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을 보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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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정도 별러왔었다.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을 보고 싶어서 안달했었다. 드디어 봤다.

단돈 10,000원, 어쩌면 크다고 볼 수도 있는 돈이지만, 영화 한편 어줍잖게 보고 팝콘 콤보하나 먹으면 없어질 돈, 2시간 정도 걸려서 120여편의 굉장한 작품들을 보면서 가슴에 뭔가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 역시 뿌듯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4개의 Section으로 구성되어있고, 각각의 Section은 4개의 방으로 나뉘어져서 펼쳐져 있다.

Section 1 :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 – 벽화운동

Section 2 : 우리는 누구인가 –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Section 3 : 나를 찾아서 –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

Section 4 : 형상의 재현에 반대한다 –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그런데, 사실 Section 1~2까지의 표제는 이해가 되지만, Section 3과 4의 ‘초현실주의’(Surrealism), ‘구성주의’(Constructivism), ‘옵아트’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내 느낌대로 작품들을 봤다.

으레 여기저기 미디어에서 접해봤을,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Section 3에 있었고, 나에게 좋았던 그림들은, Section 1~3까지에 주로 있었다.

우리의 역사가 외침과 침략에 맞선 민초들의 저항의 역사라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수탈과 그것에 대항한 민초들의 역사라는 생각들을 그림들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들 중에 ‘예수’ 그리고 ‘기독교’적 상징들과 관련된 그림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서 그림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생의 절망’이라는 것이 넘치지 않아서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유럽의 가톨릭이 보수적인데 반해,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이라는 것이 ‘해방신학’이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사회변혁운동이라는 내용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런 그림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정서가 ‘기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우울함보다는 ‘비감’이 더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침잠된 정서가 느껴졌다. 몇몇의 민초들의 ‘카니발’이라던가, ‘주점’에서의 모습들이 있기는 하지만, 플랜테이션을 말하는 그림을 보고나서 다시금 그런 정서들이 묻히곤 했다.

그리고 보통 서양화를 보다보면 느껴지는 색들의 배치와 전혀 다른, 이를테면 갈색을 이용한 색의 배치와 요즘 내가 읽었던 이중섭의 굵은 터치들과 비교되는 선굵은 윤곽, 토속적인 문양을 활용한 그림들이 멋지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는 우리의 그림들에 대해 별로 눈이 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난 우리의 그림도 열심히 보지 않기는 했다. 좀 알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무책임하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사실 좀 더 알고 보았다면 너무 좋았을 듯한 전시였다. 11월까지 한다는 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가서 보고 싶다. 그 때 같이 가고 싶은 사람도 떠올려 보았다.

다시 한번 보고 나면, 그 때는 그림들에 대한 단상들을 소묘처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