ALIGN: top" align=left><A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18X&ttbkey=ttbpanic822253001©Paper=1"><FONT color=#000000>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FONT></A> – <IMG alt=10점 src="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 border=0>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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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VERTICAL-ALIGN: top" align=left><A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2657&ttbkey=ttbpanic822253001©Paper=1"><FONT color=#000000>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FONT></A> – <IMG alt=10점 src="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 border=0>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TD>뭐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지만, 10대에 읽은 홍세화는 나를 교회에서 멀어지게 했고, 조선일보를 보면 구역질날 수밖에 없는 감수성을 만들어주었고, 어줍잖은 ‘우파국가’의 병영화된 사회가 얼마나 촌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이미 18살에 나는 뼛속까지 꽉 들어찬 좌파였다.
다만 홍세화의 주장은 너무나 ‘똘레랑스’라는 개념 덕택인지 ‘보편주의적’이고, ‘민주공화국’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진중권이 ‘시민사회의 상식’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 역시 그렇다.
그런 한계를 홍세화와 진중권에서 느낄 때, 상상력을 도발할 수 있는 한국에서의 책들로 목수정을 이제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우석훈의 사유가 ‘좌파-생산의 사회화’의 테제에서 벗어나 ‘생태적 전환’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를 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목수정의 글들은 자유로운, 그리고 발칙한 좌파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한 설명을 준다. 그가 가졌던 ‘발칙한 선택’들,, 동거하는 남자친구(프랑스인 아나키스트 희완)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아이를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키워 가장 자유로운 나라의 ‘엄격한’ 교육을 기억하는 시누와 대판 붙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프랑스사람보다 더 리버럴’하게 사는 것, 그리고 가장 감성적이면서 가장 답답했던 ‘좌파들의 정당’에서 꿈을 꿀 수 있는 ‘문화정책’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것으로 설명되지 않을까?
‘삶’좌파 혹은 ‘생활’좌파로서의 목수정의 글들은 기존의 ‘정치적’ 좌파에서 뛰어넘기를 꿈꾸던 이들에게, 혹은 좌파가 아니더라도 세상이 답답한 이들에게 어떤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옆구리를 쿡쿡 대면서 이야기한다.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나 혼자서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우물을 파면서, 세상의 모든 재미를 두루 즐기면서(p.163).
오늘의 프랑스 사회에 남아있는 멋진 구석의 대부분의 시발점이 ’68’이다. 드골주의로 대표되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전복하고, 페미니즘, 성소수자운동, 환경운동 등과 같은 다원적 정치의제를, 그리고 건강한 개인주의가 68이후 10년간에 걸쳐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게 됐다. 그 중에서도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기준과 가치로 살아가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개인주의는 68의 가장 큰 사회적 유산이다(p.194).
태어날 때부터 무작위적이고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공세에서 살아남아 취향의 거세에 저항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TV를 멀리 하는 것이다. 영화관에 가듯이 가끔 보고 싶은 프로를 선정해서 보는 정도로 거리를 벌리시라. 일단 아이가 영상을 통해 월트디즈니를 맛보고 나면, 그 아이를 이마트에 데려갔다가 월트디즈니가 아닌 턱받이, 물컴, 장난감을 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헐리우드가 30녀대부터 전 세계를 길들여온 방식이다(p.220).
<FONT color=#ff0000>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예술작품을 접하는 일을 삶 속에 끌어들인다. 예술가들은 그들이 인식하건 하지 않건, 숙명적으로 기존 미학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학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이 모두 아방가르드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작업 내용이 사회 참여적인지 혹은 정치적인지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목적에서 유리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소우주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FONT>(pp.221-222). </BLOCKQUOTE>한참 ‘행복한 이기주의자’과 칙릿이 주는 환상에 빠져있을 20~30대 여성들에게도 역시 목수정의 말을 들어보라하고 싶은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의 덫에 빠지지 않은 여전히 ‘생생한’ 그녀의 ‘여자로 살아가는’ 태도 때문이다.
행복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는 것이며 또 전이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속옷에, 팬시용품에 값싸게 수놓아진 장식으로서 Happy가 지천인 사회에 산다. 하지만 불합리한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말 밖에 들려주지 않는 이 사회는 얼마나 행복할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한 정상이 활개를 치는 한, 이 사회의 행복은 버석거리는 포장지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사기일 뿐이다(pp.198-199).
어느 날부터,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기면 아이는 “창피해…”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몸을 가리는 행동을 했다. 그런데 그 때 짓는 표정이나 목소리, 동작은 너무도 작위적이었다.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학습된 행동을 연기하는 것이 분명했다. 옷을 벗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배운 것이다.
…(중략)…
희완과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억압과 모든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서 아이가 자유롭게 자라도록 하고 싶었다. 태초의 능력과 욕망, 그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p.225).가장 진보적인 척하는 정치집단에서조차 인간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경험에 대해서 가르치자는 제안을 교육 영역에 할애할 자리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단숨에 물리칠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도리어 이것은 ‘사랑’과 불화하는 황량한 삶을 왜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만 보듬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역설적 해답이다(p.241).
지금 한국사회에는 가부장적인 가치와 자본주의적 패악이 뒤섞여 지극히 편협한 얼굴을 한 사랑이 떠돌고 있다. 무한하게 많은 사랑의 단면 중 하나다. 내 영혼이 내 의지에 따라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어디에든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조금쯤 덜 불행할 것이다.
‘한 여성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순간 여성문제가 등장’한 것처럼, 사랑의 영역이 사회과학 속에 당당히 한자리를 획득하는 순간, 이는 우리의 삶을 가장 민감하게 건드리는 정치,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p.244).대학시절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 친구가 있다. 학자 집안에 태어나 공부도 잘했고, 얼굴도 예뻣고, 졸업 즉시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해서 막힘없는 삶을 살던 그녀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그녀는 나오지 못했다. 외출 직전, 시어머니가 수요일 예배에 가니 시아버지 저녁상을 차려드리라는 호출을 받았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고통으로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그 정도의 종속에 이미 익숙해 있는 듯(p.259).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마르크스만큼 문화를 즐길 줄 알았다면, 마르크수주의가 20세기 말에 와서 이렇게 푸대접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셰익스피어를 한없이 읽는 것이었음을 그의 딸들은 증언하고 있다(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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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의 신화를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파편화된’ 여성들이여! 이제 연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매일밤, 남자친구와 혹은 여성들과 통화하면서 ‘수다의 연대’를 만드는 여성들이여, 이제 세상을 향해서 그 ‘연대’의 목소리를 함께 외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당신들을 옥죄는 것에서 벗어나라!<FONT color=#003366>민주노동당, 그리고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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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알고 있는 나도 굉장히 흔치 않은 경우지만, 대학에서 NL이네 PD네 하면서 서로 사상투쟁이나 학생회 선거를 놓고 이전투구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아닌 이상, 진보정당에서 그런 일들이 여전히 ‘정파싸움’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목수정은 대학 때 ‘연애만’ 했다고 했는데, 2004년 진보정당의 바람을 타고 ‘문화정책연구원’으로 민주노동당에 ‘직업’을 잡게 된다. 내가 만약 그 때 그녀를 알았더라면 2006년 쯤에는 분명 말렸을 듯한데, 여튼 ‘운동’과 상관없었던 그녀가 겪는 민주노동당에서의 일들이라는 것은 너무 답답한 일들이고, 다 예측되지만 다시금 그것을 체험하게 될 경우 ‘넌덜머리’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난 한번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진보’의 신념으로 민주노동당을 찍었던 사람들을 이해는 한다.
여의도 시절, 4층에만 내려가면 사람들이 어째서 북한 분위기를 풍길까 하고 의아했는데, 그들의 분위기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5층에 있는 정책위원들이 뿜어내는 저 오만할 만큼의 자유로운 지성과 탈권위 비형식, 그리고 약간의 냉소를 간직한 젊고 가난한 엘리트 집단의 분위기가 자주파들에게는 거의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중략)…
문화정책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할 때, 자주파 쪽 사람들은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는 광경을 거듭 연출했다. 그러다가 ‘남북’ 문화교류 같은 단어가 나오면 그제야 눈을 반짝 뜨고 반가워했다. 논의가 끝날 무렵, 몇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는 사람이 민망스러워 “한 말씀 하시죠.”하면 그들은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로 언제나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3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이게 개인적인 현상인지 어떤지 알 길이 없어 주변에 물어봤더니, 이쪽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라는 것이 답이었다(p.286).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의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FONT color=#ff0000>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리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FONT>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p.290)?</BLOCKQUOTE>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은 이런 사람을 담아낼 수 없는 정당이었고, 이런 ‘생활좌파’들은 결국 2008년 초, 다 민주노동당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사실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글로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예전에 서갑숙의 에세이가 잠시 센세이션 했던 이유도 그런 것인데, 목수정의 책은 단순한 자신의 취향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라, 거기에는 자신의 정치적 태도까지도 같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에세이들과 다르다.
며칠전 지승호와 한 잔을 걸치고 2차를 향하던 도중 하던 말이 있었다. 지승호는 “좌파도 이제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 명품을 걸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항상 꽤재재하게 입고 다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산발을 하더라도 나름의 미학적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 백분 이해했었는데, 좌파가 해야하는 고민에 이런 부분들은 언제나 큰 그림의 ‘자본주의’, ‘미국’이라는 주제 덕택에 사장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상상력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간성의 회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잠시 삶에 찌들어 있는 20대에게 그리고, ‘운동’의 관성에 물들어 있는 좌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뱀다리1. 그런데 생각보다 오타가 좀 있다. 띄어쓰기도 불량한 구석이 좀 있다. 목수정의 글쓰기는 유려하지만 편집은 좀 덜 되었다는 느낌이다.
뱀다리2. 사진들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희완의 사진들은 너무나 아름답다.</DIV></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