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끔찍한 시대에 도망칠 곳, 베를린? – 이상은, 삶은… 여행, 2008
![]() |
삶은… 여행 – ![]() 이상은 지음/북노마드 |
빠리, 베를린, 그리고 나
순전히 홍세화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을 그 때 내가 잡았던 책이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였다. 담배 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면서도 그래야만 공공근로를 하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능청을 떠는 사람들이 있는 그 빠리. 교사중의 70%가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나라. 입장과 상관없이 남의 생각을 인정할 수 있다는, 관용의, 그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그리고 빠리.나는>
그래서, 사실 나에게 ‘빠리’에 대한 모든 생각들은 언제나 침투되지 않는 공고한 벽과 같았고, ‘영국’에 가겠다고 말하면서도 그건 불어가 자신없는 나 자신에 대한 항복과, 또한 ‘미국’에서 덜 빗겨나면서도 ‘미국’에서 무시는 안하는 정치학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고려와 같은 이야기였다. 사실 난 언제나 ‘빠리’를 꿈꿔왔다.
프랑스의 부라는 것이 제 3세계를 착취해서 그런 것이라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니들이 영국물만 먹어서 그래”라면서 치부하기 일쑤였고, 프랑스에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으면서 오직 홍세화가 말한 ‘빠리’만 꿈꿔온 거다. 27살을 먹도록.
그런데 생각해보니, 소위 임관하여 특기 교육을 받을 때, 같이 있던 사관학교 나온 녀석이 해준 말이 있었다.. “내가 프랑스를 생각하면서 꿈꿨던 것들이 다 독일에 있더라고”. 그 말을 난 마냥 군인적 마인드를 가진 녀석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러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하긴 했다. 그 녀석이 말하는 독일이 도대체 어떻길래? 나치의 나라이고, 비스마르크의 나라이고,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차가운 썩소만 봐야하는 나라가 독일 아니었던가? “난, 좀 유머러스하면서도 풍부한 감성과 ‘들뢰즈’와 같은 리듬을 타는 사유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 하면서 그 녀석의 말을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어 했었다.
뭐냐. 독일. 그리고 그 녀석이 좋아했다던 베를린은 말이다!!
이상은에 대한 기억
나한테 누군가가 다가와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하룻밤을 꼬박 새면서 고민을 해야 답이 나오겠지만, 나한테 누군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그건 고민할 필요 없이 “이상은!!!!”이라고 말할 것이다.
1988년의 ‘담다디’로 기억되는 그녀의 노래를 알고, 언젠가 들었던 ‘언젠가는’ 정도의 노래만 기억하고 있다가, 이상은에 대해서 충격을 받으면서 다시금 그 존재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활동했던 유니텔 ThePanic에서 ‘민들레f’라는 이름을 쓰던 고대석이라는 분이 계셨다. 우리 모두 ‘민들레옹’이라고 불렀던 그는 ‘현대 rock음악의 역사, 한국 팝 음악의 역사’ 뭐 이런 것들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가 종종 쓰는 글 중에 자신이 공연을 기획한다면 세울 라인업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라인업에 나온 오프닝 공연의 주자로 ‘이상은’을 꼽은 것이었다. 난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게, 키는 겅충해서 탬버린이나 두들기고 선머슴처럼 뻣뻣하게 뛰어다닐 그런 사람을 왜 그렇게 세운단 말인가?그래서 막 민들레 옹에게 따졌다. ‘박혜경’ 같은 사람을 해달라고. 근데, 오히려 민들레 옹은 강경하게 ‘이상은’ 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기에 처음에 사람들의 감성을 전채요리처럼 돋구어야 한다고. 그래서 ‘담다디가’ 도대체 그런 노래냐고 따졌더니, ‘^^’와 함께 공무도하가 MP3를 보내주었다.
번쩍!
그 후로 이상은의 모든 음반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은의 음악을 즐겨 듣게 되었었는데.
이를테면,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같은 목소리가 좋을 때가 있지만, 정신의 공명을 취하고 싶을 때 듣는 이상은의 노래는 언제나 ‘감성의 회복’을 시켜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쓰는 가사들을 생각하면서 그녀의 영혼의 ‘청명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녀의 인터뷰들을 찾아보면서 그녀의 생각들과 ‘공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녀의 말은 왠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녀는 거짓말을 잘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상은 in Berlin
그런 이상은이 책을 냈다는 것도 요 일주일 전에서야 알았다. 게다가 두 권째라니. 이렇게 무디다. 뭐 물론 입소문을 통해서 책을 알게 된 것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상은이 베를린을 다녀왔다고 한다. ‘보헤미안’이라고 느껴지는 그녀가 왜 독일에 갔는 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녀하면 딱 ‘빠리’의 몽마르뜨에서 예쁘게 노래부르는 모습이 상상되는 데 말이다.
왜 칙칙하고, 음습한 공기가 흐르면서 동시에 차가운 그 베를린에 갔냐는 말이다.
짧은 시간에 새로운 것을 흡수하기!
그런데 새로운 것이 과연 있을까? 인터넷만 열면 이곳저곳을 갈 수 있는 세상. 굳이 떠날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해외여행. 돈과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것. 나는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가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많은 것을 고민하고 싶었다.
그래서 베를린을 선택했다. ‘변화’를 선택한 도시. 시기심이 들 정도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도시. 인간의 질척거리는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이 도시가 너무도 궁금했다(p.34).
‘변화’와 ‘새로움’ 그리고 ‘예술’이란다. 그것이 ‘가치 있는’ 지는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베를린이 과연 그런 도시인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지만 말이다.
여행..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그녀는 여행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무뚝뚝한 내가 나를 향한 타인의 작은 친절 혹은 무관심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나에 관한,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크게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p.65).
뭐랄까? 그녀의 눈을 통해서 비쳐지는 베를린이라는 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꿈’을 펼치는 동네이고, 그것들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와 ‘똘레랑스’가 펼쳐진 곳이다. 게다가 물가도 싸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배려가 깔려있는 그런 동네이다.
역사적으로 부유한 동네에 예술가들이 모여든 적은 없었다. 오늘날 베를린에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까닭은 부유한, 따라서 그만큼 오만한 서구의 다른 도시들에서 맛볼 수 없는 저렴한 물가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딘지 가난해 보이는 이 도시는 그래서 예술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파멸의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서구의 현실을 구원해줄 새로운 문화가 꽃피고 있다.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베를린의 예술적 기질은 돈 냄새 풍기지 않는 소박함과 거친 느낌에서 잉태하고 있었다(p.78).
그러면서 그녀의 한국사회에 대해 늘어놓는 비판과 충고가 점점 깊이 들어오는 바늘처럼 따갑고 아프다.
우리는 어떤가. 돈이 된다 싶으면 이곳저곳에서 몰려드는 투자자들, 해당 지역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주도하기보다 중앙 정부가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 그저 단순한 요식 행위에 그치는 전문가들의 참여 등으로 얼룩진 개발 문화가 부끄러웠다. 우리의 도시 풍경에 ‘문화’가 배어 있지 않은 까닭을 베를린에 와서 생생히 알 수 있었다(p.82).
아주 개인적인 소망 하나. 나는 우리나라 방송이 지금보다 좀 더 지적이고, 실용적이고, 예술적으로 바뀌기를 원한다. 주입식 학교 공부에 길들여진 이 땅의 청소년들과 영어에 ‘몰입’한다는 이유로 진정한 공부를 외면해야만 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유익한 방송을 꿈꾸어본다. 나는 우리나라 방송이 지금보다 더 재미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좀 더 진지하고, 정직하고, 탐구하는 방송이 되면 좋겠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우연히 보다가 ‘거 참, 괜찮네’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방송,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지 고민하게 해주는 방송, 그런 방송 말이다(p.111).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맥주를 홀짝이며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갔다. 적어도 이들에겐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상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젊은이를 향한 기성세대의 무관심, 입시지옥, 환락으로 얼룩진 거리 풍경 등 환멸이 느껴지는 것들로 가득찬 풍경에 갇혀 있는 우리네 젊은이들에 비하면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가(p.224).

그리고 독일의 양면 또한 보여준다.</p>
베를린은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닌 도시이다. 한쪽에서는 전쟁의 광기를 애써 상기시킨다. 인간의 추악함을 깨닫게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여리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의 편안함을 갖춘 바우하우스가 존재한다. 단 하루 만에 천국과 지옥을 모두 다녀온 듯하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베를린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이 전 세계 예술가들로부터 ‘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들이 베를린이라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p.129).
그래서 더 끌린다. ‘재개발’이라는 광기에, 그리고 곧 이루어질 슬럼화에 파묻힐 것만 같은 ‘서울’이 끔찍하니깐……
하지만 후배를 만나서 진행되는 여행의 이야기는 그녀의 말마따나 ‘진짜’ 여행이다. 그 후배를 따라가서 정말 ‘괜찮은’ 곳을 찾았다기 보다는, 베를린 사람들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을 발견해 내니깐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베를린은 여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일부에 불과한 건지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나면 달라질 것만 같다. 서울의 홍대 앞 같은 곳에도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후배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문화를 즐기는 아이가 아니던가. 내가 꿈꾸는 여행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p.134).
</div>
“아직까지 베를린은 희망이 있어요. 외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입되면 거기에 물들지 않도록 바로 자본을 분산시켜요. 예술가들 역시 자본에 물들지 않고, 변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언니. 꼭 오세요! 언니의 음악에 필요한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에요.”
“독일어 시험에서 1등급을 받으면 대학 학비가 면제 돼요. 20만 원만 내면 되죠. 그것도 교통카드비예요. 물론 앞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과거 서독 사람들이 반대해 이곳도 학비를 받을지 몰라요. 막상 와보니 서독과 동독 사람들 의식이 너무 달라요. …”(p.152)
물론 이곳이라고 해서 모두가 잘 사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리에서 자신만의 힘으로 최고의 것을 만들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더라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 법. 베를린이 유독 사랑스러운 까닭은 성숙함을 자랑하는 다른 도시와 달리 ‘젊음’이라는 풋풋한 독소가 이 도시를 적당히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p.171).
그녀는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베를린을 ‘익히고’ 있었다. 그랬기에 피곤했고, 쉰다.
오늘은 낮잠을 자는 호사를 누려야겠다. 뼛속 깊이 잠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주입시켜야겠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너무도 부지런하게 살아간다.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위해 안달한다. 자신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남과 같은 기억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을 때에는 잠시 쉬었다 가는 게 필요하다.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행자란 원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고향에 두고 온 순례자가 아니던가(p.197).
마지막 여정에서 만나는 옷가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명품족. 사치품 브랜드를 ‘교복’처럼 입고다니는 그네들의 ‘허영’에 대해, 그리고 모든 것을 쉽사리 ‘돈’으로만 환원하는 자본의 논리에 대해 일갈하고 싶어졌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수놓은 가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주인의 감식안이 뛰어나다는 데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물건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에게선 매장 디스플레이마저도 ‘의미’가 느껴진다. 가게를 어슬렁거릴 때마다 제품이 던지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 철학적인 가게…… 사람을 홀리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p.271).
우리는 어떤가. 패션을 전공한 학생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런 논리, 저런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유치하지만 순수하고 실험성 가득했던 학창 시절의 스케치북은 던져버리게 된다. 자신의 이상은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둔 채, 오로지 돈을 위해, 잘 팔리는 옷을 만들어야만 한다. 어디 이게 옷뿐인가. 책도, 음악도, 미술도, 잘 팔리는 게 최고의 선이라는 인식이 ‘생산자’들을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돈이 되는 것들은 ‘평범함’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베를린의, 그것도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의 ‘블레스’라는 곳은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비범함’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이들은 이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옷 한 벌을 만들고, 팔더라도 “너의 길을 가라!”고. 주변을 기웃거리지 말라고.
세상은 결국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지에 오르면 설렁탕 한 그릇에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왠지 모를 통쾌함이 밀려왔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세상에 지지 말자. 세상을 이겨보자. 한 번 끝까지 해보자(p.284)!
여행은 막을 내리고. 그녀에게 베를린은 무엇을 줬을까??
지금 나는 더 이상 베를린의 장엄함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가 어느덧 그곳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쉽게 찾지 않는 베를린을 선택한 나에게 신은 너무도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p.312).
그리고 ‘어른’이 된 자신에 대한 믿음을 40줄에 알게 해 주었단다.
공존할 수 있는 도시. 그리고 ‘경쟁’이라는 개념을 희박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그리고 그 희박한 경쟁에서나마 실패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이고 품위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베를린에 가고 싶어진다.. 물론 더 자세히 알아봐야 겠지만..
그리고 이상은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결들이라는 것들이 순전히 ‘예쁜 마음’만 갖고 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겪은 삶의 궤적들을 잘 빚어서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꽉차는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 베를린의 날씨는 차고 음습했지만 말이다.
그녀의 여행 가사들이 들어있는 노래들을 다시금 음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