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이라는 말은 ‘나쁜’ 말인가?

Mauritch C. Escher – 뫼비우스의 띄(1961)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짜증이 나는 순간이 있다. “~는 정치적 수단으로 ~를 악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읽을 때마다이다.

여기서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말은 바로 ‘정치적 수단’이라는 말이고, 가장 중심되는 키워드는 ‘정치적’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무슨 주제가 되었건 ‘정치적’이라는 말만 들어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마치 어둠 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연상하게 된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곧 ‘정략적’이라는 강력한 말로 환원되고야 만다.

이를 테면 이런 기사이다.

‘감사원 개혁’ 각당 반응 – 與 “책임자 반드시 규명을” 野 “정치적악용 절대 안돼”

‘정치적’이라는 말은 이미 개념적으로도 ‘중립적’이지 않은 말이 된다.

민주노동당 의원이 쓴 “정치적 악용으로 람사르총회를 모욕한 이명박정부와 경상도” 의 경우도 그런 경우다.

이러한 류의 글쓰기는 입장으로서의 좌/우, 진보/보수와 아무 상관없이 마구 쓰이는 경향이 있다. 이건 큰 문제이다.

난 글쓴이들의 주장의 온당함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실 ‘정치적’이면 안될 무언가에 대해서 ‘정치적’이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언제나 온당하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정치적’이라는 수사를 통해서 비판을 하기
시작했고, 더 문제는 그런 비판을 받는 인간들 중 누구도 그렇게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부당함을 호소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자들의 경우’

예를 들어보자.

먼저. 대통령

대통령은 ‘정치적’이면 안 되는가? 대통령은 한 ‘정치’를 하는 ‘정당(政黨)’의 공천을 받아(물론 무소속일 수있다), 선거라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적’ 지지를 통해서 당선된 ‘정치적’ 대표이다. 그런데 그에게 늘상 하는 비판들을 보면 ‘정치적’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정치적 입장에 연연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대통령의 모든 행위는 ‘정치’이다. ‘통치’ 역시 기계적으로 결재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입장, 그리고 본인을 지지하는 집단의 입장, 또한 자신을 지지했던 ‘민심’의 향배에 따라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파 대통령이 우파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테면, 우파 대통령을 뽑아놓고 “넌 왜 우리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했는데, 우리 말을 안듣고 너희 패거리 말만 듣냐?”고 말하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지지기반과 이해득실에서 무관한 ‘정치행위’는 이 지구상에 없다.

복지와 평등,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면서 ‘우파’를 찍는 인간이 바보인 것이다.

둘째, 국회의원.

매번 언론들은 총선이 끝나고 나면 국민들의 요구를 말한다. “정치적 당리당락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가 언제나 결론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구조적으로 불가능 하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한나라당에게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한나라당이 아니길 요구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진보신당에게 ‘부자들의 감세’를 요구하는 것 역시 진보신당이 진보신당이 아니길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정치’를 한다면 ‘정치적’으로 합리적 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복지와 평등,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면서 ‘우파’를 찍는 인간이 바보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행위자’의 행위는 ‘정치적’이다. 여기에다가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봐야 바보짓이라는 것이다.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들은 왜 그런 비판에 대해서 오히려 자신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가?


거기에 한국 정치의 ‘왜곡’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인들은 버텨온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이야기하면서, ‘서민’과 ‘민심’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숨겨온 것이고, ‘국민”서민”민심’이라는 말이 쉽기 때문에 그 이야기만 들었던 유권자들은 그것에 당해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입장’과 ‘이념’과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번도 빠짐없이 ‘정치적 행위’를 해 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치적 행위’를 할 것이다.

결국 핵심은 그들의 ‘정치적’이라는 수사가 아니라 ‘어떤’ 정치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정치적’이라는 말로서 정치인들을 비판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