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대에는 모두다 망국의 한에 울었을까? –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 ②

연애의 시대10점
권보드래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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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 연애의 시대
다시, 왜 “연애”인가? 거기에 대한 저자의 물음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 1919년 3.1 운동이 지나고 난 후 곧, 교육열과 문화열이 팽창해 오르던 무렵 ‘연애’는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이 책에서 보게 될 것은 ‘왜’라기보다 ‘어떻게’의 구석구석이다. 연애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는가.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켰으며 어떻게 유행을 만들고 어떻게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소진해갔는가. 또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다. 1920년대 초반의 독한 유행은 지나갔지만 연애는 아직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어떻게? 라고.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에서의 ‘1930 년대 간도’는 우리가 잊어먹고 있는 ‘약한고리’였다. 잊혀질 것이었다. 하지만, 권보드래가 발견한 ‘1920년대의 연애’는 우리가 잊어먹지 않고 각인하는 우리의 습속이 되어있다. 그렇기에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찾아야 할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삶보다는, 각인되어있는 ‘연애’의 습관 아닌가? <연애의 시대="">는 다 읽고서야 알았지만, 논문들의 집합이고, 어느 정도 겹치는 면들이 있다. 종종 같은 문구가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름대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있고, ‘연애’의 눈으로 바라보는 1920년대가 얼마나 우리의 생각과 달리 ‘근대적’이었는 지를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의 ‘일시성’을 확인해 주기도 한다. 목차를 보자. 1. 기생과 여학생 2. 구여성과 신여성 3. 연애와 독서 4. 연애 편지의 세계상 5. 육체와 사랑 6. 연애의 죽음과 생 연애의 분출 – 신여성과의 ‘스위트홈’의 꿈 우리는 지금 2008년이라는 시점에 있어서, 소개팅을 하거나, 아는 사람 중에 누군가에게 작업을 걸거나 받고, 문자를 보낼까 전화를 할까를 고민하고, 만나는 약속을 어떻게 잡을까의 습관들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연애’가 성립되면, 몸을 섞는 행위의 순서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시점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후에 대해서 고민하며. 그런 과정들 중에서 싸우기도 하고 행복에 반하기도 한다. 그것들이 이어졌을 때, 사회적 조건과 심리적 ‘프로포즈가’ 완성된 조건들이 결합하면 결혼이라는 것이 성사되기도 하고, 아닐 경우 또 다른 사람을 찾기도 한다. 1920년대에는 어땠을까? 좀 앞섰다고 생각하면, 좀 뒤쳐져 있을 것이고, 좀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좀 앞섰을 것이다. 스위트홈의 로망 말이다. > 1920년대에 유행한 자유연애론은 분명한 의지로 선택한 것만이 진정한 자기 삶이라고 주장하였다. 조혼한 아내쯤이야 무시해도 좋았다. “그는 이 몸이 스스로 즐겨서 취한 애처가 아니라 나의 부모가 홀로 합당하여 얻어 온 며느리이니 나의 부모에게 며느리 할 자격은 있어도 나에게 아내 할 자격은 없다”는 명분이 당당하기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살 맞대고 자식 키우며 살아온 세월도 “아직 연령이 어리고 지각이 없”을 때 부모의 결정을 따른 탓이라 하면 간단히 해소되었다.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부모였다. 연애에 기초한 새로운 결혼 관계를 세우려 할 때 돌파해야 할 난적도 부모였다. 조혼한 아내란 부모에 비해 한결 만만한 부모의 투영, 힘겨운 정면 돌파 대신 선택한 우회로에서 부딪힌 장애물일 따름이었다(pp.69-70). > > 연애로 이룩된 가정이란 세계를 바꾸려는 원대한 꿈과 손잡고 있었다! 몇 년이나 헌신해온 아내, 남편에게서 버림받으면 다른 삶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한 아내에게 결별을 선언하면서 청년들이 너무나 당당했던 것은 이런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면서 젊은이들은 오히려 자기도취에 빠졌을 터이다. 새 시대를 이룩하려면 이 정도 난관은 돌파해야 한다고. 아내의 비참한 처지야 사소한, 정말 사소한 난관에 불과했다(pp.71-72). 그럼 어떤 여자들이 나타났길래 도대체 사내들은 ‘자유연애’를 주창했을까? 바로 ‘신여성’이다. > 1920년대는 ‘신여성’의 시대였다. 그러나 용어가 교체, 정착되었다고 그 의미가 분명해진 성부르지는 않다. ….. 기껏해야 1930년대에 접어든 이후 주요섭이 “신식 교육의 중등 정도를 마친 여자”를 신여성이라고, 그렇지 못한 여자를 구여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는 의견을 피력한 기록이 남아 있는 정도다(p.63). > > 그러나 과연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신여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을까? 공식적으로는 교육 정도를 중요한, 거의 유일한 조건으로 하고 있었음에도 ‘신여성’은 결코 지식 수준으로 확인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독설가들이 풍자를 아끼지 않았듯 “양머리나 말쑥한 구두꿈치나 새똑한 파라솔이나 또는 향수 냄새”(석란생, <임상순>), “비스듬히 가른 머리와 가벼이 옮기는 구두 신은 발”, 덧붙여 “날씬 날씬한 허리와 언제든지 생글생글 웃는 듯한 눈매”(현진건, <피아노>)야말로 신여성 최고의 특징이었다(p.66).

이를테면 신여성은 ‘이미지’ 그 자체의 것이었던 것이다. 그것의 실체는 어떤 기준으로 환원된다기 보다는 그들의 태도, 제스쳐, 말투, 옷차림 등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것이었다. 신식문물을 먼저 익힌 서울의 ‘모던뽀이’를 흉내내고자 했던 기혼 유학생들이 이런 ‘신여성’에 확 넘어갔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명분까지 얻지 않았는가. 어쨌거나, 여기서 배제된 여성(구여성)들은 어땠을까? > 구여성으로서도 이혼이라는 사건을 즐거이 맞을 수 있다면 좋았으리라. 당시 유행했던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그러나 구여성은 ‘집밖의 존재’로서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혼 통보 자체가 죽음을 불러오는 일이 드물지 않았을 정도로 충격은 컸다. ….. 그런데도 시대는 이들의 절망을 좀체 돌아보지 않았다. ….. 구여성의 경우에는 죽음조차 세상의 이목을 모으기에 부족했다(p.74). 그런 구여성들 중에 일부는 ‘근대 학문’을 익힘으로써 그 위기를 타파해 보려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문화적’ 취향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고, 그나마 따라가려는 사람들도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1920년대의 여성의 문맹률은 90%이다). > 계층의 구별은 신, 구의 차이 못지않게 중요한 감각이었다. 대체로 신여성이 도시와 상층 생활을 차지했지만, 교육이 갖는 해방의 힘은 농촌, 하층의 생활과 만나기도 했다. 연애라는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삶의 다양한 결 속에서 각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연애라는 주제를 관통해 존재하는 남성의 시선, 끊임없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각자의 문제였다. 연애는 모두의 것이었지만 또한 각기 다르게 길들여간 주제이기도 했다(p.89). 로맨틱 러브? – 그들의 연애 방식 21세기의 우리는 보통 연애를 하면서 가장 아끼면서도 꼭 해야하는 말을 갖고 산다. 바로 “사랑해”라는 말인데, 1920년대에는 어땠을까? > 갓 시작된 연애는 수줍은 것이었다. 사회적 공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보증한 것은 시선의 교차 정도였고, 실제 접촉의 양식은 막 개발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젊은 남녀가 만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일 리 없는데도 박래어인 ‘연애’는 그에 걸맞는 새로운 포즈를 요구하였다. 함께 길에 나서본 적 없었던 젊은 남녀는 “장안 대로상에 건달이 갈보 데리고 가듯 앞서거니 뒷서거니”라는 비난을 각오하면서 더불어 산책을 시작했다. 감히 손을 맞잡지는 못하고 멀찌기 떨어진 채(p.131).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했던 거다
그러니 이런 시대분위기에서 그들은 줄창 편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 편지는 순수한 감정의 교류라기 보다는, 애정표현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가 ‘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유일한 교류방법이었으니 말이다. > 같은 공간에서 시선을 나누게 되기는 했지만, 사랑을 확인한 사이에서도 접촉 방식은 다분히 간접적이었다. > > 편지라는 글쓰기 형식은 이런 상황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좁힐 수 없었던 몇 발자국의 거리, 이것을 사라지게 하는 직접성의 환상으로서의 글쓰기가 곧 편지였던 셈이다(p.133). > > 점차 영육의 일치가 제창되었으나, 연애의 신성과 순결성이라는 표어는 좀처럼 육체의 직접 체험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이 상황에서 편지는 간접 체험을 약속하는 훌륭한 매개였다(p.137). > > 여성의 육체가 표현되어 있는 편지의 물질성은, 때로 메시지보다 강렬한 매혹을 발휘하기도 했다. “밝으스름한 편지에 가늘게 작게 쓰인 글자”를 보면서 “문면에 나타난 것보다 더한 만족을 거기서 구코자”하는 청년의 모습은 전형적인 것이었고 거절의 편지마저 소중히 다루면서 떨리는 키스를 퍼붓는 젊은이도 등장하였다. 심지어 편지로 표현된 육체성이 젊은이를 파멸로 몰고 간 일도 있었다. 김원주의 <애욕을 피하려="">에서 여인의 마력을 피해 출가까지 한 청년을 파멸시킨 것은 다름 아닌 편지 한 장, 그것이 전해준 여인의 육체였던 것이다(p.138). 이런 내용들은 두가지 편향을 엎는다. 이를테면 ‘고릿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연애’라는 것을 할 수조차 없었다는 주장과 반대로 우리가 지금 꿈꾸는 로맨스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었다는 주장, 그 모두를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춘향전>에 나오는 성 도덕보다, 1920년대 초 처음 ‘연애’라는 개념들이 발명되었을 때가 더 수줍고 낯설게 섹스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 우리가 아는 한 그런 지연의 가능성은 근대 이후에야 개발된 것이다. 남녀가 “어디까지나 자유스”럽게 교제할 수 있고 입소문에 오르내리지 않고 버젓이 한 곳에 있을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육체는 ‘저 멀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남녀 공동의 공간이 확대되면서 만남 자체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사건으로 점차 밀려났고, 대신 만남에서 최종적인 결합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가 고안되었다. 만남 자체가 모든 것을 의미했던 상황에서는 정신과 육체를 따로 생각해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새로 펼쳐진 상황은 전연 달랐다. 만남, 교제, 결혼이 분리되면서 정신과 육체는 이 각각의 단계에서 세심하게 배분되었다. 육체는 일종의 최종심급,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확정하는 기호가 되었다(pp.153-154). 여기서 에두하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와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순결한 연애’라는 것이 과거의 연속도 아니며, ‘근대성’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 또한 이러한 주장역시도 세분화 시키자면 ‘계급’과 ‘신분’에 따라서, 즉 다른 사회적 관계에 따라서 재편된 것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풍속의 역사 110점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까치글방
문명화과정 110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한길사
즉 로맨틱 러브라는 것 역시 ‘지고지순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발성과 그 당대의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 놓은 발명품이라는 것. 평지위에 솟은 고원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우리는 그 발명품과 현실과 조응시키며 21세기에 20세기 발명품을 가지고 연애를 논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시 21세기로 점프해서 <연애의 시대="">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사랑한다’에 대해서 복잡미묘한 ‘흥분상태’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지만, 그 역시 192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고, ‘자유결혼’은 성립했지만, ‘자유연애’가 성립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고, ‘자유연애’에서 감정의 미묘한 교차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외에도 기생과 여학생의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작년 신명직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었을 때 발견한 것은 안석주가 그렸던 만문만화를 통한 ‘문물’과 ‘모던뽀이’들의 노는 문화였다면,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는 연애를 통해서 발견하는 사람들의 성도덕, 그리고 습관으로 묻어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발견하게 한다. 이미 그 때 햇가족이라는 것이 탄생했고, 로맨틱 러브가 탄생했고,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시대는 언제나 동시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격차를 두고 다른 층위에서 다르게 움직이므로, 경성의 ‘모던뽀이’와 ‘모던껄’들의 그런 연애 행태가 곧바로 전국으로 퍼지지는 않았으리라. 위에서도 봤지만, 지방에서 남편을 상경시켜 공부시키던 여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과 시댁 때문에 못박힌 가슴의 한을 새기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를 알기 위해선 무엇을 봐야하는가? 종종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적 지평을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고, 역시 그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지사적 투쟁’ 바깥에 있는 일상은 지금까지 무시되어왔고, 그 덕택에 ‘지금’의 우리를 확인하는 데에 있어서 현격하게 오류가 빚어질 때가 있었다. 밥먹는 것, 볼일을 보는 것부터 역사는 시작해야 한다는 아날학파의 선언이 갑자기 생각나는데. 어쨌거나. 재미있는 한국근현대사책 한권을 구했고, 다시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