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에 쓰는 내 자서전

[#M_더보기 접기

1. 출생

1982년 11월 6일 오후 2시. 안암동 고대 앞 어떤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이따금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데,

그건 오로지 ‘전라도 사람’을 ‘벌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개새끼야. 나도 전라도 사람이야. 어디 한 번 하던대로

해보지?”라는 입장표명이 필요할 때의 일이다.

2. 가족

내 아버지는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청년기부터 지금까지 ‘지역감정’에 대한 피해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사람이다.

1980년의 광주는 아버지에게 ‘전두환 저 개 호로새끼. 빨갱이만도 못한 새끼’라는 말을 뉴스를 보면서 하게 만들었고,

1987년 이후에는 그 대상이 ‘노태우’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뉴스를 보면서 욕하는 일은 잦아들었지만, 1997년

OECD 가입과 동시에 밀어닥친 경제한파로 회사에서 잘 나오던 ‘학자금’이 끊기게 되자 “한나라당, 이 빨갱이 만도 못한

새끼들”을 외치기 시작했고, 여전히 한나라당을 저주한다. 2002년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2번을 찍었고, 2007년에는 처음으로

1번을 찍었다(물론 그 의미는 같다).

내 엄마는 강화도에서 태어나 화문석, 인삼, 강화섬쌀, 한우농장을 경영하는 외할아버지의 막내딸로 태어나 ‘연애’를 할 줄 몰라,

‘선’만 죽어라보고, 26살 때 작업걸었던 한 공군 장교의 프로포즈를 거부한 결과 결혼이 2년 더 딜레이 되었고, 28살에

‘살갑고, 걸음이 쟀던’ 32살의 노총각으로 판명되는 전라도 사람과 결혼했다. 강화사람 독하다는 이야기가 적절할 때가 있는 데,

그건 순전히 우리 엄마 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일 거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30대의 ‘개집공장’ 사장의 사모로서 우리

엄마는 2년 만에 집을 샀다. 그리고 아들 둘을 ‘사립’학교로 보냈던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역시 아버지의 지병과

사업 덕택에 꼬였고, 그 이후로 우리 집이 잘 나간 적은 없었다.

3. ‘장래희망’으로 보는 내 생활의 변천

유치원 때, 난 ‘기술자’가 되겠다고 쓴 적이 있다. 그건 순전히 ‘과학자’라는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기름밥 먹는 인생’과 ‘망치질 하는 인생’의 고단함을 설명하면서도 별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1~4학년 때에는 아무런 ‘장래희망’이 없었다.

난 항상 맞기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였고, 땅과 대화하는 아이였고, 엄마 품 말고는 아무런 위안이 없었고, 피아노를

태권도보다 먼저 배운 여성적인 아이였다. 매일 내 짝에게 꼬집히고, 내 뒷자리 새끼한테 발로 맞고, 앞의 녀석에게 주먹으로 맞곤

하는 게 내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생활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빠가 컴퓨터를 사왔다. 386SX
대우 컴퓨터. 2MB 램과, 25MHz의 처리속도, 5.25 Inch 디스켓 하나가 들어가고, 80MB의 하드디스크가
탑재되어있는 그 녀석을 갖게 되었을 때, 내 꿈은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리고 전교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카피’하러 오는 녀석들로 드글드글했고, 컴퓨터를 산 다음 날 내 컴퓨터는 바이러스 때문에 포맷을 해야했다. 그건 순전히 백신을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컴퓨터를 산 그 다음날의 기억이 아픈데, 컴퓨터를 산 날 가족들과 함께 HOME PC(당시 대우 컴퓨터에 달려있던

번들 프로그램)에 내장되어있는 노래방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방 시연은 컴퓨터를 산 것의 정당성을 그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였고, “그 비싼 걸 왜 벌써?”라는 아빠의 투정에 맞설 수 있는 무기였다. 하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은 HOME PC

노래방은 내 정당성의 몰락이었다. 처음 “내 컴퓨터”를 가졌다는 뿌듯함과 ‘HOME PC’ 화면 두 가지가 묘하게 향수를 느끼게

되었고, 그 생각만 하면 여전히 아프다. 그 ‘아픔’ 때문에 난 대우 서비스센터 아저씨를 불러 ‘HOME PC’를 깔아달라고

했고, 3만 원을 냈었지만, 결국 그 아저씨는 ‘HOME PC 노래방’을 살려내지 못했다. 아팠다.

“Format C:/Q/U/S”가 얼마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명령문인지는 MS-DOS 5.0을 써본 사람 만이 안다.

컴퓨터를 전교에서 가장 잘하게 되고, 타이핑 속도가 1000타를 선회하게 되었을 즈음부터 난 맞지 않았다. 난 나를 때리는 새끼한테는 ‘카피’를 안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내 처음 386SX 컴퓨터에 대한 기억은 면목동의 더러운 담벽과, 아직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았던 도로와, 언제나 삥을 뜯거나

아무데나 주먹을 날릴 것 같았던 얼굴에 흉터 있는 애들의 기억과 항상 물려있다. 그래서 난 항상 도망치듯 3M이나 SKC 플로피

디스크 통에 가득 1.2MB 디스켓을 채워가지고 뛰어서 집에가고, 또 ‘카피하러’ 갔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난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했다. 내 적성검사도 항상 ‘이과’라고 내가 갈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 때 당시 내 IQ는 148이었다(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멘사 회원이 되려면 140이면 된다고

하던데……

고등학교 1학년, 방송반 아나운서가 되었다. “우리들의 소리를 전하는 MBS, 면목고등학교 방송국입니다.”라는 말을 만 번쯤

펜을 물고 했다. 잘 몰랐는데, 선배들은 나한테 “너는 혀가 좆나 짧아”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난 펜을 물었다. 영화

<신라의 달밤="">에서 차승원과 이성재가 싸우던 <파고다 온천장="">에서 벌어졌던 17살의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난 동기 박찬웅과 함께 사회를 봤다. 떠는 바람에 2/3의 내용을 다 날려버렸고, 가장 중요한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를 빼놓을 수가 없죠”를 빼놓고 유유자적하게 사회는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서글픈 마음에 담배를 물고 담을 넘어 경주 불국사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 옆에 있던 <불국사 교회="">가 잊혀지지 않는다. 담을 타고 노래방을 가고, 유원지에 주차(?)되어있는 리어카에서 팩소주를 털어다가 마시던 그 때, 그 ‘진로’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빨대로 소주를 먹는 것의 의미를 알았을 때, 난 “남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나운서 일에 실증을 느끼자 마자, PD가 하고 싶어져버렸다. 그래서 희망사항에 PD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나”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고등학교 방송국 배경으로 최강희, 안재모, 김래원, 허영란, 김수근 등이 출연했던 드라마. 난 그 환상 때문에 방송반을 택했고, 결국 PD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때 생각했던 PD는 ‘라디오 PD’의 일로만 생각되는 그런 PD였다. 대학에 진학해서, 깃발
든 선배들을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난 한동안 ‘혁명가’를 꿈꿨다가, 다시 Journalist를 하겠다고 하다가, 학자를 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빙빙 돌아 PD, 저널리스트, 학자, 정치인이라는 희망 4개를 늘어놓고 절충하거나 아니면 그 중에
“선택해야겠지?”라면서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중이다.
공부는 하고 싶고, 세상은 바꾸고 싶고, 또 현장을 뛰면서 남들 잘 못보는 것들을 봐서 표현하고 싶은. 그러니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놀고 싶어 환장하는 지도 모르겠다. 4. 간단명료한 문답 – taste & political orientation 음악 : Blues, Funk, Swing, Modern Rock, Folk, Hip-hop. Groovy하면 다 좋다. 다만 Enya, Bjork 등의 북구 유럽 음악들에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중. Jamiroquai, Stevie Wonder, GIGS, Panic 을 좋아하고. 종종 유희열의 ‘토이남’ 정서에 빠지기도 한다(http://zenovelist.tistory.com/716) 영화 : 로맨틱 코미디(Working Title-addiction). 리얼리즘이 살아있는 영화는 다 좋다. SF에 이질감 있음. 그렇다고 Techno-phobia는 아니다. : Swing을 좀 췄다. (2008/01/07 – [Culture/Travel & Play] – Swing Dance 시작하다~) 작가 : 김연수, 알랭 드 보통, 이외수, 구보씨(박태원), 김애란, 우석훈 정치적 지향 : 감성좌파(2008/12/24 – [Life Log/A day in the life] – 감성 좌파)/사회주의자 지지하는 정당 : 진보신당 주로 읽는 책 : 사회과학 40%, 문학 50%, 기타 10%(문학의 비중 상승중) : 호가든, 사케, Hite MAX+진로(소맥!!!) ; 주량은 소주 기준 1~3병 널뛰기~(잇힝. 응?), 그리고 쌈마이 와인(칠레산 까베르네 소비뇽) ;;;;;;;;;;;;;;;;;;;;;;;;;;; 사실. 술이면 항상 좋다. 알콜 중독은 아닌데, 의존은 맞을 것 같다고 며칠 전 후배가 조언했다 ㅎㅎ. ;; _M#] 계속 업데이트 예정(now 2009. 7. 1 ver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