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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지 못한 애들에게 동네 형이 말해주는 지침서 – 티스토리/알라딘 블로거 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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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face=Verdana size=2> “본 도서 리뷰는 티스토리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블로거 북 리뷰’ 행사에 참여하는 블로그 포스트입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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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face=Verdana size=2>내 17살. 강준만, 김어준,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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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t #1</p>
</SPAN></SPAN></SPAN><FONT face=Verdana size=2>지금 이런 정체성으로, 이런 감성으로 살아가게 된 데에는 ‘글’이 있었다. 물론 그 글을 읽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 작은 아빠는 나에게 <동아일보>를 집에서 보지 말라했고, <조선일보>를 똥 닦는 휴지로 쓰라고 했다. 그리고 <한겨레>를 구독하게 했다.</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
집에 도착해 <인물과 사상="">을 읽기 시작했다. 지역감정이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했고,</SPAN></SPAN></SPAN></SPAN></SPAN></SPAN> 아빠가 뉴스를 보면서 왜 권투 중계나 야구 중계의 해설자처럼 많은 말을 하고 욕을 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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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고등학교 내내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skit #2
고1, 1년 간 설득해서 드디어 PC통신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했던 PC통신은 Netsgo라는 SK Telecom 소유의 PC 통신망이었다. 그 전까지 PC 잡지를 지속적으로 정기구독했고(MYCOM이 내 처음 잡지였다), PC 통신이라는 것이 주는 매력에 대해서 항상 생각했었다. 천리안이나 하이텔, 혹은 유니텔을 선택하는 것이 원래 순서상 맞는 것이었지만, 남들과 달라보이고자(곧 그 생각은 철회되었지만) Netsgo에 가입했다.</p>
처음 PC통신을 가지고 했던 일은 채팅이었는데(그래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영화 <접속>에 나오는 번개팅을 처음 한 세대라 자부한다) 그걸로 번개팅도 하고 설/고1 여자애들과 만나곤 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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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말고 PC통신을 가지고 했던 재미를 찾은 일은, 잡지에 나온 대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Netsgo가 가진 매력 하나는, PC 통신망 자체가 Web상에 구축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주소창에 바로 World Wide Web WWW 주소를 입력하면 곧장 웹사이트에 접속이 가능했다(당시 그나마 인터페이스 환경이 편리했던 유니텔도 인터넷에 곧장 접속하려면 접속 프로그램을 띄운 상태에서만</SPAN> 가능했다).
‘씨바’ 거리면서 ‘좃선일보’를 김어준이 조지거나, 당대의 몇몇 논객들이 웹상에서 ‘발르는’ 것을 보는 순간 내 고등학교 시절 감성이라는 것은 절대로 ‘메이저’해질 수가 없었다.
Netsgo에서 유니텔로 옮겨가면서도(이건 순전히 내 친구 김호태란 녀석 때문인데) 딴지일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는 곳이 되었다. 28,800 bps 짜리 고속 FAX 모뎀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또한 PC통신 상의 토론 동아리와 자유게시판에서 논객이 되고자 엄청나게 노력했다.
<FONT face=Verdana size=2>27살. 딴지 총수와 다시 만나다.
내가 나이를 27살을 먹도록 한편으로 리얼리스트처럼 세상에 대해서 혹독하고 차가운 시선 날려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피터팬의 감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딴지일보가 저질러 놓은 짓이라 할 수 있겠다.
근데 자기계발서를 읽어버린거다. 우리의 씨바거리는 낭만 마이너들의 횽,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었기 때문에 읽은 거다.
하지만 그런 입장 다 떠나서 “씨바” 톡 깨놓고 인생 더 살고, 게다가 여전히 그렇게 씨바거리면서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연령과 상관없이 살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 김어준 아닌가.
그래서 “자기계발서 읽는 인간들 지옥간다”는 우석훈의 말에 항상 공감하던 내가 <건투를 빈다="">는 세상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읽기 까지 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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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속 화초들에게 외치는
사악한 왕비, 그 악당 보스만 딱 제거하고 나면 남는 건 오로지 오래오래 완벽한 행복이더란 어린 시절 동화부터 온갖 드라마, 영화, 소설, 게임 따위들이 몇 가지 갈등 뚝딱뚝딱 해결하고 클라이맥스 위기만 잘 넘기면 그 뒤론 행복 가득한 미래만 남는다는 식의 서사 구조, 대량유포해왔으니까.
그리고 마찬가지의 세계관으로 삶에서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몇 가지만 고치면 누구나 완벽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사발치는 오늘날의 온갖 처세술과 성공학이, 그런 단선적 행복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으니까. 당신이 갈등과 스트레스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갈등과 스트레스는 비정상이기는커녕 거꾸로 당신이 제대로 살아 있단 방증이다. 그 자체로 매우 정상적인 삶의 일부라고. 그렇게 불완전한 인간에게 평생에 걸쳐 언제나 삶의 한 요소일 수밖에 없는 걸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어떻게 행복해질 수가 있겠나.
그러니 문제 그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그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에만 언제나 집중하시라(pp.327-328).
이 책의 방침은 기본적으로 ‘문제해결’이다. Case by Case로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한 ‘횽’의 답변들이다. 그렇기에 별로 모호하지 않다. (물론 그 때문에 너무 단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듣기 싫으면 듣지 말라니, 들을 사람만 듣기!)
책의 챕터는 20~30대가 보통 사회에서 맞딱드리는 주요한 문제들을 나눠서 구분해 놓았다.
1장은 “나” – 삶에 대한 기본 태도
수요일마다 나오는 한겨레ESC의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섹션을 보던 사람들은 사실 이 책을 살 지 고민해도 되겠으나, 안 읽어본 사람들은 구입하면 되겠다. 그 글들을 그대로 긁어다 놓은 것도 사실이니까. 다만 사이 사이에 신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묶어 놓았다. 그게 궁금하면 사 볼 것.
김어준이 상담한 모든 이야기는 각자 읽어보면 되겠으나, 기본적으로 김어준이 우리에게 가장 크게 전하는 메시지 몇 가지는 좀 써봐야 겠다.
여하간 골자는 이렇다. 당신은 여태 부모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당신 인생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다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말하자면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 아이였던 거지. 특히 우리나라는 10대에게 요구하는 게 오로지 학교 성적밖에 없는 야만적인 사회인지라 당신처럼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그 마인드 세트를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p.23)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자기 전투를 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p.25).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또 다르다. 자신감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그건 우울했던 20대 초반의 몇년간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없을 거란 생각부터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존감은 아니었다. 그 시절 난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날 입증해 보이려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했던 것들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바동거렸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승인을 다른 이들로부터 따내려 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효도는, 채무다. 허나, 삶 자체의 변제, 애당초, 불가능한 거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효도, 죄의식이 되고 만다. 명절은 그 죄의식 탕감받으러 가는 날. 길이 막혀 다행이다. 갇힌 시간만큼 속죄의 진정성은 입증되나니. 반면 그 죄의식이 버거운 자들. 그 대리 지불, 자식 된 권리로 합리화해버린다. 유학도 결혼도 자식 된, 합당한 권리. 그거 풀서비스 못 하는 부모는 자격 미달자. 이들에게 부모는, 유산이다.
충분하고 엄숙하고 충분히 집단적이며 충분히 도덕적인 당신, 이제 양아치가 돼라.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갈등할 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언제나 그렇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비장하지 않은 독립군인 채로,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 그렇게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각 없이는 개인의 자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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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가혹해지는 가운데, 세상의 격자대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대에 그 격자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이 ‘욕망’하는 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것들에 몰입하는 거. 그리고 이 시대가 만들어 놓은 굴레에서 허우적 대면서 지쳐있는 이들에게 ‘소주 한 잔’ 건내면서 위로하는 거. 둘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횽’이 해주는 건투를 빈다는 말. 어디서 할 수 있겠냐? 바로 소주 한 잔 빨면서가 아닐까? 이 역시 위로라 할 수 있겠지.
어느 날인 지 모르겠는데, 문제집을 사러 교보문고에 간 그 때. <한단고기>를 비롯하여 한국 고대사 – 특히 삼국시대-와 관련된 책들을 으레 사던 나는, 사회과학란에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무크지를 구입했다. 이유는 그 며칠 전 TV에서 나오던 대담 프로그램에 강준만이 나와서 하던 말들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SPAN></SPAN></SPAN></SPAN></SPAN></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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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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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20살 때 <딴지일보>에서 읽었던 함주리의 <엑스 딴시로="" 가는="" 길="">이 생각 나는데, 이를테면 나한테 <딴지일보>는 그런 거였다. 꼰대들이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성인’이 알아야할 진리를 말해주는 그런 웹진. 그 ‘진리’에는 비단 ‘옷입는 스타일’과 ‘연애의 기술’만 있는 게 아니고, 세상을 바라볼 관점까지도 같이 한 꾸러미에 들어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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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님이시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를 읽었다. 사실 날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내가 읽은 1000권쯤 되는 책 중에 자기계발서 다 합해서 10권이 되지 않는다. 인문사회과학 700권, 소설 280권쯤에 기타 20권. 그 기타 중 자기계발서는 10권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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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나이 먹고 김어준의 정치적 입장이라거나, 사회적 입장에 대해서 언제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 문화적 감성은 훨씬 더 여성적이 되었고 섬세해졌으며,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급진적이 되었다.
그래서 이따금 그의 너무 리버럴한 입장이 문화적으로는 여성주의자를 가장한 마초처럼 보이고, 정치적으로는 ‘안전빵 제일주의’로 보일 때가 많다.
“씨바야 징징대지 말고, 형말 들어봐!”
– 김어준, <건투를 빈다=""></SPAN>
사실, <건투를 빈다="">가, (내가 세상에서 지옥에 갈 꺼라고 장담하는 기독교 인 중의 하나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따위의 개소리를 하는 책은 아니다.</SPAN>
김어준도 그것에 대해선 확실히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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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세상 어찌 굴러가는 지도 모르고, 그냥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맘을 고쳐먹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꺼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똥침’.
2장은 “가족” – 인간에 대한 예의
3장은 “친구” – 선택의 순간
4장은 “직장” – 개인과 조직의 갈등
5장은 “연인” – 사랑의 원리이다.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누구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 역시 어떤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난 이제 자신이 온전히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안다. 그래서 이제 누구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한 낭비도 없다(p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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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럭저럭 엄마가 원하는 대로 좋은 대학가서, 그럭저럭 잘 취직해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살다가 어떻게 어떻게 만난 사람과 결혼하고, 엄마한테 돈 좀 주다가, 엄마 돌아가시면 그럭저럭 회사 잘 버티고 새끼들을 위해서 그럭저럭 돈 벌다가, 그럭저럭 짤리고 그럭저럭 살다보면 곧 50대가 온다. ‘그럭저럭’은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의 잣대다. 그것에서 벗어나라고 ‘횽’은 호통치고 있는 거다.
이를테면, 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석훈과 같이 ‘봉쇄되어 있는 기회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문제의 타파는 그 ‘구조’에서 일탈하려는, 자신을 욕망하는 바를 잘 알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이를 통해서만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김어준은 정당하다.
사실 그 ‘자존감’을 갖춘 눈을 갖고 살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부딪히게 될 텐데,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경우, 그건 불가피하며 어쩌면 그것이 ‘성인’으로서 세상과 맞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다시 ‘그럭저럭’한 삶을 찾느냐,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의 답을 갖고 잠시의 욕과 평생 후회와의 접점에서 선택을 해야한다는 거. 당연한 이야기인 거다.
그래서 이야기는 가족으로 이어지고, 또 친구와 직장으로 이어지며, 연애로 이어질 수밖에….
우리 사회, 이 과도 사육과 성장 지체를, 효와 사랑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 없어도 유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아버지 있습니다”란 보험 광고, 그 뒤틀린 멘탈리티 위에 탄생했다. 부모는 뒈져도 돈은 남겨야 한단다. 지랄. 부모 자격 갖고 어따 대고 협박인가. 죽는 것도 서러운데. 더구나 이 병든 패러다임에선, 자식은, 자식인 게 유세가 된다. 미친 거지(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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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는 김어준의 쎅시한 롤모델 셋팅. 바로 이거다! “양아치가 돼라!”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양아치가 돼라(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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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김현진의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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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VERTICAL-ALIGN: top" align=left><A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378783&ttbkey=ttbpanic822253001©Paper=1">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A> – <IMG alt=10점 src="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 border=0>
김현진 지음/해냄</TD>
세상이 만들려는 무한경쟁시대의 ‘한국 여성’상을 위해 뛰는 여성들에게 해주었던 격려. “괜찮아요”를 말하는 김현진의 이야기와 김어준의 “씨바. 네가 정말 원하는 대로 부닥치면서 살아. 안됨 말고.”라고 해주는 ‘횽’의 이야기는 서로 보완해준다는 느낌이다.
허우적 대는 삶에 외치는 ‘횽’의 메시지. “건투를 빈다”. 당신, 잘 될거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신 후회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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