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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직선을 넘어서 – 안토니 가우디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 target=_blank>2007/11/23 – [Culture] – 청각 & 후각 vs 시각 / 묘사 vs 서사</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14” target=_blank>2008/08/20 – [Reviews] – 발칙한 좌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91” target=_blank>2008/06/20 – [Reviews] – 직선들의 대한민국 – 문제는 우리들의 미학이다!</A>
<A href=”http://contentsfactory.tistory.com/51” target=_blank>바르셀로나의 영웅 가우디를 만나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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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alt=""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52202910_1.gif" border=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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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3366>끔찍했던 미술시간, 유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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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래도 ‘시각적 묘사’, 아니 ‘시각적’인 모든 것에 취약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분별은 직관적이고, 즉흥적이며 동시에 그것을 ‘분석적’으로 쪼개보는 일은 불가능하고, 어떤 색의 배치가 나에게 어울리는 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게 선천적인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런 훈련이 덜 되어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렸을 적 미술시간은 언제나 끔찍하고 빨리 탈출하고만 싶은 시간이었다. 4B 연필이 싫었고, 신한 물감, 화홍/비너스 붓, 팔레트, 스케치북, 물통 모두 끔찍한 대상이었고, 그것을 갖고 뭘 어떻게 해야할 줄을 몰랐으며, 차분히 앉아 있기 보다는 대충 어떻게든 때우고 도망가고 싶은 그런 시간이었다. 여백이 없어 ‘즐기지도’ 못했고, 그 성과물 역시 끔찍한 것이었다.
난 사실 ‘아름다움’에 대한 것을 느끼게 해주는 체험과, 차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훈련,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연필’ 혹은 ‘크레파스’ 또는 ‘물감’을 통해서 아니면 조각/조소를 통해서 표현하는 지에 대해서 ‘천천히'(!) 배워야 했던 ‘느린 아이’였는데, 미술시간은 ‘성적’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고, 미리 ‘눈뜬 아이들’이 잘난 척 하는 시간이었다. 난 항상 도태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버리는 과목’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을 걱정하던 엄마는 동생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미술학원에 나를 1년동안 다니게 하기도 했지만, 남는 기억은 ‘표준화된 정답’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고, 거기서 오차가 많이 날 수록 내 손바닥을 자로 인정사정 없이 세게 때리던 그 선생들에 대한 것밖에 없다.
나이를 먹고 나니, 그 때 제대로 미술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고, 그림 그리고 사진 또 건축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디테일을 읽는 능력은 내게 없었다. 그냥 ‘아름답다’ ‘예쁘다’ 정도? 괜히 아는 척하면서 여자들의 화장의 디테일에 대해서 남들 하는 말을 흉내내어 하고는 했지만, 사실 아는 건 없었다.
다행인건 요즘들어 어떤 것이 ‘추악한지’에 대한 판단 기준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거다. 이를테면 난 강남의 바둑판 같은 도로배치와 높다란 빌딩 숲을 혐오하게 되었다. 난 ‘높이’와 ‘규모’ 그리고 ‘사각형’ , ‘직선’이 주는 획일성을 끔찍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자리를 주선할 때 있어서도 홍대나 종로를 선호하게 되었고, 강남은 점차 잘 가지 않게 되었다(사실 돈이 없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이 역시 편견?). ‘깊이’와 ‘넓이’, ‘부피’라는 것의 조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홍대를 가게 되었고, ‘역사성’이 주는 묘한 향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종로’거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아파트’가 싫어지기 시작하고 있고, ‘차이’를 적대로 바꾸고, ‘동일성’을 질서로 전환하려는 건설미학이 얼마나 우리의 숨을 죄어오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FONT color=#003366>가우디, 아름다움을 건축한 수도자</FONT>
사실 이 책을 산건 작년이다. 휴가철에 살림지식총서를 몇 권 한꺼번에 읽겠다는 계획을 잡았었는데, 물론 실패했고 그 결과 이 책은 내 책장에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전 목수정의 에세이를 읽던 도중, 가우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목수정의 남자친구인 희완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가우디의 이야기에도 귀가 쫑긋 서게 되었다.
가우디, 그는 누구일까?
스페인이 낳은 천재 가우디의 작품은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다. 고유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생명력을 얻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 완전히 무르익는 열매와 같다. 이 결실은 매우 낯설고도 신기하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메넨데스 피달(Ramon Menendez Pidal)(p.4).</BLOCKQUOTE>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맘에 들었던 것은, ‘조화’ 그리고 ‘자연의 원리와의 공존’이었다. 그렇다고 토담집만 소박하게 짓는 것이 아니다. Casa Batllo를 보자.
항상, 장식하나 하나의 디테일까지 아름답게 꾸몄던 그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가우디의 ‘사적인 기록’이랄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거의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는 건축가라는 것이다. 그나마 있던 기억들도 스페인 내전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은둔자’의 생활이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그의 과거를 저자는 구성해 간다.19세기 말 창작은 ‘시대의 비전’을 표현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당시까지의 예술을 지배하던 덕목인 ‘정직함’과 ‘세밀함’을 능가하는 그 무엇이어야 했다. 이제 예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그 근본을 표현하려는 움직임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그 ‘시대정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p.10).</BLOCKQUOTE>그래서 아마 대다수의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양식들에 대한 모방을 하거나, 여러가지 양식들을 혼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우디와 새로운 전위들(avant garde 아방가르드들)는 그들과 달랐다.
이런 ‘새로움을 향한 도약’은 순수예술을 끌어들이면서 근대건축의 강력한 태풍을 예고하게 되었는데, 이는 몇몇 전위적인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피카소(Picasso)로 대변되는 큐비즘(Cubism)은 근대건축이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FONT color=#ff7635>자연이 가진 형상을 기계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려는 ‘아르누보’양식은 ‘강철’이라는 새로운 재료의 조형 가능성을 시사했다</FONT>(p.11).</BLOCKQUOTE>가우디의 배경에는 카탈루냐가 있다. 피카소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몸이 약했던 가우디가 매일 한 일이라고는 타라고나(Tarragona)의 레우스(Reus)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가만히 앉아서 고향의 자연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유적을 거니는 일이었다.가우디의 고향 레우스는 티라고나의 평원지대에 있으며, 크고 작은 산맥과 바다가 주위를 감싸고 있다. 납작하게 엎드린 평야지대엔 농가와 농장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중세에 건설된 성당의뾰족탑들은 단조로운 풍경에 활기를 주고 있다. 어린 시절 가우디는 허약한 몸 때문에 혼자일 때가 많았다. 다리가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가우디는 근처 숲과 강가에서 혼자 자연을 벗삼아 놀곤 했다. 산들거리며 다가와 뺨을 두드리는 바람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강가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모래자갈과 들판을 뒤덮은 이름모를 들풀들. 어느 하나도 가우디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로 가우디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pp.14-15).
강렬한 지중해의 햇살 때문이었을까? 어린 가우디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던 성당의 벽과 천장에 있었던 색색의 유리 파편들이었다.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스페인으로 전해졌을 이 ‘빛의 미학’이 이후 가우디의 작품을 지배한 하나의 주제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가우디는 유적 속에 남겨진 빛바랜 돌 한 조각, 색유리 파편 하나를 통해서 진정한 미학적 가치를 느꼈다. 그러면서 ‘완전하지 못한 것’과 ‘낡은 것’, 그리고 ‘작은 것’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p.16).</BLOCKQUOTE>이런 환경을 갖는 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에 반해 아파트 숲에서 의식을 갖게 된 나이부터 학원에 엄마 품에 끌려다니며 ‘학업노동’에 시달린 아이들에게 그런 감수성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을까? 예술이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가우디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었다. 가우디는 작업장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익혔다. 심지어 ‘조형감’까지도 말이다.
이런 가우디는 건축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예측될 수 있는 일이다. ‘표준적’인 기준과 다른 이에 대해서 학교라는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는 예측가능하지 않은가?
추상적인 것은 가우디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분석기하학은 물질의 기하학적 가소성을 수학적 공식으로 바꾸는, 말하자면 ‘추상을 다시 추상화하는’ 학문으로, 거의 고문과 같았다. 가우디는 교수가 이론적인 ‘공식’을 장황하게 설명할 때는 졸다가, 구체적인 주제를 다룰 때는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였다고 한다(p.26).</BLOCKQUOTE>디테일을 통해 전체를 구성하는 것. 그것이 가우디의 건축이었을 테니까. 그 때도 그런 생각이 정립되어있었나 보다.
이런 배경하의 가우디의 건축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찾던 새로운 ‘아름다움’은 여기서 아무래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가우디는 돌이 가진 엄청난 힘을 감지했으며, ‘카탈루냐의 정신’과 자연의 근원’을 돌을 통해 표현하려 했다. 돌은 언제나 가우디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주는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였으며, 가우디의 어머니 카탈루냐의 대지와 통하는 매개체이기도 했다(p.45).
가우디의 건축은 자연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것 이외에도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져 일체가 되도록 디자인되었다. ….(중략)…. 우리는 <카사 엘="" 카프리초="" Casa="" el="" Capriccio="">에서 가우디가 자연 속에 건축물을 어떻게 조화시키려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저택이 앉혀질 자리는 산의 경사면으로 많은 생각과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작업이었다. 근대 건축가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산을 깎아 그 위에 군림하듯 반듯한 저택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우디는 산을 깎아내는 대신 저택을 산의 일부처럼 산 위에 앉혔다. 마치 태초의 산이 생성될 때부터 같이 있었던 것처럼 저택을 산의 일부로 만든 것이다(pp.46-47).</BLOCKQUOTE>
Antoni Gaudi – Casa el Capriccio카사>
직선보다 곡선,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 그리고 자연의 재료를 활용한다는 것. 그것이 다시 새로운 ‘미학’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 아닐까?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것 역시 자연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은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은 진실의 광채이다. 진실이 없으면 예술은 있을 수 없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본질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름다움은 생명이며 생명의 움직임으로 인간은 존재한다. 골격은 근육을 이용하여 우리 몸을 움직이는 지렛대이다. 예술적 표현은 골격에 해당한다. 그 밖의 것은 겉옷에 불과하다(p.50).
빛은 모든 장식의 기초이다. 빛에서는 분해된 여러 색채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빛은 모든 조형예술을 지배한다. 회화는 빛을 묘사할 뿐이며 건축과 조각은 무한한 색조와 변화를 즐기기 위해 빛에 여러 모티프를 조화시킨다(p.60).
<FONT color=#ff0000>장식에는 색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중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식물이나 지형이나 지세나 동물의 세계에도 항상 색감의 대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건축물에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색을 가미해야 한다(p.66).</FONT></BLOCKQUOTE>
Antoni Gaudi – Casa Vicens
Antoni Gaudi – Park Guell
애써 가져온 색색 블록들을 다 부숴버리고 그것들을 모자이크해서 새로운 색을 만들어 버리는 그. 감탄할 그의 생각은 자연에 ‘같은’ 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가 평생 짓다가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한 성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 1882~1926). 아직도 짓고 있는 성당.그는 구도자처럼 하루 하루를 이 성당을 짓는 것과 산책하는 것과 신문을 읽는 것을 병행하는 매일 같은 하루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가 전차에 치었을 때, 그를 모두다 노숙자인 줄 알고 그냥 방치했다고 한다.
가우디가 멋지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양’으로 환원되는 또한, 숫자로 환원되는, 기계로 측량되는 직선적 사고에서 벗어나 ‘조형감’과 ‘빛의 배치’등을 통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FONT color=#0000ff>모두 같은 규격의 같은 공간에서 감옥처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뭔가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같은 양식으로 같은 방법으로 짓기 때문에 남는 것은 ‘양’밖에 없고, 자신의 ‘주거권’을 초과하는 ‘치부욕’의 수단으로 집이, 그리고 땅이 잡히고, 농토는 아직 개발되지 않는 땅으로 인식되고 ‘개발’ 그것도 ‘대규모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욕망만이 넘치는 지금. 가우디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어떠한가?</FONT>
<FONT color=#ff0000>카탈루냐의 땅 ‘바르셀로나’에 가보고 싶다!!</FONT>근데, 저자의 생각은 종종 편협하다.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을 종종 비판하는데, 그 때마다 ‘스페인 내전’의 배경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그놈들이 다 부쉈어.” 식의 태도는 좀 곤란한 듯하다. 피카소도, 가우디도 밝혀진 바로 사회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