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분출된 연애는 그 방향을 잡지 못했다. 사실 <연애의 시대="">에도 나오지만, 연애 과정의 디테일이 개발된 것도 1930년대이고, 연애 결혼의 당위 말고 그 나머지의 ‘감정의 격정’이라는 것도 1930년대에 발명된 관념이다. 어쨌거나 ‘연애’에 대한 갈증들은 폭발했지만, 그 정착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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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상황에서 ‘동성애’라는 것에 대한 묘한 감정선들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역시 여기에서도 남성들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이처럼 유명한 신여성이 ‘실제로’ 개입된 각종 연애 사건을 대할 때는 앞 다투어 이들의 행위를 손가락질하던 <신여성> 필자들이, 실명이 사라진 ‘이론’의 차원에서는 누구보다도 엄숙하게 연애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설파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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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과거 연애지상주의를 청산함에 따라 새로운 ‘코론타이’리즘에 대하여서도 엄정한 비판을 가저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연애는 우리들의 인간성을 놉히며 우리들의 새로운 사회를 위하야 싸우는 능률을 증가하는 것이 아니면 아니 된다(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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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세계에서는 ‘필연’적이 연애라는 것은 완전무결한 ‘인간의 조건’이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여성들의 ‘대담하고 능동적인’ 연애에 대해서는 언제나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연애’의 디테일에 대한 견해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연애를 뒷짐지고 바라보는 마초들은 한편으로는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가르치려는 태도를 갖고 연애를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사회주의자’들조차도 그러한 연애와 ‘욕망’의 관계에 대해서 언제나 ‘혁명’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았고, 결국 보수주의자들에 맞먹는 ‘연애감정’이라는 것에 대한 비난을 행했다.
그것은 ‘정조’에 대한 관념을 갖고 설명할 수 있는데, 보수주의자들은 ‘인륜’을 가지고,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처녀의 임신이 초래하는 ‘경제력 저하’를 근거로 결국에는 결혼을 ‘자유연애’의 귀결점으로 결정하고 말았다.
또한 조혼으로 인한 ‘구가정’의 남자와 신여성과의 연애에 대한 귀결은 파멸이었다.
자유연애-자유결혼-신가정의 매개항은 시대가 말하는 ‘신’의 당위성으로 걸어가지만 결국 그녀들이 ‘신’이라고 여겼던 ‘연애’는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녀들의 가정은 손가락질을 받았다(p.223).
신여성의 몰락
– 신여성, 결국 엄마가 되다.
이렇게 에너지가 분출하던 신여성은 급속도로 몰락한다. 그것은 바로 ‘스윗 홈(sweet home)’이라는 가정의 표상에 신여성들이 함몰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유연애’를 통한 ‘자유결혼’ 그리고 ‘신가정’을 완성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그녀(들)는 행복한가? 그건 마치 동화책에서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터무니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결혼하면 끝인가? 육아는? 그리고 교육은? 또 일은??
1920년대 출발한 잡지<신여성>의 여학생들은 이제 10년이 지나 주부가 되었다. 잡지<신여성>의 주 타겟도 여학생에서 점차 주부를 겨낭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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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성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그동안 실패했던 신여성에 대한 계도에 성공한다. 바로 ‘과학‘을 통해서였다.
20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 그중에서도 가사노동의 과학화, 가정의 탈주술화를 주창했던 20세기 초반의 가정과학운동 혹은 가사합리화 운동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식민지 조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미국 가정학자들의 지원을 받은 이화여전 가사과의 역할이 두드러졌는데, 교육의 핵심 내용은 과학과 효율, 위생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신여성이 제대로 ‘신(新)’이 되려면 새로운 지향 즉 ‘과학’이라는 지식과 태도를 갖추어야 했다(p.232).
여자들이 삼신할미한테 백일기도를 드려야 할 일도 더 이상 없게 될 터, 과학은 확실히 여성을 해방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은 지식은 만만찮은 다른 문제를 몰고 왔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용어와 익히고 외우고 실천해야 했던 것이다(pp.235-236).
과학적으로 이상적인 모유를 수유할 수 있는 어머니는 위대한 존재였지만, 이런 결론의 또 다른 효과는 여성을 어머니로만 남아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여성=암컷=어머니=모성=가정’이란 연결고리를 더욱 강력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가장 힘든 고통은 임신과 출산이지만, 그러한 여성의 고통을 보듬는 이 ‘과학적 설명’들은 여성을 더욱더 ‘모성’과 연결시켰다. 이처럼 식민지기 적극적으로 수입된 과학은 여성의 ‘모성됨’을 공고히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기제였다. 과학적 설명이 ‘사실’을 넘어 ‘진리’가 되기 시작한 시대였기에 여성은 과학이 설명해준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p.240).
신여성이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동의 먹을거리와 관계된 영양학 지식과 조리법 지식, 아동 의복에 대한 피복학 지식, 아동에 대한 심리학 지식, 아동의 질병과 관련된 의학 지식, 아동 교육과 관련된 교육학 지식 등등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조되었던 것은 의학 상식으로 무장된 어머니의 관찰자 역할이었다(p.243).
그리하여 새 시대의 새 어머니의 새 양육법은 무엇보다 어머니가 자녀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p.250).
이광수의 부인이자 의사였던 허영숙의 이야기가 머리를 띵하게 만든다(pp.258-259). 자기 때문에 아들 ‘봉근’이가 죽었다는 절절한 고백. 그걸 읽고 집 떠나와 일할 수 있는 ‘엄마’가 몇이나 되었겠는가? 이 절절한 이데올로기적 선동. 하지만 과학은 이것을 ‘당위’로 바꿀 마력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그거 다 엄마만 알아야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된 것도 요 20년도 안된 일 아닌가?
이렇게 집에다가 ‘애엄마’를 앉혀놓은 남성들은 ‘똑똑한’ 신여성들을 곧바로 바보로 만들 준비가 완료되어있었다. 남성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부장제’ 자체의 질서는 그것들을 마구 쏟아내었다.
바로 ‘일하는 엄마’ 담론이었다.
하로밤에도 여러 남자에게 생식긔를 일 원 혹은 오 원식 밧고 파라서 생애하는 창기나 매음녀와 이러케 한집에 드러안저서 다만 한 남편에게 한 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식 파라서 그것으로 매일매일 먹고 닙고 마실 것을 엇는 이런 종류엣 안해와는 결코 다른 뎜이 없슬 것입니다. …… 다만 서로 다른 뎜이 잇다구 하면 그것은 하나는 공개뎍이오 하나는 다만 한 남자의 전용물임 외에는 업슬 것입니다(pp.267-268).
여성들이여 ‘주요섭’ 이 개새끼를 잊지 말자. 물론 ‘주요섭’만 개새끼는 아닌 데. 이 덕택에 ‘슈퍼 맘’의 신화는 지금까지 여성들을 옥죄고, 모든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엄마’한테만 더지고 있다.
집에서 애만 키우면 부억때기일 뿐만 아니라 ‘창기’에 ‘매음부’가 되는 거고, 나가서 일하다가 애가 잘못되면 죽일 년을 만드는 이 훌륭한 ‘덫’의 논리.
항상 국가는 ‘출산’을 국가적 의무로 부과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최소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사회적 책임’ 부분은 쌩깐다. 거기에서 항상 터져나가는 ‘여성’들. 그리고 동시에 애 학원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서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끼는 ‘아빠’들.
진고개를 발랄하게 뛰어다니던 신여성들은 졸지에 ‘매음부’가 되었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여자는 항상 ‘이중고’를 겪으며 슈퍼 맘의 신화에 도전해왔다.
일터에서도 ‘엄마’는 부담스럽고 ‘처녀’는 찾고, 또한 ‘여성스러운’ 리더십은 예찬의 대상이지만 ‘징징댐’은 또한 여성이 ‘사회를 잘 몰라서’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힐난한다. 반대로 ‘중성적’인 업무태도를 가지면 곧바로 남성들의 이빨에 씹히는 대상이 된다.
2008/11/18 – [Reviews/Books] – 진보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홀로서기 –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이매진
결국 모든 시선은 ‘남성’이 쥐고 있기 때문에 그 ‘시선’ 자체에 대한 거부가 없이는 아무 것도 극복되지 않는 다.
그 80년 뒤에나 생각될 문제가 이미 1920~30년대에는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현재’, 그리고 오늘에서 내일로
아마 한동안 완전히 ‘신여성’들의 모습이라는 것들이 부서지지는 않았을 테고, 또한 그 중에 ‘사회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들은(아마 친일파이거나, 사회주의자로 북에 안착했거나, 혹은 남편이 잘 나갔거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신여성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최소한 60년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물론 신여성을 당시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시의 여학생이라는 사람들이 ‘한줌’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잠재성’이라는 것들은 당대 사회에서 ‘먹물’ 전체를 혼동스럽게 했고, 고민하게 했고, 악을 쓰게 했다. 그리고 신여성들의 영향이라는 것들이 지역적으로 ‘못된 걸’들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 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때 ‘신여성’이 주류였냐에 대한 논쟁은 ‘지금’을 생각해보면 불필요한 논쟁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신여성’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잡지<신여성>에 나타났던 시선들이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재’와 대어볼 때 놀랄 만큼 그 동형적으로 나타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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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많은 한국의 남성들은 앞의 차가 질척대면 운전하다 말고 “저 차 여자가 운전해서 그러지”라고 말한다. 또한 여전히 미인대회는 성행하고 있고, 여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외모’가 절대적이다. 다만 다른 것은 그 시선에 저항하는 ‘현상’으로서의 ‘신여성’ 같은 운동이 있느냐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동안 ‘알파걸’ 신드롬이 성행했었다. 다방면에 뛰어난 여자 아이. 각종 고시에서 ‘여성’들의 약진. 하지만 이러한 현상 뒤에 곧바로 ‘가부장제’의 기계들은 격렬하게 움직인다. ‘군가산점 제도 부활’에 환호하는 예비역 집단. 그리고 은밀하게 작용하는 ‘가족주의’의 마수.
이는 여전히 ‘신여성’의 1920~30년대의 ‘여성 문제’에서 크게 여성들이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슈퍼맘’이 되길 강요하는 사회. 자신의 몸을 남성의 재력에 의탁하려는 경향. 반대로 돈을 빌미로 ‘예쁘고 잘나가는 집안의 딸’을 기대하는 속물 근성.
가부장제와 속물자본주의가 교차하면서 여성을 이중 착취하고 있다.
요즘 지속적으로 ‘근대’를 읽고 있다. 1920~30년대 ‘근대’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그 때의 문제들이라는 것들에 몇 가지 이미지들만 더 붙고 그 근본적인 멘탈리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 때의 선각자들이 지금 허우적 대는 사람들에게 종종 ‘오래된 현재’의 교훈을 준다는 데에 있다. 구보씨가 그랬고, 이번에 읽었던 <신여성>에 나오는 여성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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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전히 난 1920~30년대 경성, 그리고 모던뽀이, 모던껄을 더 찾아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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