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와 영주, 그리고 박선생님과 주리 삼촌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나의 아름다운 정원10점
심윤경 지음/한겨레출판

스포일러[#M_더보기|접기|동구와 영주, 그리고 박선생님과 주리 삼촌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글조차 깨치지 못한 아이 동구. 매양 집에서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천덕꾸러기로 두들겨 맞기만 하는아이다. 난독증이라서 글을 읽히는 순서가 아이들과 다르고 그래서 수업시간이 별 의미없는 아이. 전형적인 ‘가부장’인 아버지는학교에 엄마가 불려갔다 올 때마다 ‘손찌검’으로서 학습의욕을 불태워보려하지만, 오히려 동구의 학습욕구는 불살라져 까맣게 타버려다 재가 되어버린 상태다.

목포출신의 ‘잘 자란’, 그리고 다부지게 자란 엄마는 괴산의 노루너미에서 자라왔고, 3대 독자만 바라오면서 ‘늙어온’  할머니와 고부간의 갈등을 겪는다.
심지어 손이 귀한 집 ‘4대 독자’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4대 독자’를 낳은 며느리를 기세등등해 질까봐, 집에서의 권력을빼앗길까봐 구박하는 그런 할머니와 엄마는 물과 기름처럼 충돌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며느리의 ‘음식 솜씨’ 역시도 내륙 출신의할머니에게는 탐탁치 않은 일이다.

이런집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영주의 탄생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갖 돌쟁이도 안된 아이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두 돌이 되지 않았을 때 영주는 글씨를 더듬더듬이나마 읽기 시작한다. “영재탄생”.

집안의 천덕꾸러기 동수는 그런 동생을 너무나 예뻐한다. 매일 업고다니고, 아이들과 축구할 시간에도 영주랑 놀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후다닥 뛰어가고, 공부는 뒷전이지만, 따뜻한 마음은 그대로 절절히 전해진다.

나는 동생이 목을 가누지 못할 때도 그 아이를 안고 다녔고 그 분홍빛 발바닥을 매일매일 쭉쭉 빨았다. …..(중략)…..”동구 엄마, 동구 혼내키지 마. 얘가 오라비가 아니라 꼭 애비처럼 영주를 이뻐해. 터울이 져서 안 좋을 줄 알았더니 그게아니네. 동구가 영주 데리고 다녀도 되겠어. 형제가 많지도 않은 둘인데 서로 저렇게 좋아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멀리 온 것도아니고 앞집에 온 거니까 너무 혼내키지 말아. 동구야, 이제는 영주 데리고 오려면 꼭 엄마한테 허락받아야 한다, 알았지? 어서네 하고 잘못했다고 해”(pp.20-21)

영주는 이름에 걸맞게 영특하고 매력적인 아이었고, 재능이 넘치는 그런 아이였고, 매일 조용하면 분위기가 좋은 것이고, 걸핏하면 고부갈등을 부추기는 가부장 아버지와 엄마의 전쟁이 벌어져 시끌시끌거리던 집에는 간만에 웃음이 번진다.

케익이라고는 본 적도 없던 동구가 처음 케익을 먹게 된 것도 영주의 돌때였다. 전날의 일이 압권이다.

아버지와 내가 싸운다면 뻔한 결과이듯이,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좀 전까지 꼿꼿이 서 있던 엄마는 부엌 바닥을구르며 흐느끼는 비참한 모습이 되었고, 아버지는 허리에 손을 얹고 거친 숨을 뿜으며 엄마를 내려다보는,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난폭자의 모습을 확실히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떼구르르 딩동댕동…….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게 느껴지는, 살벌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간한 소리가 났다. 언제 바람같이그곳까지 기어갔는지, 조금 전까지 안방에 있던 영주가 아버지에게서 약 5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마루에서 부엌으로 내려가는문지방 앞에 있었다. 엄마가 아침에 정성들여 묶어놓은 빨간 방울 머리끈으로 한 줌도 안되는 머리칼을 분수처럼 올린 꼬마 영주가,제 생일 전날 감히 끌어안고 있던 오뚜기 장난감을 집어던진 것이었다. ……(중략)……

아버지와 눈이마주쳤지만 영주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콧구멍을 사납게 발름거리며, 두 주먹을 꼭 쥐고 허공에 당차게 휘둘러 보였다. 그러고나서는, 아버지의 안경알 너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도무지 한 돌짜리 같지 않다고 누구나 감탄하는 그 유명한 말 솜씨로 또렷이훈계했다.
 “떼찌야!”(pp.43-44)

이런 딸을 어떻게 미워하나? 다만 동구가 너무 딱했다. 동구는 자신의 이야기는 항상 할 것이 없었고, 영주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것이 일이 된다.

3학년이 되고, 자신의 담임선생님으로 ‘박 선생님’이 배정되고, 선생님이 자기를 부르자 동구는 어쩔줄 몰라한다. 너무나 아름답고좋은 선생님한테 ‘바보인 게’ 드러날 까봐 그랬던 거다. 하지만, ‘예쁜’ 선생님은 다행히 마음씨도 예뻐 동구 부모님에게 적절한표현으로 동구의 상태를 설명하고, 동구가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고, 동구 역시 그런 천사같은 선생님이 좋아져서, 선생님과결혼하고 싶어진다.

“동구야, 선생님 비밀이 하나 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면 안 돼.”
 그비밀을 듣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마음 속은 짜릿한 열망으로 불탔지만 내 몸뚱이는 장작개비처럼 더욱 뻣뻣하게굳어버렸다. 선생님은 복도에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교실에서 굳이 내 귀를 잡아당겨 귓속말을 했다. 선생님의 입술이귓바퀴에 닿았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들 중에 동구가 제일 좋아. 아니,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아.”(pp.99-100)

이런 선생님 밑에서 어떻게 충성을 안하나?

이런 평화로운 이야기들은 1979년, 동구의 3학년 때 그리고 영주의 두돌배기 시절부터 비틀어 진다.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중앙청 근처에 탱크가 몰려왔다는 날, 구경을 갔던 구야와 동구는 주리 삼촌에게 잡혀서 돌아오고 난생처럼 포장마차에 가고, 그’탱크’의 의미를 알게된다.

어찌되었건 동구에게 중요한 것은 선생님과의 단둘이 하는 공부시간이었고, 동물대백과를 열심히 읽으면서 선생님을 사모하게 된다.

1980년. 동구가 4학년이 되고, 동구는 낙을 잃어버린다. 박영은 선생님과 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새로 온 오선생은 박선생과동구가 친하다는 것을 알고, 동구를 미끼삼아 박선생과 만나려 하지만, 매번 퇴짜맞고,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온통 변태같은 짓만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믿는 주리삼촌에게 동구는 부탁을 해서, 오선생을 혼내주는 데. 그 와중에 박영은 선생님과 주리삼촌은 서로’이태석’이라는 사람을 매개로 알게 된다. 셋이 모여서 한 잔하면서 시국도 논하고 본인들의 인생도 나누는 자리에 박선생님은동구를 데려가는 데, 동구의 눈으로 펼쳐진 어른들의 세계가 재미있다.

나는 삼촌이 정말 좋았다. 모두들 스스럼없이 술잔을 주고받는 분위기 속에서 나만 혼자 어린애라서 고등어나주워먹고 있는 것도 속상했는데 이렇게 술잔을 권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이태혁이 박 선생님을 영은이, 영은이라고 자꾸부르는 것도 거슬리던 차에 삼촌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꼬박꼬박 존대말을 쓰고 나에게 술잔을 주면서 깍듯이 허락을 받는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p.212).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님의 눈시울에는 맑은 소주 같은 눈물이 찰랑찰랑 넘치고 있었다. 선생님이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선생님을 나무라거나 공박하지 않았는데 왜 우는 것일까? 아마도 저 이태혁이라는 자 때문인 것 같았다. 선생님이 학교에 다니던시절, 바지를 깨끗이 다려입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소리를 질렀던 저 잘난 척하는 말라깽이 이태혁 때문에 선생님이흐린 고등어 연기 속에서 투명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더 컸다면, 주리 삼촌처럼 나이도 많고 힘도 셌다면 당장이태혁의 무릎을 꿇게 하고 박 선생님께 용서를 빌도록 했을 것이다(p.223).

이 길로 박선생님은 광주로 내려가는데, 그녀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날 할머니가 옆집 모실 할머니와 놀러간 날, 엄마와 아버지는 싸웠고, 감을 따달라는 영주를 무등 태웠던 동수는 그만바람에 묻어오는 티끌에 영주를 놓치고, 영주는 그 자리에서 “색깔 어두운 애벌레”를 느릿느릿 보내면서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의 ‘저주’에 가까운 구박과, 아버지의 어쩡쩡한 역할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에 제발로 정신병원에 가고. 동수는 박선생님과 영주의 환영에 시달리다가,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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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서사. 그리고 옆에서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그림.

2008/09/04 – [Reviews/Books] – 공지영, 그녀가 해주는 위로. 지승호를 통해 듣다 (공지영, 지승호, <괜찮다, 다 괜찮다>, 2008)
2007/11/23 – [Culture] – 청각 & 후각 vs 시각 / 묘사 vs 서사

제목이 재미 있는 데 그냥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 이유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동구는 아마 그렇게 읽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p>

공지영의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은 그의 서사가 호흡이 짧기 때문이다. 빠른 전개를 통해서 눈을 잡아 끝까지 읽고 났을 때, 그 이야기 전반의 임팩트가 크게 오는 그런 느낌이라면.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정원>은 완만한 서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한 문장 한문장 모두가 아름답고 단단한 ‘한국어’라서 그걸 베껴놓고 손으로 쓰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글쓰기’ 연습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옆에서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그림.

사실 이 소설을 읽다가, ‘역사소설’ 따위로 환원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더 중요하게 들어오는 건 오히려 미시적 관계이고, 동구의 맑은 눈이고, 영주의 활짝 벌린 팔이고, 다부진 엄마의 엄마의 음식 만드는 솜씨이다.

다만 역사적 순간들이 그들에게 배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하여서 그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거대한 ‘정치적 자장’의 결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금씩 ‘변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할머니는 ‘거의’ 변하지 않고, 아버지도 크게 변하지 않고, 엄마 역시 그런데. 거기서 ‘동구’는 성장하고, 동구는 어느 새, 그들을 치유할 능력을 차근차근 갖게 된다. 사춘기를 겪어버려 훌쩍 ‘성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주’와 ‘박선생님’의 환영은 동구의 성장통의 표현이다.

묘사가 강하다 하여 이 소설이 ‘이야기의 힘’을 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어제 밤, 이 책을 들고 읽다가 눈을 떼지 못해 밤을 샐 뻔할 정도로 이야기 자체의 아기자기함이 ‘속도’를 넘어서서 책장을 넘기게 했다.

보통 소설가들은 자전적 소설 한 편씩을 꼭 쓰게 된다는 데, 그것을 넘어서서 심윤경이 어떤 소설들을 썼는 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온전히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으니까 말이다(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니 ‘서라벌 사람들’이라는 역사물을 써버렸군.. 어떨까?? 근데 조금 지레 실망하고 있다..).

영화로?

트렌디하지 않아도 끌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 나중에 기회가 되면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캐릭터들이 워낙 살아있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동구 엄마 역은 이미숙이나 배종옥 같은 아줌마(이미숙으로 하면 냉한 기운이, 배종옥이면 끈덕진 캐릭터), 그 또래를 조금 넘어서도 좋다면 김혜옥 아줌마,

할머니 역은 딱 나문희 캐릭터다. 아버지 역은 약간 인텔리인체 하면서 속을 드러내면 전형적인 가부장인 캐릭터, 누가 좋을까??? 장현성?

  삼촌 역은?? 덩치도 좀 있는데다가 똑똑해 보여야 한다?? 음..

김상경이 제격이군.. ㅋㅋ


마지막으로 이태석은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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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생은 누가 해야하나? ….아…..</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