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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영성을 수도원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느끼다 – 공지영, <수도원 기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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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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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4" target=_blank>2008/01/01 – [Life Log/A day in the life] – 2007년의 평가와 2008년 계획</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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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해를 제외하면, 난 항상 내 종교란에다가 “기독교”(정확하게 뜻을 맞추자면 개신교)라고 써왔고,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유년기를 교회에 다녔고,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부터 정착했던 면목동의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동신교회”를 10년 넘게 다녔다.
중고교 시절, “문학의 밤”이 나에게 1년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이 너무 좋았던 적이 있었고, 그냥 교회에서 말하는 것들은 내가 ‘동의’하는 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삶의 태도들을 결정짓기도 했었다(덕택에 난 20살이 훨씬 지난 지금도 뉴에이지 음악하면 이상한 ‘이단’을 연상하는 거부반응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유키 구라모토도 안 듣고, Yanni 같은 음악도 안 들었다).
하지만, 20살이 지났을 때, 이미 내게 교회 예배에서의 기도는 나에게 ‘저주’ 처럼 들렸고, 목사의 설교는 참을 수 없는 ‘기만’과 ‘독설’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들의 경건한 태도 뒤에 숨어있는 ‘멸시’의 눈초리, 믿지 않으면 당장 지옥불로 던져버리겠다는 협박의 ‘전도’타령은 “개 씨발. 그냥 지옥갈래”라는 ‘절망적인’ 결론을 내게 만들었고, 21살 이후 교회라는 곳을 버렸다.
그런 식으로 방황하고 있던 도중, 잘 알고 지냈던 10대 시절의 형 같았던 한 전도사님의 소개로 ‘경동교회’를 찾게 되었고, 마침 처음 찾아갔던 그 때의 예배에서 들었던 강원용 목사님의 설교 덕택에 ‘경동교회’에 그보다 훨씬 더 지난 어느 시점에 등록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2007년 말 그리고 2008년 초,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들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 테면 그런 거였다. 민중신학이 주는 테제들에 공감하지만, 그것과 물려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으레 ‘차가운 사회과학도’로 기억하기 십상이지만, 난 사실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고, 즉흥적인 사람인데다가, 나름대로는 ‘음악’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할 정도로 뭐 이래저래 ‘가슴’의 영역에도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찾게 되는 영풍문고, 교보문고에서 지나치다가 ‘기독교’란에 써있는 책들을 보면 보통 한숨짓고, 다시금 ‘욕지거리’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 옆칸에 다소곳이 서있는 ‘가톨릭’ 란의 책들을 보면 항상 가슴이 따뜻해 지는 느낌이 든다. 이를 테면 ‘목적이 있는 삶’, ‘긍정의 힘’ 이 따위 자기 계발서를 팔아먹는 개자식들의 책들은 “나는 믿습니다. 그러니까 승리를 주실걸로 또한 믿습니다.”식의 ‘선민의식’으로 ‘장사’를 하지만, 가톨릭의 책들은 항상 ‘생활’과 밀접해 있다는 느낌. 또한 마더 테레사 같은 ‘희생’과 ‘봉사’에 대한 강조를 한다는 점에서 항상 좋아보였다(물론 이 또한 편견일 수 있다). 그래서 엄마한테도 기존에 다니던 교회에 대해서 못 참아 할 때 ‘성당’에 나가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예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한국의 개신교를 좋아하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건 단순하게 ‘진영논리’에서의 ‘사회주의’를 택하는 문제와는 상관없는 거다. 이를 테면 ‘성공시대’를 외치면서 밟히고 억눌린 사람들의 ‘예수그리스도’를 찾아주지 못하는 한, 그리고 그것이 사회정의로 우리의 ‘삶의 조건’으로 만들어 지는 것에 기여하지 않는 이상, 그건 종교가 아니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심정들이 항상 응어리져 있는 지금의 심정으로 공지영을 읽었다. 누군가 기독교(개신교+가톨릭)를 이야기하기만 하면 거기서 기독교가 저질렀던 패악을 말하면서 핏대를 올리던 그녀가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런 경험을 가지고 유럽의 ‘수도원’들을 찾아나섰다. 기존의 ‘경건했고, 경건하고, 경건할’ 누군가가 아닌 그 ‘공지영’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에게 공지영은 우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그 공지영이었으니깐.</SPAN>
무소의>
어느 날 시위대열을 따라 명동에 갔다가 성당에 들어갔다. 쫓기고 쫓고 피 흘리고, 젊은이들끼리 서로 그래야 하는 게 마음이 아파 들어간 성당이었는데, 신부님께서 명동성당 신축기금 강론을 하고 계셨다. ….. 미사 도중 성당을 나와 최루탄 가득한 거리로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내 탓이요, 라고 말하지 않겠어…. 분명히 알아야 해, 이건 우리 탓이 아니야… 이 최루탄을, 이 독재를, 이 가난과 이 핍박을 우리 탓이라고 말하게 해서는 안 돼. 성직자들은 독재자들에게 가서 말해야 해. 그건 네 탓입니다, 라고(p.46).
거리에서, 노동현장에서, 여공들이 벌거벗겨진 채 온 몸에 똥을 뒤집어쓰고 노동자들이 제 몸에 불을 붙여 분신을 하고 거리에서 친구들이 끌려가 고문당하는 시대에 사랑이라니…. 그렇게 바보 같고 그렇게 물렁하고 그렇게 패배적인 종교라니….. 지금 이 지경에 그런 속 터지는 소리를 하고서 너만 하느님 아들이고, 너만 성인이면 다야? …. 나는 옆자리에 팽개쳐 둔 성경을 집어 유치장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로마의 식민지, 고통받는 유대 민중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 고 말한 예수를 끝내 배반한 유다의 심정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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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정탱에서 림부르크까지 공지영이 만난 사람들, 그리고 피정하면서 겪은 수도원의 기억
어느날 문득, ‘여행’을 생각하던 공지영에게 걸려온 전화에 아이들 생각하면서 머뭇거리는 체 하다가 결국은 그녀는 수도원 기행을 떠난다. 부럽다. 나에게 누군가 내 ‘기행작가’로서의 기회를 그런 식으로 준다면 난 거절할 것인가, 아니면 덮석 물고 떠날 것인가? 물론 ‘엄마’라는 직업을 나같은 미혼 남자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
파리에 도착해서 그녀가 처음 만난 이영일 신부를 통해 아르정탱의 베네딕트 봉쇄 수도원부터 그녀의 ‘수도원 기행’은 시작된다. 소박한 프랑스의 수도원부터 모던한 독일의 림부르크 수도원까지.
수도원의 사진 컷들 하나 하나는 그리고 풍경 한 컷 한컷은, ‘높이’만을 추구하고 무지막지한 ‘토목공사형’ 건축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의 건물과 길만 보는 나에게 눈을 다시 뜨게 만들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금 정의하고 있는 요즘에 더 큰 감흥을 주었다.
파리를 벗어나자 프랑스의 늦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유럽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늘 농촌의 풍경이다. 대도시야 어디든 비슷비슷하지만 유럽의 농촌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우리나라를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속내야 비슷비슷한 삶의 질곡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선 사는 게 저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가든과 카페와 OO장 여관이 없는 곳, 농촌에 살려면 그런 풍경말고 그래도 이 정도 풍경에서는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색색으로 물든 단풍에 야트막한 지붕들, 돌담들, 담쟁이들, 작은 성당들……(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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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아르정탱 수도원(Argentan)
하지만, 이런 수도원의 건물이라던가, 그 안의 내부를 바라보는 것보다 공지영에게 더 중요한, 그리고 결과적으로 더 큰 의미를 주는 것들은 여정 속에서, 식사를 같이하면서, 또 피정하면서 만났던 그리고 그를 통해서 느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이다.
어제 짐을 챙기면서 이 책자, 저 책자, 이 필름 저 필름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더니 사람의 모습은 이토록 명확했다. 내 여행의 윤곽이 문득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러니 결국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들을 만나려고 내가 이 길을 떠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p.250).
그러고 보니 이제껏 세 번의 유럽 여행이 헛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한 번도 ‘사람들’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사람 없는 풍경과 역무원들과 장사꾼들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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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지영은 분명히 회복된다.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신께서 나를 위해 날을 개게 해주시고 바람을 잠자게 해주시며 결국 이 모든 하늘과 땅, 우주만물을 지어주셨음을, 나 공지영이 아니라 당신이 지으신 ‘모든 나’를 위해서….. 나는 하느님이 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동물까지도 창조하시고 당신 스스로 “하느님 보기에 참 좋으셨다” 해 놓고 이 골치덩어리 인간을 만들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왜 아이를 낳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듯, 그렇게 알 것 같았다. 하느님은 아름다운 창조물을 그리운 것들과 나누고 싶었나 보다. 좋은 걸 생각나는 게 사랑이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을 만든 신을 거부해도 좋을 무서운 자유. 그 신성의 일부까지 부여하셨나 보다. 사랑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나를 기다려주신 것이다(p.251).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에게 하느님은 응답을 주셨다고 했다.
얘야, 내가 그래서 너를 만든 거란다(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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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아무래도 ‘대화’를 통해서 회복되고, 그들의 삶을 ‘느끼면서’ 회복되었던 것 같다. 검약하지만 베푸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영길 신부님은 프랑스인 으제니 씨 댁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하신다. 여기 오는 도중, 콜라도 사주시고, 휘발유 값도 안 받으시고, 통역비로 드린 봉투도 싫다고 하신다. 신부님 저 돈 많아요, 해도 요지부동이시다(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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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이 만났던 봉쇄 수도원의 수녀들과 수사들은 ‘세상’과 단절되는 것을 선택했지만, 고립되어있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안에서의 평화를 느꼈고, 도리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느꼈던 평화에 대해서 생각헤 보게 되고,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보고 질문을 하라기에 내가 물었다.
“부부도 말이에요. 좋아 죽겠다고 만나서 살면서 미워 죽겠는 때가 있는데, 그래도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부부는 회사도 가고 시장도 가고 좀 떨어져 있는데 여기 계시는 수녀님들은 그러니까 하느님 한 분만 보고 와서 우현이들 만나신 거 아니에요? 게다가 어디도 못 가고 맨날 한 집에 사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개성이 다르고 나이가 다른 수녀님들이 어떻게 이렇게 잘들 모여 사세요? 그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걸 보고 바로 기적이라고 말한대요!”(p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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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신앙, 그리고 나
이 책을 읽다가, 종종 이 사람이 자신이 말하던, “할렐루야 아줌마”가 되어버린 거 아닌 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 사실 세속적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이 사생아이시므로 나는 기독교가 좋았다. 가난한 마리아와 요셉이 지상에 방 한 칸 차지하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낳을 수밖에 없던 비참한 아기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지극한 신비가 기독교의 매력 아닐까. …..십자가 하나 지지 못할만큼 나약한 하느님의 젊은 아들은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괴롭게 울부짓는다. 이렇게 비천하고 낮고 나약하고 겁 많은 젊은이가 인류를 구원하고 나를 구원할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얼마나 재미없는 종교였을까(pp.204-205)?
섹스라는 것은 하느님이 맨 처음 아담과 갈비뼈로부터 하와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둘이 행했던 사랑의 행위였다. 하느님은, 둘이 알몸으로 부둥켜안는 것을 보시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고 기뻐하며 축복해 주셨다. 그런데 섹스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에 갇힌 채로, 이제 갈비뼈 한 대의 인연도 없이 유리 진열장에 서서, 몇 푼에 사고 팔리고 있었다(p.168).
혁명에 성공했던 레닌 대신, 대학시절 읽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가 떠올랐다. 트럭에 실려 끌려가다가 군인들에게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길거리에 시체로 버려졌다는, 절름발이 여성혁명가였던 그녀. 실패한 혁명은 우리들 삶에 얼룩을 남기는지 빛을 남기는지….. 생각해 보면 예수님 역시 현실에서는 실패한 혁명가였다. 그래서 당시 반로마제국의 기치를 내견 혁명당원이었던 유다에게 배신당하신 것이 아닐까… 그러나 패배한 예수의 제자들은 훗날 끝내는 로마를 점령한다(p.163).
이상한 말 같지만 나는 음식을 함께 먹지 않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학생들과 같은 음식을 나누지 않는 교장선생님, 목사님들 혹은 신부님들, 그도 아니면 사장들… 예수님이 제자들하고 따로 떨어져 기도를 했다는 구절은 읽었지만 따로 떨어져 혼자 음식 맛있게 잡수셨다는 기록은 못 보았다. 그분이 처음 행하신 기적도 술이 떨어져 민망한 집주인을 위해 어머니 마리아가 걱정하는 것을 헤아리셨기 때문이었으며—예수님이 술이 떨어져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셨다는 게 나는 참 좋다(p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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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기행="">을 읽으면서 민중신학에서 말해오던 ‘밥상 공동체’ 그리고, 또 로자 룩셈부르크의 스파르타쿠스 당 혁명봉기, ‘매매춘’에 대한 여성주의자의 해석 따위를 함께 버무려 읽게 된다. 결국 ‘삶’에서 느끼는 사유들을 가지고 사회적 이슈들을 가지고 공지영은 수도원을 돌아다니며 말한다. 어쩌면 이게 ‘신앙’을 가진 사람이 고민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항상 도그마를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되, 성경에 있는 것들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나름의 결론을 얻는 것. 그것에 ‘공식’과 ‘정통’자만 붙이지 않는다면야.. 공지영은 다시 ‘신앙’을 찾고선,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백(back)이 생겼어…”라고 말한다. 그 ‘신앙’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냥 ‘예수의 재림’과 ‘예수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심’을 믿는 것이 ‘구원’으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식의 근본주의자들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하다. 수도원>
가톨릭이 종종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거기에 매개체로써 ‘실천’을 반드시 이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내가 경동교회에 있는 이유에도 ‘실천’이라는 것에 대해서 간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히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공지영은 여전히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치유를 말하되 그것은 어쩌면 ‘공동체’적인 것이다. 그는 분명 자유주의자임에는 틀림 없는데, 그런 그가 말하는 ‘공동체’는 아마 ‘군대’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공지영이 돌아다닌 수도원 중에 역시 가장 끌렸던 곳은 ‘테제(떼제) 공동체’였다.
신교와 구교를 구분하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로 각자의 신앙고백을 하는 공동체.
나중에 생각해 보니 테제공동체는 내가 유럽에서 돌아본 수도원 중에 제일 가난한 곳이었다. 어떤 기부도, 설사 뜻있는 상속도 받지 않느다는 원칙이 50년 동안 지켜지는 곳, 모든 비용은 참가자들에게 실비로 받는 숙박료와 수사님들의 노동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실제로 밤이 깊어가는데 손수레 같은 것을 끌고다니는 수사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서울에서 테제공동체가 ‘빛과 소리로 마음을 움직인다’라는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긴 왔는데 막상 대성당에 들어가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수천 개의 촛불과 아름다운 기타소리,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거대한 천막 같은 성당에서 제 나름대로 바닥에 앉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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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꼬뮨’(자생적 공동체)으로 작동하는 대안들.. 사실 수도원들은 의레 그런 식으로 작동하기 마련인데, ‘상속’과 ‘기부’에서 벗어나서 움직이는 공동체에 대한 모델을 테제는 보여주고 있고, 또한 ‘빛과 소리’로 마음을 움직인다는 그 공동체의 예배를 꼭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정통’의 틀이 아니라 나름의 틀 말이다. ‘제 나름대로’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요즘 한동안 주위에서 들려오는 교회에서의 논의들과도 무관치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통’에 그리고 ‘하나’에 의지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 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름의 목소리들을 나름대로 펼칠 수 있는 나름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위안이 되는 지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하게 된다.어쨌거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으면서, 내가 크리스찬이라고 말하면서 만나는 세상에 대해서 풀어내는 그녀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녀가 ‘정통’을 빙자한 ‘도그마’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다는 거. 물론 그건 그녀의 이력이 그렇게 만든 연유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원래 ‘크리스찬’이 그렇게 더 유연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수도원>
이를 테면 ‘여백’과 ‘여지’ 그리고 ‘여유’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대한민국의 기독교 인들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들은 ‘그 부분은 타협할 수 없고’, ‘기독교 인은 모름지기’ 식으로 변호하려 하지만. 예수야 말로 당대의 질서를 뒤엎고 싶었던 이이고, 그야말로 ‘불온’하기 그지 없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저잣거리의 창녀와 부랑아들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웠고 식사를 나눴던 이가 예수 아니던가?당분간은 ‘앉아서도’ 유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떠나고 싶다. 발로 딛으면서 ‘몸’을 통해서 느끼는 기행. 그리고 그 생각들을 가지고 나를 가꿔나가고 싶어졌다. ‘수도원’. 매우 끌리는 여행의 테마가 될 듯하다.
꼼꼼하게 쓰여진 책 덕택에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공지영이 좋아한다던 비발디를 들어본다.<a href=”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ok4.mp3” (01)C. for Lute, 2 Violins and Basso (RV93) - 1.Allegro gius.mp3 />ok4.mp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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