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대엔 모두다 망국의 한에 울었을까? –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 ①

연애의 시대10점
권보드래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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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강개의 한국근현대사? 글쎄…..

중,고등학교 때 ‘역사’라는 과목 전체를 다 좋아했다. 국사도 좋아했고, 세계사도 좋아했다. 좋아했기에 별로 힘 들이지 않고 성적이 잘 나왔고, 모두가 인정했기에 남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보통 시험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르쳐 주는 행위 덕택에 암기했고, 그 때문에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역사를 좋아했던 것은 그 스토리 라인이 좋았기 때문이다. 보통 고등학교 때 사회탐구관련 과목(6차 과정 기준으로 일반사회, 한국지리, 윤리, 국사)들은 암기과목으로 분류되는 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난 사실 그 암기라는 걸 너무나 싫어했다.

다만 나에게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이야기꾼이었던 중1, 그리고 중3때의 국사선생님이었던(유일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사람인데) 반두환 선생님의 ‘처용가’ 이야기 그리고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그 선생님의 현대사 강의였고, 또 한편으로 내가 좋아했던 이문열 평역 삼국지 혹은 로마인 이야기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외우기 싫어도 계속 관련된 것들을 익히다 보니, 배경지식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라는 학문을 대학에 오면서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겪어야 했었던 ‘다현사'(다시쓰는 한국현대사)류의 ‘학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학습에 참여하지 않게 되더라도, ‘미제놈’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상한 ‘부채의식’을 느껴야 했던 시절이 잠깐이라도 있었다.

한동안 나에게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한국근현대사였고, 동시에 민족해방사였고, 독립운동가들의 시대, 유격대의 시대였다. 그 강박관념이 나에게서 점점 ‘역사’라는 학문을 멀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학생활 내내 사학과 수업은 한 과목도 이수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항상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중시했던 접근이라는 것이 ‘역사적 접근’이었다는 거다.

에릭 홉스봄, 다시 읽게 된 한국근현대사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10점
에릭 홉스봄 지음, 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영림카디널

역사론10점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민음사

하지만, 점차 한국근현대사에 대해서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건 내가 ‘민족주의’에서 해방되면서 부터였다. 짓누르던 부채가 해소되자 나에게 펼쳐진 한국근현대사는 역사에 있어서 굉장히 다이나믹한 세계였고, 단순히 ‘식민의 한’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여러가지 국면들이 뭉쳐있는 ‘근대’의 태동을 알리는 신새벽이었던 것이다(이 말이 내가 뉴라이트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야한다는 게 짜증나고 역겹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역사를 볼 수있게 된 데에는, 역설적으로 ‘한국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을 것 같은 에릭 홉스봄이 절반쯤은 도와줬다.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에겐 억눌린 자들의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게 ‘승리’와 ‘패배’만의 이분법이 아니고,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은 언제나 현명하다”라는 명제라고나 할까?

그의 낙관적인 역사 인식이, 그리고 그의 유쾌함이 ‘비분강개’의 역사학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사회사’라는 것이 ‘미시사’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 때부터 난 주사파이거나 민족주의자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대안적인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대안적 시각, 그 중점에는 경성, 근대 서울의 모습이 있었다. 모던보이가 뛰어놀고, 이상과 구보와 금홍이가 풍류를 즐겼지만, 동시에 시대를 변혁하겠다는 뜻을 지닌 ‘후지지 않은’ 영혼들의 집합소 경성.

그냥 항상 ‘빌딩숲’이었던 서울이 아닌, 꿈틀대는 서울을 다시금 재발견하게 되고, 또한 동시에 그 역사성이라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수유 연구실-연구공간 ‘너머’ 그리고 권보드래 선생

2003년 겨울, 수유 연구실-연구공간 ‘너머’로 찾아갔다. 당시 노마디즘 세미나가 한참이었는데, 그 세미나의 장이었던 사람이 바로 권보드래 선생이었다. 사실 난 세미나는 3번 참가하고 도망갔지만, 나중에 놀러갔을 때 권보드래 선생은 내 얼굴이 낯익다 했다.

어쨌거나, 인상깊었던 것은 수유+너머의 공부하는 분위기였는데, 전공과 상관없이 관심사에 모여서 ‘지도’없이 계속 이어지는 강독, 그리고 그것에서 확장되는 관심사로 다시 파고들어가는 접속과 분기의 공부하는 분위기는 너무나 매혹적이었다(지금도 제대하면, 대안지식연구회나 수유+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각자는 자신의 관심사를 다양한 학문과의 ‘접속’을 통해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권보드래 선생은 자신이 ‘한국문학’ 전공자라고 했다. 한국문학전공자가 들뢰즈를 읽고 맑스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접속에서 나온 지식들을 가지고 다른 계열의 ‘지적 토대’를 만들고 있었다. 권보드래는. 그리고 수유+너머는……

그녀를 그렇게 기억했는데, 그녀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서야 접해본다.

그리고 작년(2007년)에 읽었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와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p>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8점
신명직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연애로 읽어낸 1920년대

1920년대. 한 고등학교 2~3학년이나, 대학교 1~2학년 때인 나에게 물었다면 난 아마 이것을 연상했을 것이다. 1919년의 3.1 독립운동이 실패하고, 일제는 유화정책을 유도 ‘문화 통치기’로 진입한다. 거기에다가 메가스터디 손주은이 강의할 때처럼 “말은 문화 통치”였으나 경찰의 수는 훨씬 더 증가하여 “말만 문화 통치”인 시대. 결국 독립의 열망이 짓눌린 암울한 시대. 그렇게 말이다. 물론 저자도 초입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1920년대 초반에 대해 뭘 배웠는지는 명확치 않았다. 3.1 운동 이후의 문화 통치, 절망과 퇴폐, 사회주의 운동의 태동 등이 기껏 떠올릴 수 있는 상식이었고, 상식 너머로 어떻게 건너가야 할지는 좀체 보이지 않았다(머리말).

하지만, 권보드래가 ‘결국’ 읽어낸 1920년대는 다르다. 이걸 민족주의자들이 들으면 기절 초풍하거나 “개념없다”식으로 매도할 지 모르지만, 거기엔 ‘정사情死’를 각오할 정도의 연애감정에 빠진 사람들이 있고, 여학생들과 사귀어 보지 못해 안달이 난 상경한 유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방학 때문에 ‘대목’이 끝났다면서 ‘개점휴업’중인 소상인들의 ‘자본주의적 판단’이 숨쉰다.

‘민족’의 키워드로 읽어내지 못하는, ‘민족주의’의 그물로 잡아내지 못하는 ‘일상’이, 그리고 ‘문화’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연애’를 통해 1920년대 초반을 읽어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세계 개조의 목소리가 높던 시절 ‘연애’는 개조론의 대중적 변종이었고, 새로운 가치 ‘행복’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통로였으며, 문화, 예술, 문학의 유행을 자극한 주 원천이었다. 숱한 사람이 ‘연애’에 목숨을 걸었다(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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