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묘사로만 이어지는 연애 이야기 – 박주영,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6점
박주영 지음/문학동네

<a href="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kk5.mp3" 01. Cradle Song.mp3 />kk5.mp3</a>
박주영 그리고 <백수생활백서></span></span> </p>

박주영의 소설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의 <백수생활백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p>

 
그녀의 독서편력이라는 것이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녀만큼 읽으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으까?”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양한 종류의 소설과 철학책과 역사책이 버무려져있는 ‘독서광’의 일기. 그 소설이 맘에 들었고, 그녀의 다음 소설이 나오면 꼭 읽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박주영의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를 집었다. </p>

표지에 그려져 있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주방에서 마치 빠리의 조그만 골목에 있는 3층집 살림살이의 모습처럼 조리를 준비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사뭇 궁금하기도 했다.

예리한 감정 묘사, 현실감 없는 연애 ‘일상’

난 소설을 읽을 때, 종종 작가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읽는 것 같은데. 이 소설대로면, 그리고 예전의 <백수생활백서>의 박주영까지 포함하더라도, 작가는 연애를 안해봤거나, 혹은 상상만 했거나, 아니면 그런 ‘현실의 연애’를 증오하거나 하는 듯하다. 마지막 이유일까?

포옹, 키스, 섹스가 다 빠져버린 연애 이야기다. </p>

오로지 소통은 전화와, 같이 본 영화, 같이 해 먹는 음식이다. 먹는 음식도 종종 현실감이 없는데, 29살에 맥도널드 햄버거와 다이어트 코크. 글쎄? 내가 너무 노쇠하게 식생활을 하는 건가? (난 27살이다).

오래된 ‘남자’ 친구와, 3년 된 ‘남자친구’ 사이를 놓고, 그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이 자신의 사랑과 아무런 상관없이 오로지 ‘친구’로 만나는 것이 아무런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여자. 마찬가지로 자신의 ‘남자친구’ 역시 그의 ‘여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결부되지 않는 다면야 아무런 상관없다 말하는 주인공.

잠깐 쿨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나, 나중에 보니까 곰도 이런 곰이 없다. 그녀의 주위에 있는 캐릭터들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자신의 인생이 가장 중요하고, 남자로서 자신을 ‘치장’하지는 않으려는 수진. 수진은 그렇기에 모든 문제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답도 가장 빠르다. 반면, 남의 문제에는 ‘공식’을 대입하지만 자신의 문제는 항상 ‘낭만’으로 해결해 버리는 유리. 유리는 언제나 자신의 삶이 ‘예외’적이며,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치장할 수 있는 지를 알고 그렇기에 ‘뒤에서 호박씨 까듯’ 주인공 나영이 한 때 사랑했던 지훈과 사귄다.

그리고 은주가 등장하고, 몇 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소유욕’ 없는 연애를 한다고 해야하나? 나영은 별로 아쉬운 것도 없고,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연애를 한다. 욕심 없는 연애. 가장 편안한 상대이지만, 가장 나른한 상대. 물론 그녀가 완전히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종종 그것을 깨달았을 때 늦되게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그것 자체도 문제 삼지 않는 사람이다.

읽다보면, 그녀에게 몰입하다가 짜증이 나기시작하는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옆에 앉혀놓고 가르쳐주고 싶은 지경이다.

사실 나는 유리가 말하는 그런 세상의 계산에는 정말로 무지했다. 물론 나도 걱정을 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나와 대개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다. 계산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계산하고, 계산 없이 사는 사람은 또 그렇게 사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계산과 계략과 음모의 세게에서 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성격대로 사는 거다. 치밀한 인간은 치밀하게, 단순한 인간은 단순하게(p.210).

다만 그런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은 그렇기에 더 마음에 다가올 때가 있다. 힘을 빼고 이야기하니깐. 이건 수진 식의 ‘정석 답안’이 아니라, ‘공감하는 답’이라고 해야하나? 수학과 ‘시’의 차이라고 해야겠다.

연애도 사랑도 인생도 요리처럼 레시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재료는 무엇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만약 재료 중에 없는 게 있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해도 되지만 이것이 빠지면 요리가 안된다는 걸 명심하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놓았다가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어떻게 하고, 불 높이는 이렇게 조절하고, 재료는 이 것부터 넣어야 하며, 뚜껑을 덮어둘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조리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며,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고,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아서 내고, 먹을 때 이렇게 하면 더 맛있다, 까지(p.9).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는 것, 게다가 오직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연애는, 이를테면 덜 익거나 간이 안 맞거나 맛이 조금 이상해도 이번만 꾹 참고 먹거나 정 못 먹겠으면 그만 먹어도 되고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만, 결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결혼 이후의 시점부터 내가 선택한 바로 그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일평생 한 가지 요리만 먹어야 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요컨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는 결국 한 사람만이 차지하게 된다는 거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가장 중요한 내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p.20).

결국에 그 곰같은 주인공 나영이 소 뒷걸음 치듯 하여 뭔가를 해낸다는 설정이 참..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현실성 없이 자꾸만 다가오는 건 딱 ‘허공’에 뜬 느낌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방구석에서 연속극만 보고 연애하는 친구의 ‘디테일’ 없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기억하고, 그 말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요리에 신경을 써야 할 때는 본격적으로 연애가 시작되는 시점부터이다. 처음 데이트 약속을 정하는 순간부터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도 하면서 서로를 조절해나가야 한다.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맛을 보고 간을 맞추는 그 시점에, 상만 차려서 내면 되는 바로 그때, 나는 다 된 요리를 망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혼자 끓어서 넘치도록 멍하니 있었거나, 다 끓지도 않았는데 속은 안 익고 겉만 익었는데 성급히 불에서 내려놓은 건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요리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멍하니 있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나는 너무 늦되다(pp.194-195).

아마 나는 서둘러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순간순간 ‘나에게 꼭 너여야만 하는지? 그리고 너에게 꼭 나여야만 하는지?’를 탐색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p.232).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했지만, 사실 우리의 연애도 종종 이렇게 뭉뚝하게 무딜 때가 있지 않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격급한 만큼 빠른 ‘서사’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이 소설이 답답했던 건 그 탓도 큰 것 같았다. 그리고 소설의 ‘서사’가 빠르지 않을 경우 ‘묘사’가 현란하거나 내용이 좀 익살스럽거나 이래야 하는 데 그것도 충족을 안하고 성격만큼 느릿느릿 늦되게 천천히 살피면서 간다. 그래서 재미없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하다.

답답하긴 해도 건질말들이 많은 걸 보면, 작가가 공부를 많이 하긴하나 보다. 아직 나는 처음 이야기했던 ‘마지막 이유’로 일부러 작가가 이렇게 소설을 썼다는 생각이다.

다만 좀 짧게 툭툭 쳐서 이야기를 가져가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랑도 요리처럼 절대적이면 좋겠다. 요리는 잘하고 못하고 맛이 있고 없고가 확연하다. 내 입맛에 딱 맞는, 그래서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을 때마다 행복해지는 그 하나, 똑같은 재료로 요리해도 날마다 새로운 그 하나를 나는 제대로 선택하고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p.270).

하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남긴 한다. 이를테면 나영의 ‘권태로움’과 ‘늦됨’이 사실 그녀의 ‘천성’이라기보다는 ‘중산층’ 이상의 계급적인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기 때문이다. 나른할라고 해도 뭉게려고 해도 새벽 6시에 눈을 떠서 출근을 준비한다거나, 정 할 것이 없어서 ‘영혼’과 ‘육체’를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자꾸 아른댄다면 난 여전히 너무나 ‘사회과학’적으로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가?

물론 이런 혐의 역시 내가 작가가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석사씩’이나 해다는 사실만 갖고, 그렇게 지레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영의 방이 그려진다. 핸드 메이드 스웨터와 가지런히 놓여있는 티팟과 접시들. 그리고 한 올 한 올 수놓고 있는 하다만 십자수. James Morrison이나 토이의 음반이 꽂혀있을 것 같은 오디오. 따뜻함이 느껴지는 방이되 난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냥 다만 구경했으니 다행. 이런 느낌이다.

서사보다는 감정묘사가 강한 연애 이야기. 뭔가 특별하기 벌어지지 않기에 재미없을 수 있으되, 대신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