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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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가 주관한 ‘우석훈과 독자들의 대화’에서 열심히 입에 거품을 물며 질문을 한 덕분에, 연극 초대권 2장을 얻었다. 막상 보려하니까 볼 사람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차라리 누구 줘 버릴까도 했는데, 다행히 볼 사람을 찾았고, 8월 22일 8시 성대골목 들어가는 길의 ‘마방진 극공작소’를 찾아서 들어갔다.

싸이월드 Say In Theater에 가입하고 한동안 연극을 좋아해 보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나, 근무 일정으로 GG를 쳤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 어깨에 힘 빼고 영화 한 두번 보는 것처럼 “연극도 좀 챙겨보고”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팔인(8人)의 이야기는 물리고 물리는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이기도 하다.

일단.. 물리고 물리는 인간 관계. 케빈 베이커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http://blog.studioego.info/283 참고).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나하고 가수 이승환의 관계가 아무리 멀어도 6다리를 건너가기 전에는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승환의 사촌 누군가는 나랑 아는 어떤 사람과 4다리 안에는 들어올 꺼고.. 하는 식으로 좁혀들다 보면 나랑 이승환은 6다리 안에 들어있다는 것. 실제로 입증이 된다. 싸이월드에서도 그런 식의 관계 검색을 해주었던 적이 있다.

극에 나오는 배역들을 보면서 그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새마을 금고에 다니면서도 연극의 꿈을 버리지 못한 ‘문자’ 그리고 그 문자와 원나잇스탠드를 했지만 ‘단비’를 사랑하여 ‘문자’를 걷어차는 ‘조풍’. 원나잇스탠드후 바뀐 ‘문자’에 당황하는 남자친구 ‘규남’. ‘단비’의 이모 ‘혜리’는 단비에게 청혼하기 위해 찾아온 ‘조풍’과 눈이 맞아 바람이 난다. 또한 ‘규남’은 ‘단비’의 오빠다.</p>

여자친구에게 버림 받고 “캐빈은 12살”의 캐빈을 찾겠다며 비자수속심사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명기’, ‘명기’는 수속담당관 ‘영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혜리’의 남편이자 타워팰리스 수위인 ‘명행’이 이를 제지하고, 어느날 다시금 ‘영미’에게 달려들지만 오히려 소시적 날라리였던 ‘영미’에게 두들겨 맞는다. ‘명행’과 ‘명기’는 싸우다가 정이들고 친해지는데, ‘혜리’의 바람피는 것에 열이 받은 ‘명행’은 ‘명기’에게 털어놓다가 오히려 야릇한 정을 느끼기도 한다. ‘혜리’의 바람피는 행위는 거침이 없다.

‘명기’가 다니는 도장의 관장인 ‘조풍’은 ‘명기’의 집에 갔다가 ‘명행’과 ‘명기’가 함께 누워있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동성애자로 의심한다. 마침 어렸을 적 함께 날라리였던 ‘단비’와 ‘영미’는 함께 기차여행을 하던 중 ‘문자’와 시비가 붙고, ‘문자’는 개겨보지만 두들겨 맞고 도망치고. ‘문자’는 원나잇 스탠드의 충격으로 ‘규남’에게 팜므 파탈처럼 행동하지만, 그 행동들을 ‘규남’은 견디질 못한다.

근육질 남자에게 와이프를 뺏긴 ‘명행’과 ‘영미’에게 맞은 ‘명기’는 운동을 열심히하고, ‘조풍’의 바람의 상대가 자신의 이모 ‘혜리’인 줄 알아버린 ‘단비’는 이모를 찌르겠다고 하고, ‘규남’은 상처받아 ‘문자’와 헤어지자 하고, …….</DIV>

결국 극의 인물들이 마음의 평안을 누리면서 갈 수 있는 곳은 정신병원 밖에 없는 듯하다. 끝없는 정신분열증의 한계라고 할까? 얽히고 얽힌 관계들이 하나 하나 폭로가 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적이 되었을 때, 미쳐버리는 신은 압권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의 고원="">의 부제가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II’ 였던 것처럼(처음의 시리즈 제목은 <앙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이었다) 이 연극은 알레고리의 밑에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정신분열증’을 묘사한다. 그리고 내 생각엔 ‘자본주의적 관계’라는 것들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였다. </p>

그렇다고 해도 또 그 정신병원이 영원한 유토피아도 아니라고 극은 선포한다. 평온한 가운데서 ‘문자’는 모두를 권총으로 쏘며, 모두 죽고 난 후, 문자 역시 권총 자살을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유토피아 역시 곧바로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다.

연극을 보면서 계속 “시가 사라지고, 소설이 허무주의로 빠지는 때에 연극은 어떤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하나’의 연극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이 계속 사회에서 사람들의 ‘숨통’을 죄어올 때 그것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절규’=’공연’를 뿜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씩 더 덜 망가지거나, 혹은 조금 더 좋아지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연극과 뮤지컬을 혼동했는지, 굉장히 연극의 관람료가 20,000원이라는 사실에 잠시 놀랐는데, 20,000원이라면 종종 가서 관람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담한 73개의 객석, 그리고 가로 10m, 폭 5m 정도의 아담한 무대. 극이 시작하자, 생각보다 훨씬 웅장한 사운드가 들려온다. 나오는 노래마다 너무 좋았다. 결국 비관적 분위기였지만, 결론의 “Creep”도 좋았고..

<FONT color=#ff0000>‘꿈’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소박한 방법으로 그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리고 그 ‘꿈들’이 여기 저기에서 다양하게 만개할 때, 조금은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