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시로 가즈키의 감성 회복 프로젝트! –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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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VERTICAL-ALIGN: top" align=left><A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233X&ttbkey=ttbpanic822253001&COPYPaper=1"><FONT color=#000000>영화처럼</FONT></A> – <IMG alt=10점 src="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 border=0>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북폴리오</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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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3366>상남 2인조, 반항하지마, 레볼루션 No.3, 플라이 대디 그리고 가네시로 가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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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실 만화책을 잘 보지 않지만, 어렸을 때는 나 역시 누구나 그렇듯 만화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슬램덩크나 드래곤볼에 광적으로 미쳤던 것이 초등/중학교 시절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 <몬스터>, <미스터 키튼=""> 같은 역사물과 절묘하게 혼합된 미스테리 물에 미쳐있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그렇게 개념잡힌 우라사와 나오키류의 만화만 본 것은 아니고, <열혈강호>(언제 끝나나 하고 보다가 지쳐서 책 대여점을 서성거리다 20살 좀 넘어서 읽는 것을 포기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나 <럭키짱>(이건 뭐 글 1/30, 삽화 29/30 요 정도 비율 되지 않나? 다 보는 데 5~8분 소요)도 많이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끌리는 장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학원물이었다. <상남 2인조>, <반항하지마>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그 수면에 깔려있는 정서가 너무 좋아서였다. 폭력으로 얼룩진 사회, 힘 없으면 줘터지기 일쑤인 학교와 그 밖의 세상. 그 안에서 양아치이지만 나름의 로망을 갖고 있는 녀석들을 발견하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FONT color=#ff9900>**<FONT color=#9b18c1><럭키짱>에 흐르는 정서와 <상남 2인조>, <반항하지마>의 양아치들의 정서는 좀 다른데, 앞의 만화를 이끄는 힘은 ‘전국 짱’ 같은 좀 큰 권력을 갖는 문제와 연관된다면, 뒤의 만화들의 주인공들은 ‘권력’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여성적인 섬세함과 짙게 깔려있는 상처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이 순전한 ‘남자의 로망’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FONT>** </FONT> 그 정서가 뭔지 굉장히 궁금해 했었는데, 가네시로 가즈키를 읽으면서 조금씩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네시로 가즈키를 알게 된 건, 아무래도 이준기 주연의 <플라이 대디=""> 영화를 알게 되면서였는데, 거기서의 순신의 정서라는 거. 그게 좀 끌렸었다. 영화는 좀 소설과 달리 흘러갔지만….. 가정을 지키는 ‘아빠’만 강조하려 했던 것이 영화의 다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쨌건,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우연처럼 그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게 되었고, 처음엔 <Fly, Daddy, Fly>(이 블로그의 제목도 사실은 여기서 차용했다), 그 후에는 , 의 더 좀비스The Zombies의 소설들을 몽땅 읽었고, 마지막으로 그의 <연애소설>과 역시 다 읽게 되었다.

<FONT color=#0000ff>내 안에 깔려있는 마이너 정서와 너무나 잘 맞는 그의 소설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의 정서. 그게 너무 좋았던 거다. 사회에서 정확하게 주류가 될 수 없지만, 그 ‘주류’가 되기 위해서 속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소한 위치에서의 만족감이라는 걸 강조하고, 또 그 나름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긍정’하고 살아가는 거. 그리고 꼭 그게 ‘세상 기준’에서 실패나 성공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거.
</FONT>
더 좀비스가 등장하는 소설은 아무래도 학원물의 양아치들의 이야기처럼 처음엔 비치지만, 사실 그 외피의 ‘현란함’만 걷어낸다면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된다는 거다. 특히 루저들의 버둥거리는 이야기.

소설의 캐릭터들의 ‘달건이’ 분위기가 짜증나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들은 ‘양아치’는 맞는데, ‘조폭’은 아니었거든…

**<FONT color=#003366>가네시로 가즈키의 감성 회복 프로젝트, <영화처럼> </FONT>** 가네시로 가즈키의 더 좀비스가 등장하는 소설들’만'(!) 읽었던 사람들에게 아마 이 소설은 처음에 좀 생경하거나, “아 이 쉑. 이제 나이 들었다고 말랑말랑해졌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가네시로 가즈키는 ‘발칙’한 유머를 할 줄 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가 갖고 있었던 재일(在日)교포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주는 미묘한 감정의 단상들이라는 것은 이제 슬슬 ‘해소’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이제 더 이상 ‘재일교포’로서의 아무개가 아니라, 그냥 가네시로 가즈키가 되어가고 있음을 이 소설로 증명하는 느낌이다.

<FONT color=#ff3399>누구나 살면서 본 영화 중 감명깊은 영화가 하나씩은 있을 거다. 그런데 난 생각해 보니 첫 번째를 꼽지는 못하겠다. 그냥 몇 가지 영화가 떠오르기는 한다. <가족의 탄생=""> 그리고 <연애의 목적="">, <미술관 옆="" 동물원=""> 이런 영화들 정도를 꼽는다. 원래 생겨먹은 게 ‘액션’이나 ‘SF’물만 보다보면 짜증이 밀려와서 말이다. 어쨌건, 사람들에게 감명깊게 본 영화라는 것은 이따금 추억이 되고, 또 살아갈 때 한마디씩의 할 말들을 만들어 준다.</FONT>

<영화처럼>에는 숱한 인간 궁상들이 등장한다. 작가를 희망했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수단’으로 선택한 직업에 십 몇년동안 정체되었던 어떤 이와 그의 조폭 친구. 남편이 죽고 그 회복이 필요했던 11시 46분에 눈이 떠지는 어떤 여성. 또 남편의 복수를 준비하는 평범했던 ‘라면머리 아줌마’. 속물 아빠가 싫어서 가출을 결심하고 아빠의 3천만엔을 훔치려는 딸과 그의 며칠 동안 만났던 친구. 여전히 가네시로 가즈키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일상’이 까칠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표정을 정확하게 포착해 낸다. 이를 테면 학생의 눈. > 결국 여름방학 내내 공부만 하고 지냈다. 고등학생 시절의 마지막 여름방학인데도. 엄마 아빠는 물론 학원 선생도 여름방학은 경쟁자들의 성적을 치고 올라갈 기회라고 하는데, 대체 경쟁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들은 입시생들에게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은 금물이라는 말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경쟁자를 물리치고 입시에 성공했을 경우, 미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제시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라고 한다. 지금 구도 야스오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입시 전쟁을 이미 치른 부모나 학원 선생이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p.260).</BLOCKQUOTE>이들은 서로 구민회관에서 상영하는 <로마의 휴일="">을 통해서 자신의 계기들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 <로마의 휴일="">역시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추억들을 통해 회복을 바랬던 손주들의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인연들의 맞물림. 사실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하지만 읽다보면 알게 되지만, 이 프로젝트도 사실은 좀 잘 못 진행된 것이었다. 물론 결과는…). > > <로마의 휴일="">은 소설에 있는 사람들의 감성을 회복시켜주는 계기가 되며,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찾게 해주는 상징이 된다. 종종은 연애에 대한 대답도? 그리고 삶의 방식도 > > > <FONT color=#ff3399>자네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취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쫑긋 세우는 거야.</FONT> 그럼 자네는 그 사람이 자네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바꿔 말하면, 자네가 사실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그제야 평소에는 가볍게 여겼던 언동 하나까지 의미를 생각하며 듣고 보게 되지. ‘이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야. <FONT color=#ff3399>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대답을 찾아내려 애쓰는 한, 자네느 점점 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될거야. 왜냐, 그 사람이 새로운 질문을 자꾸 던지니까 말이야. 그리고 전보다 더욱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거고. 동시에 자네는 많은 것을 얻게 돼. 설사 애써 생각해낸 대답이 모두 틀렸다고 해도 말이지</FONT>(pp.325-326). > > > > 어차피 머지않아 친구 이상의 관계에 도전하게 될 테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쓰카사 씨란 존재는 내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좋아한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p.368). > > </BLOCKQUOTE> > > 처음의 소설은 암울했지만, 역시 뒤로 갈 수록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가볍고 잽을 날리듯 전개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가네시로 가즈키의 디테일의 묘사와 표현(이건 아무래도 번역자 김난주의 내공이겠지만)은 생생하게 팔팔 뛰는 느낌이고 또한 그러다가도 맑은 눈으로 맑은 물가에 눈을 담그고 바닥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 > > > > **장아찌는 냉장고 속. > > > 된장국은 냄비 속. > > > 엄마는 꿈 속.** > > > (pp.406-407)</BLOCKQUOTE>소설을 다 읽고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용일이의 이야기 때문에), <로마의 휴일="">이 궁금해 졌고(단순히 오드리 햅번만은 아닌 이유로), 빔 프로젝터를 사고 싶어졌으며, 이제 CD로 음악을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무문>의 이소룡이 궁금해 졌다. > > > > > > 생활의 방식에 조금 더 윤택함을 추가 하고 싶어진다. 물론 그것이 다 ‘돈’하고 관련된 일만은 아닐꺼라는 생각이다. 다만 조금의 맘의 ‘여지’와 ‘여유’의 문제겠지.. 영화와 음악을 통한 회복, 그리고 내 두발로 딛고 싶은 생각. 되도록이면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멀리하지 않기. > > > > > > 가네시로 가즈키는 멋있다. 그런데 그 멋있는 건. 세상의 ‘상품화된 가치’는 아닌 듯하다. 예전에 에서 했던 주인공의 말이 떠오른다. > > > > > > “그냥 평범하게 자리잡고, 평범하게 직장다니다가, 평범하게 퇴직해서, 은퇴했을 때 아내와 어딘가 여행가서 ‘당신과 살아온 몇 십년이 행복했어’라고 말하는 거”.. 그런 멋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