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삼등성들이 이뤄내는 빛나는 별자리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2007

2008/10/11 – [Reviews/Books] – 어느 국경을 넘고자 했던 이의 여행기 – 김연수, <여행할 권리="">, 2008</a>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Wild Geese</p>

by Mary Oliver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p>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span>


기러기

by 메리 올리버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 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쟎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장편소설) 서문 중</td> </tr> </tbody> </table>

소설을 읽으면서 ‘잽’을 느낄 때가 있고, 천천히 밀려오지만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폭풍’ 같은 펀치를 느낄 때가 있는 데, 이를 테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들은 ‘잽’인 줄 알고 읽고 났더니, 나중에 점점 그 여진이 ‘폭풍’처럼 다가오는 그런 소설이었다. 반면, 김연수의 작품들은 이제 두 편째이지만, 천천히 밀려오는 ‘폭풍’ 같은 것들로 느껴진다.

소설가는 뭘 해야할까? 결국 배역들을 엮어내고,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이야기하는 능력’을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인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작품이다.</span> </p>

‘만석꾼’을 꿈꿨던 불이농촌을 일구려 했던 할아버지. 매번 쥐색 겨울 양복을 구태여 입으면서도 ‘간척’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할아버지.

그리고 라디오가 없어서 여관을 싫어하는 ‘나’의 사랑 ‘정민’.

‘훌륭한 청소년상’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졸지에 인생 역전되어 반체제 인사가 되어버렸던 정민의 ‘삼촌’.

히로뽕 밀수로 대박 부자가 되었던 할아버지 덕택에 빈털터리가 되고 풍비박산 난 가족들에게서 탈출하여 어느날 문득 ‘순수한 애국자’ 한기주를 만나 ‘조국통일’의 길로 나아가게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인간 ‘강시우’.

‘불이농촌’ 출신의 부모를 둔 강시우의 애인 ‘레이’

그 외에도 숱한 사람들이 나오고 각자의 인생의 궤적들은 떼어놓고 보면 별볼일 없는 하나의 추억담일테고, 하나의 기억의 편린에 불과하지만, 각자는 모두 엮여있고, 그것들은 각자의 ‘삼등성’과 같은 별들을 ‘빛나는’ 별자리로 만들어 준다.

1940년대와 1968년과, 1980년대와. 1990년대가 맞물려 엮여가고.

‘나’의 할아버지가 간직했던 입체 누드사진을 통해서 엮여지는 ‘피에르 루이스’. 그리고 강시우(입체 누드사진).

처음엔 각각의 이야기에 아파하다가, 비웃다가, 웃지만. 나중엔 그 이야기 각각보다 그 것들이 엮어나가는 선들과 그 선들이 엮여 만드는 공간들에 주목하게 된다.

공부하는 작가에게 독자들은 배우고, 또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것들을 통해서 세상을 다른 감성에서 그리고 또한 다른 지평의 ‘세계관’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는데, 김연수는 그런 면에 굉장히 능숙하다.

나치의 이야기부터, 1980년대의 주사파 이야기, 그리고 맑스주의 이야기, 일제시대의 이야기 각각에도 관심을 갖게 하면서 그것들을 농밀하게 엮은 나머지 “소설 쓰네”라는 말이 뭔 말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다 읽고나서 하나의 잔여물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공표’하기 위해서 썼던 서사시와, 혼자 기억하기 위해 불태우기 위해서 썼던 습작 노트의 가치. </p>

그리고 강시우가 이길용이던 시절 읊었던 시와 나중에 그가 다시 읊었던 남의 시의 가치.

그 사이들에서 어떤 것에 가치를 둬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순수하지만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예쁘지만 가공된 것인가.

할아버지가 던졌던 말들이 생각 난다.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種)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p.284).

잠깐 웃다가, ‘웃’는 다는 게 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국내용’ 문학을 넘어가고 싶은 김연수의 비전이라는 것은, 이 소설에서는 그의 엄청난 역사적 교양과 철학적 사유들을 가지고 유럽과 한반도를 넘어다니는 것으로 표출되고, 이러한 구상을 위해서 그는 <여행할 권리="">에 나왔던 도시들을 허우적 댔었나보다. 그리고 이 소설이 그 ‘여행’이 그냥 ‘관광’이 아니었다는 증거로 보인다.</span>

뭔가를 쓰기 위해서 얼마나 품을 팔았는 지에 감동하게 되고, 또 나를 채찍질하게 된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