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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기 ⑤ – <농민 약국>, <검은 명찰>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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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rmacy for Peasant 농민약국 – 김태일(2008), 43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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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상 도시사람이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엘레강스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럭셔리 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도시 빈민의 정서를 갖고 있고, 한편으로 먹물의 정서가 공존하다. 그래서 천상 ‘좌파 룸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쨌거나, 그래서 나에게 농촌의 이야기는 언제나 생소하다. 우석훈에게서 ‘생태주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강변을 들으면서 조금씩 농촌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농업’에 대한 필요성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편은 아니다.
감독은 농촌에서 ‘농민들’과 함께하는 약국인 <농민약국>을 찾아다닌다. 솔직히 “왜 농민약국인가?”는 잘 모르겠다. 농촌이라는 공간에 ‘현재’가 노인들의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점은 공감을 하는데. 글쎄? 결국 ‘수혜자/피수혜자’의 관계로만 구성될 것 같은 분위기. 물론 약사들의 헌신은 언제나 고마운 일이지만, 그들이 얼마나 스며들었는 지에 대한 생각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농민약국>
주말마다 무료 의료활동을 하고, 교육활동을 한다. 하지만 주중에는 사실 약사들도 인정하지만 그냥 그런 약국에서 ‘마음씀씀이’를 갖춘 것. 그것이 <농민약국>과 ‘일반약국’의 차이가 될 것이다.농민약국>
물론 농민들이, 농촌의 노인들에게 필요한 자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교육하는 일들을 병행하지만, 글쎄?
감독이 혹여 ‘농민약국’에서 진보의 가능성을 말하려 했다면, 그건 실패다. 그냥 어떻게 어떻게 농민들과 조금 더 공감하는 프렌차이즈로서의 <농민약국> 브랜드의 마켓팅이라면 그건 성공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span>
농민약국>
오히려 농민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절절하게 들렸는데, “유기농 농사 하고 싶지. 그런데, 노인네들이 뭘? 유기농으로 다 하려면 1000만명은 농사를 지어야 해”라는 식의 이야기가 오히려 우리에게 절실한 것 아닌가?
자꾸만 ‘노인들의 불쌍한 삶’을 비추는 것보다는 ‘대안을 만드는 농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았을까? 왜 <농민약국>인지를 정말 모르겠다.농민약국>
또한 ‘대안을 만드는 농민’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재편을 위한 대안을 말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뿐, 사회과학책과 동일시 하지 말지어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PD 출신 좌파의 ‘빈정거림’이 추가된 리뷰일 따름이다.
두 번째로 이어진 영화는 <검은 명찰="">이다.검은>
Black Badge 검은 명찰 – 최정민(2008), 38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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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고공탑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노조위원장 하면 항상 40대 중후반의 남성으로 볕에 그을린 새카만 얼굴에 팔뚝은 굵고, 몸도 투실투실한 노동자를 연상하기 쉬우나, <검은 명찰="">에 나오는 노조위원장은 마르고 샤프하고 하얗고 글씨도 예쁘게 쓰며, 동시에 목소리도 미성이다.검은>
1인 시위를 하는 노조원의 모습이 참 아이러니 한데. 그들이 미상공회의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 때,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주는 이는 유일하게 강남서 소속의 형사밖에 없고, 나머지에겐 외면을 받는다.
공권력 말고는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노동자의 시위.
같은 일, 아니 정확하게는 2배의 일을 같은 시간에 일하고, 임금은 절반만 받는 비정규직 GM 대우 노동자들. 그들을 회사는 정규직과 구분하기 위해서 명찰을 바꿔다는 치졸한 방법으로 그들을 분리통치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은 ‘회사’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조’까지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고 무분규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가 있었을 때, 비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섰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노(정규직 노조)-사-정이 ‘무분규 5년’을 기념하면서 희희낙락했다.
항상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던, 언제나 약속이 잡혀있어 볼 수 없었던 사장 역시 그 때에는 언제나 그렇듯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감독은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주관적이 되고, 감성적이 되고, 결국에는 쏟아내고 싶었던 말을 쏟아내고야 만다. “90년대
소련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는 승리했다고 했지만…” 결국 그 결과들이 파국을 만들어내서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이라는 모순. 거기에 대해 감독은 직접 이야기를 하고야 만다.
나중에 보았던 <태백, 잉걸의 땅> 감독은 그런 1인칭 적 말하기가 겁이 났다고 하는데, <검은 명찰="">의 감독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에 좋았다고 GV Section에서 말했다. 물론 각각의 방식이 있겠지. 아직 내가 진단할 내공은 아니라서. 그냥 들었다.검은>
노동자들의 자신들의 저항을 계속해서 기록했는데, 어쩌면 훗날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우스운 일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왔는데. 첫 번째의 <농민약국>을 보면서는 아직 ‘농민운동’의 대안이 서지 않았다는 면을 보면서, 여전히 ‘브나로드’식의 엘리트주의 운동이 넘실 대는 거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었고, 또한 감독의 시선 역시 맘에 들지 않았다. ‘운동가’들의 일상만이 일상은 아닌듯하다. ‘상징화’된 노인-농민의 틀을 벗어난 응시는 불가능한 것일까?농민약국>
두 번째의 <검은 명찰="">을 보면서는 반성도 좀 하게되는 데, 난 여전히 육체노동자의 틀로서, 그리고 어쩌면 정규직 노동조합의 틀로써만 모든 노동자들을 바라본 건 아니었는 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검은>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좀 더 이런 영화들에서 ‘빽빽함’보다는 ‘여백’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세상에 ‘여백’이 더 만들어지는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