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7 – [Reviews/Books] – 청춘, 다시금 관조하여 바라봐도 청춘(김연수, <청춘의 문장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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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성실한 글쓰기가 주는 위안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가 너무 좋았다. 그가 다녔던 곳들에서 나누었던 사람들의 대화가 좋았다. 그리고 그가 밟았던 땅의 냄새가 기억나는 것 같았고, 지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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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있던 것은, 김연수가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상의 궤적을 찾아다닌 일이었다.
김연수가 대단한 건, 그가 여행을 간 곳 모두다 정말 글을 쓰기 위했던 것임을 스스로 글을 통해서 증명한다는 거다. 러시아에서 중국을 넘고 싶어하기만 한 게 아니라, 거기에서 <밤은 노래한다="">의 기획을 엮어내고, 그것들을 글로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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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 버클리를 돌아다니면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소재를 엮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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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태백’ 같은 글쓰기를 좋아했었다. 황석영의 ‘이빨’이든, 고은 선생의 ‘폭포수 같은 즉흥시’이든, 문재(文材)는 그런 속성의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두보’ 형의 글쓰기를 싫어했었다. 한번 쓰고 그걸 비루하게 고치고 또 고치는 글쓰기는 싫었다.
그런 생각을 바꿨던 건 최명희 기념관에서 최명희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그가 얼마나 천천히 그것들을 잘 가다듬고 또 가는 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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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문학상에서 최근 ‘김애란’과 ‘김연수’를 떨어뜨려볼까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한다. 형평성 이야기가 나와서 좀 떨어뜨려볼까 하면, 그런 글쓰기는 그들 밖에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믿고 <꾿빠이, 이상>을 집어보았다.
꾿바이, 이상 – 김연수가 바라본 김해경의 ‘이상’되기
한 출판전문 잡지사의 기자 ‘김연'(화), 그리고 이상을 찾았던, 또 이상이 되고 싶어 평생 그의 행적을 그리고 그의 그을 찾던 서혁민, 이주한 중국인의 아들이자 독실한 한국인에게 입양되어 자라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문학을 전공한 피터 주.
이상의 ‘데드 마스크’의 진위 여부, 그리고 ‘오감도 제 16편’의 진위 여부가 물려있는 이야기의 큰 강물은 때로는 격정적으로 또 다시 종종은 온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본 이야기인 이상에 대한 ‘훈고학’의 이야기가 점점 상세해지고 또 빽빽해 틈이 없어질 때 함께 풀어지는 인간의 이야기들은 이 소설의 리듬감을 더해준다.
이상의 연대기가 아닌, 국문학에서 주로 해야할, 문장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또 수사들에 대한 뜻에 대한 음미를 들어갈 때 난 졸았지만, 다시 그 ‘기술자들의 장(場)’에서 빠져나와 인생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난 눈을 또랑또랑하게 뜰 수 있었다.
한 작가의 존재감에 압도돼 평생 그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삶까지 따라한다. 단어 하나하나는 모조품에 불과해 아무런 생명이 없었으며 삶은 누군가 한번 살았던 삶이다. 푸른 나무 그림에 회색을 덧칠한 꼴이었다. 이상을 통해 한번 생명을 얻었던 언어와 삶이 그에게 와서 죽은 갑각류의 껍질처럼 한낱 껍데기에 불과했다. 타인의 목소리를 흉내낸 듯 자신감이 없었고 글에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이를 위해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pp.74-75)
김해경은 자신의 삶을 판돈으로 걸고 확률이 불분명한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작품이 아니라 삶을 판돈으로 걸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불멸의 작가 이상이 그의 기대값이었다. 도쿄에서의 죽음은 바로 그런 도박이었다. 서혁민이 평생 이상을 완벽하게 흉내내려 한 까닭도 따게 될 판돈이 무한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작가 이상이란 역사상의 한 인물이 아니라 위대한 작가라는 추상이었다. 그것은 얼굴 하얀 아이 김해경이 그랬던 것처럼 삶을 판돈으로 걸 만큼 환상적이었다(p.84)
은식기가 덜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태어난 그 아이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가면을 쓰고 죽어버렸다. 그렇게 죽음으로써
영원한 비밀 하나가 그 아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제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삼십일년 삼십이년 일’. 그 비밀이 있었기에 얼굴
하얀 아이 김해경은 부러진 날개를 가지고 영원한 작가 이상이라는 어둠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 비밀이 뭔지 알 수 없는
한, 이상이란 미친놈의 개수작에서 위대한 명작 사이를 한없이 오르락내리락 할 뿐이었다. 진짜라고 믿는 자에게 그 세계는 진짜처럼
보이고 가짜라고 믿는 자에게 그 세계는 가짜처럼 보인다. 김해경은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
이상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신이 간직한 비밀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p.243).
서혁민, 그는 김연수의 일본에서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자, 이상을 닮고 싶어했던 시절의 마지막 채로 걸러진 응결된 보석덩어리다.
그리고 김해경은 목숨을 판돈으로 ‘이상’이 되었다.

김연수가 걸은 걸음은 팔순 노인네 서혁민의 둔탁한 걸음보다 물리적으로 경쾌했을 테지만, 마음은 한결같이 거대하기에 많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김해경은 죽으면서 잃어버린 꽃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비밀, 김해경이 죽어 이상이 되는 그 비밀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가난하지도 허전하지도 않게 됐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도쿄에 와서 죽는가?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어서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며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라고 쓰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내가 죽어 영원히 이상으로 다시 사는 길이기도 하다. 내 오랜 꿈. 이로써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자-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꾿빠–이(p.166).
서혁민의 가작은 다시 이야기의 본판으로 올라오고, 그 때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한다. ‘허위’와 ‘진실’에 관한 하나의 ‘진심’
“아니요. 중요한 것은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 진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정황이 진짜라면 진짜인 것이고 모든 정황이 가짜라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 당시 저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저는 이상의 데드마스크에 빗대어 그 사랑만이 진짜라고 강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으니까요. 그냥 우스운 얘기입니다.”(p.200)
그러면서 동시에 물려있는 피터 주의 입양 이야기…
목적을 잃은 내 발길은 어두운 신촌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이것만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붉은, 혹은 노란 불빛이 바람을 타고 어지럽게 떠다녔다. 이제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없었다. 중국인으로 태어난 뒤 미국인으로 자라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 무슨 난수표 같은 삶이란 말인가(p.237)?
기술된 역사는 ‘이야기’를 담아주지 못한다. 우리에게 ‘사건’들은 하나하나의 ‘사실’로 부유할 뿐, 그 사이에서 펼쳐졌던 아무개의 밥먹다가 얹혀서 손따고, 손따준 아가씨와 정분이 나서 같이 수박을 쪼개어 나눠먹은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는다. 김연수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그 ‘사실’이라는 거하고 정분난 총각처녀의 연애담이 항상 맞물려 벌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사를 위해서 소소한 담소들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빽빽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좋다.
소설을 읽고나서의 보람이라는 것들을 난 김연수의 소설들을 읽고나서 좀 알게 된 것 같다. 고맙다.
뱀다리 1. 다만, 이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너무나 어렵다. 이상에 대해 아무런 ‘지적 이해’가 없는 이에게 이건 정말 고욕이었다. 그래서 졸았고, 늦게까지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2. 김연수 글쓰기의 매력이었던 차분한 서사는, 그런 이상에 대한 ‘문학사’속에서의 분석을 다 천천히 펼쳐놓느라고 하품을 만들어내 버렸다.
3. 다만, 이상을 통해서 자신의 글쓰기의 ‘출발’ 혹은 ‘다지기’를 해버린, 빵집아들 김연수는 확실히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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