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 70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고고70
감독 최호 (2008 / 한국)
출연 조승우, 신민아, 차승우, 손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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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로망, 고고장

울 엄마가 여고생이던 시절, 그리고 울 아빠가 갓 대학에 들어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 싸롱에서 ‘오늘은 웬지..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나오는 DJ들에 심취했던 시절. 고고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신나는 훵크(Funk)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그들이 있었고, 서울의 밤은 유신의 한가운데에서 표면으로는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깊은 호텔의 고고클럽에서는 젊은이들이 “놀자”하면서 미친듯이 춤을 추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실, 이런 시절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지금도 홍대에는 불타면서 클럽에서 미친듯이 부비를 하는 이제는 약간 식상한 힙합을 즐기는 아해들이 NB, 할렘, 그리고 쿠보 등에서 놀고 있고, 약간 돈 좀 더 있는 녀석들은 써클 등지에서 몸을 풀고 계신다. 힙합에 질력난 이들은 다양한 감성의 이태원 클럽이나, M2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이 쏟아지는 클럽에서 몸을 푹 담그고 계시거나, 아니면 잠깐 내가 발을 담궜었던 스윙 바, 혹은 살사 바에서 춤바람이 나 계시겠지.


한 때, 음악에 대해 그렇게 추억한 적이 있었다. 80년대의 음반들(들국화-전인권, 백두산-유현상, 시나위 등) 중 몇 몇의 헤비메탈 밴드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예전 음악이라는 것들은 완전 쓰레기라고 외치던 그런 순간 말이다. 70년 이전은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의 음악(그 역시도 도롯도-트로트라고 생각했었다) 얼마를 제외하면 다 개 허접스레기라고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나한테 70년대 이전의 음악은 송대관/남진/조영남 이고 <쨍하고 해뜰="" 날="">이고 <님과 함께="">이고 <화개 장터(?)>였다. 종종 나훈아까지(하지만 나훈아는 여전히 제대로 된 콘서트를 소화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개 씨발. 내가 한국 락 음악의 계보를 뒤지던 도중 발견해 좋아하려 했었던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은 심지어 트롯트 가수로 전향을 하고 말았다.</span>

그런 나에게 한국의 음악이란 마치 80년대 이후에 평지위에 우뚝 솟은 채로 갑자기 등장한 고원이었고, 90년대의 음악적 혁신들이라는 것들이 대한민국 음악의 정점이었고, 그 이후와 이전은 모두 쓰레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넥스트, 패닉,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과 그들의 가지들. 시나위 정도를 들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썰은 하여간 어지간하게 풀던 시절이었다. 물론 음악적 편린의 시절이 수십 번 지나가고(이를 테면, Queen을 듣기 시작한 99년. 김광석을 후지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2001년. Oasis를 알게 된 2002년. Velvet Underground와 Pink Floyd가 위대하다고 외쳤던 2003년. 힙합과 소울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라고 선언했던 2005년.. 뭐.. Anyway) 나름의 생각들이 생겨났지만.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은 늘상 그 바탕 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작년 7월. 신현준의 책을 우연하게 집어들 기회가 생겼다. <빽판 키드의="" 추억="">이라는 책이었다.

빽판 키드의 추억

빽판 키드의 추억10점
신현준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이 책을 읽다보니, 한국의 음악이라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고, 그의 다른 책을 또한 찾게 되었는 데, 바로 이거였다(!!!).

한국 팝의 고고학 197010점
신현준. 이용우. 최지선 지음/한길아트
한국 팝의 고고학 196010점
신현준. 이용우. 최지선 지음/한길아트

김추자와, 조경수와, 데블스와, 샌드 페블스, 배철수, 신중현, 김희갑 등이 막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그 때의 엄마와 아빠 또래들도 놀 줄 알았구나. 그리고 김추자의 음악을, 그리고 데블스의 음악을, 피닉스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아….. 졸라 멋있다…!!!”. 지금의 레코딩 기술로 그들의 음반을 녹음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어정쩡한 TV에서 나오는 새퀴들보다는 훨씬 더 멋진 음악과, 멋진 춤을 그 때의 ‘딴따라’들과 ‘날라리’들은 이미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p>

여기 쯤에서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이 과연 ‘복고’인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진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문화’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에 대해서 다시 정의하고 다시 실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필요를 느꼈다. 아.. 천지개벽의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이 책 저 책 참 많이 찾아 읽고, 예전의 한국 팝 음악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국의 락음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10점
김진송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심지어 1930년대의 서울에서도 그런 멋쟁이 날라리들이 많았었다니…

고고70. “놀자!!”

대구 왜관에서 미군 부대 앞 밴드질을 하던 놈팽이들이 뭉친다. 보칼과 브라스, 드럼은 괜찮은데, 기타와 베이스가 안되는 밴드인 조승우의 밴드와 기타와 베이스가 되는 놈들이 뭉쳐서 6인조 마구리 -> <데블스>를 만든다. 그들은 어느날 그 유명한 <서울시민회관>(불타버렸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진출하고자, 서울로 훌훌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피닉스가 지배하던 음악 세계에 깜댕이(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라도 양해해 주시길..)스러운 음악으로 승부를 내려하지만, 처음엔 잘 되지 않는다.

거기서 구세주는 바로 이거!

바로 그들의 훵크(Funk) 음악에 걸맞는 춤을 개발하는 거다. 신민아는 어느날 띠를 두르고 달려가서는 춤을 추기 시작하고, 관객들은 미치고. 어느 순간부터 클럽의 좌석은 급격히 줄어들고, 스탠딩으로 춤추는 날라리들의 멋진 고고장으로 변모한다!!

이제 춤을 출 때.. 그리고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은 “놀아 보세”로 귀결~ 신난다!!! OST를 아직 구하지 못해 들을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을 선사하는 음악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GIGS 1집의 <노올자>와 2집의 <가자>가 떠오른다는….

오늘 하루 종일 몸이 들썩들썩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춤을 추고 있었고, 손은 비트를 맞추고 있었다. 다시 기타를 진지하게 쳐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조승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지미요” “뭐?” “지미! 헨드릭스”!!!


조승우의 보컬은 아름답다. 또한 진정 이걸 다 라이브로 했담 말인가?? 놀랍다.. 사실 락음악에서 대충 지지는 기타는 별로 어렵지 않다. (이를 테면, Green Day의 Basket Case를 가장 많이 하는 이유는 가장 쉬워서이다.) 하지만 Funk 음악을 구사한다는 건, 거의 기타/드럼/베이스 모두 굉장한 테크닉과 소울이 있어야 하는 일이 되는 데, 신기하게 잘 구사한다. 놀랍다….

이적이 했던말.. “필요한 건. 시원한 냉수 펑크와 달콤한 광란. 그거면 돼. 그거면 나~~아!!”<a href=”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lk0.mp3” GIGS_1집:노올자!_01_노올자!.mp3 />lk0.mp3</a>

요즘 사람들의 감성 회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소소한 음악의 힘이라는 것. 그리고 춤의 힘이라는 것. 또한 그것들을 엮어내고, ‘따로 또 같이’할 수 있게 각자의 감성들이라는 것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 그 신경을 들어내버려서 아예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아픔’을 느꼈을 때, 그것을 ‘치유’하게 하는 예수가 했던 기적을 이 세상에서 펼쳐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전복이 시작되지 않을까? 1968은 거기에서 다시금 시작되는 것 아닌가? 재구성되는 것 아닌가?

자본주의의 막장에서 우리는 춤추고 또 노래해야 한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