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나 – <마이 짝퉁 라이프>

마이 짝퉁 라이프6점
고예나 지음/민음사

처음 책을 잡았을 때는 “뭔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대가 밀어넣는 시궁창 같은 상황에서 살아가는 같은 세대가 궁금했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허무하고, 공허하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감성을 얻은 것도 아니다. 정말 잘 모르겠다. 뭐지?

20대의 허무함? 짝퉁을 진짜처럼 입는 R에 대한 생각?

칙릿을 안 읽어본 것도 아니고, 차라리 같은 경우에는 느끼는 바가 있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생각들. 뭐 이런거. </p>

그런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꿈이 너무 많아서 터져버릴 것 같은 ‘특이’한 인생을 기대하는 B. 휴학하고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혼자서 밥 잘먹는’ 이진이(나).

누군가를 사랑하다 실패해서, 원나잇을 선택하는 B, 연애를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것이 안타까워 못하는 나.

결국 B는 성형하고, 연애에 항상 성공하는 ‘연애를 잘 모른다는’ R는 남자친구를 갈아치우고 그 ‘혼전순결주의자’ 남자친구를 꼬드겨서 콘돔 60개를 구입하는 쾌거를 구입하고.

이야기가 정서를 흡입하는 맛이 있다면 좋으련만, 나한테 그렇게 오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사람이, 몰입하는 부분에서 더늠을 하듯이, 작가는 묘사와 독백부를 집어넣지만.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 전 친구와 ‘문창과 출신 작가’와 다른 전공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문창과’ 출신에 대해서 자꾸만 ‘기술자’라는 생각 만 든다. 물론 작가는 어리고(1984년생), 빨리 등단했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세상을 경험하는 대로 소설을 낼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이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나한테 느껴진 건, 말을 풀어내는 ‘기교’밖에 없었다.

기껏 인용할 수 있는 문구가 <손자병법>의 ‘간첩’편이었다니 안타까울 수 밖에. </p>

만약 여자도 군대를 가게 된다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각각 1년씩 다녀오도록 한다. 또한 성별을 구분하여 부대를 다르게 편성한다. 여자는 매달 생리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일주일의 휴가를 준다. 남자는 그것보다는 적지만 휴가를 지금보다 자주 받도록 한다. 한마디로 군인이지만 일반인처럼 사회의 감을 잃지 않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그런 삶을 영위하도록 한다. 그러면 여자들은 더 이상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재미없어 하지 않을 것이며 혹여라도 괴한을 만났을 때 당당하게 퇴치법을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도 군대를 다녀온다면 여자 특유의 시기나 질투 같은 감정들이 조금은 불식될 것이다(pp.67-68).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이 맞아. 매달 나가는 일정한 금액이 있는데 매달 들어오는 수입 역시 일정하거든. 조금 남는 수입으로 매달 빚을 갚지만 빚은 여전히 존재해.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는 더욱 늘어나고 빚을 막기 위해서 또 빚을 내지. 빚은 빚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래서 가난은 대물림되는 것 같아.”(p.109)

나는 더 이상 누군가와 사랑을 하기가 싫어졌다.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내가 누군가의 사람이 되는 것이 역겹다고 느껴졌다. 나는 사랑이란 감정의 뿌리를 죄다 뽑아버렸다. 다신 사랑하지 않을 사람. 사랑받지 않을 사람. 사랑 주지 않을 사람. 사랑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내 정신과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 심장을 갈아 버리고 싶다. 한 번도 사랑해 보지 않은,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의 것과 교환하고 싶다(p.130).

처음으로 모텔에 들어간 날이 생각난다. 1층 로비에서 많은 커플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는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비치되어 있었다. 마치 영화관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영화 시작을 기다리듯 자연스러운 이들을 보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가담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pp.166-167).

R은 자신이 가짜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녀의 가짜 미니 홈피를 관람해 줄 수 있다. R은 미니 홈피를 꾸미고 관리하는 데 하루 중 반나절을 소비한다. 그래서 실제 R의 집은 ‘미니 홈피’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R을 만나면 방금 미니 홈피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 같다. 진지하고 우울하거나, 행복하고 가볍거나. 어차피 인생은 포장이다. 무겁고 진실한 것처럼 행동해도 그 역시 연기다. R은 행복하고 즐거운 연기를 잘하는 것뿐이다. R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pp.170-171).

눈가를 조여 오는 이 느낌이 진짜 싫다. 왜 지금 내 감정상태가 ‘슬픔’인지 모르겠다. R은 내게 말했다. 미니 홈피의 감정을 바꾸면 진짜 기분도 환기된다고. 그 말이 맞다면 나는 오늘 내 미니 홈피의 감정을 바꿔야겠다. ‘그냥’보다는 ‘파이팅’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코끝이 뜨거워진다. Y에게 눈물을 보이긴 싫다. 나는 뒤돌아서서 눈물을 떨어뜨린다(p.222).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묘사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궁금해쏙, 그것에 대한 소설의 생각들이 궁금했는데, ‘생각’하지 말고 그냥 보라고 하기에 봤고, 다 보고 나니 마치 ‘동물의 왕국’을 영화관에서 본다고 가정했을 때처럼 머쓱한 느낌이 든다.

“실체에 대한 현대인들의 머뭇거림과 내면의 공허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라는 심사평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고 이런 소설에 ’32회 오늘의 작가상’을 준다는 게 그 상의 권위가 참 의심스럽다는 생각이다. 글쎄 내가 그리도 독단적이거나 편협한 걸까?

‘포스트모던’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레톨릭으로 남발한 것 아닐까? 참..

작가가 젊다는 것을 위안으로 생각한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