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영어학원 마친 여자아이 런던에서 동포를 만나다 – 시주희, <20인 IN LONDON>, voozfirm

20인 런던4점
시주희 지음/부즈펌

 2008/05/13 – [Becoming George Bernard Shaw] – UK! UK! UK!!!

한 1,2년 전부터 영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 영국을 생각했던 것은, 미국에 가서 정치학을 공부할 경우 거기서는 기껏해야 기술자밖에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지금은 조금 대안적인 교육을 하는 몇 곳을 알아내긴 했다) 때문이었다. Anthony Giddens가 썼던 를 읽으면서 정책 입안자이자 사상가인 기든스가 각 정파의 책들에 대해서 다시 반비판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이게 바로 영국의 정치이고 이것의 사상계라는 생각에 빨려들었다. David Held와 Anthony Giddens,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Susan Strange의 그 영국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다시 생각해 보니, 정치학 말고도 다른 측면에서도 영국이 나한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이라는 것들도 미국 헐리웃의 영화가 아닌 영국의 Working Title 식의 로맨틱 코미디였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영화 의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걷던 길을 걸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이 눈에서 아른 거렸으며, ex-girlfriend에게 했었던 이벤트를 알려주었던 의 그 영국을 그리워 하게 되었다. </p>

그래서 남들이 CNN이나 AP NEWS를 청취할 때 난 BBC와 Guardian POD Cast를 대신 들었고, 남들이 미드를 볼 때 난 를 봤다. </p>

주위에 영국을 갔다온 사람, 가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곧이어 말을 붙이고 이것 저것 물어보고 “나도 나도!”를 외쳐대기도 했었다.

영국에 가거든 Fabian Society의 점잖은 사회주의자들에게서 21세기의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지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영국에 대한 생각들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책들과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 놓은’ 구성물에 가까웠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내 식으로 해석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당장 히드로 공항에 내린다면”에서 부터 시작될 살아갈 이야기에 대해서 무심했다는 걸 요즘에서야 자각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지금 꿈꾸는 20~30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가 궁금했기에……

시주희(http://www.juhee-c.blogspot.com/)가 쓴 <20인 런던>(혹은 <20인 IN LONDON>)을 부대에서 교회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 들렀던 영풍문고에서 집었다. 딱 대놓고 영국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했던 책들을 별로 본 일이 없어서, 거기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너무나 끌렸다.

난 자기계발서에는 혐오감이 있지만, 보통 자신들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에는 굉장히 관심이 많이 있다. 일단 읽기가 편하면서도 나름의 삶의 결들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기대도 그런 것이었다. 그들의 런던살이는 어떤 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책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읽혔고, 몇 시간이 지나자 책에 씌여있는 모든 글귀를 읽을 수가 있었고, 모든 사진을 다시 되돌려서 볼 수도 있었다.

몇 가지의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다. 우선 영국의 물가는 엄청나게 비싸지만, 동시에 최저임금이 시간당 10,000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학생비자를 가지고서 한달에 총 80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고나면 최소한의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다는 것. 둘째, 영국 안에서 취업을 하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데 그것은 기업들이 취업비자를 외국인에게 해결해 주고 채용했을 경우 세금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셋째, 그래도 영국에 가는 대다수의 유학생들은 먹고 살만한 집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넷째, 하지만 그 먹고 살만한 집의 아이들도 대체로는 다 알바를 뛰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섯째, 영국에서 뭔가 작업을 하려면 myspace를 활용하라는 것

책을 읽고, 다시 덮고 저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강남역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영어 학원들 어디 한 군데에서 나와 스타 벅스에서 더블샷 에스프레소를 하나 들고 나왔을 저자가 떠올랐다. 영어로 된 원서 읽기는 졸음을 유발하는 일이기에 싫고, 학원에서 내준 IELTs 문제 푸는 데에 지쳐서 겨우 겨우 버티다가 영국행 티켓을 끊고 유학원을 적당히 맡아서 적당히 유학간 24살 짜리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하지만 저자는 쾌활하고 낙천적이고 또한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다.

저자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모두 저자가 ‘아는’ 사람들이다. 저자의 전공이 Fashion Styling and Photography이기 때문에 그녀가 만난 사람들도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 나면 계통이 비슷하다. 이를테면 음악하는 사람은 없고, 다 패션, 건축, 미술 이런 식이다.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 같은 사회과학도에게는 도움이 되긴 한다.

명료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정치학을 석사 전공하는 PD 지망생 하나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는 자신들의 ‘명랑 소녀(년) 성공기’들이 많았다.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저자의 기획은 성공했을 지는 모르겠는데, 다만 아쉬운 것은 영국이라는 사회에 대해서 나름 느끼는 사회적 생각들, 정치적 입장들 이런 것을 굳이 어려운 말이 아니라도 좀 들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그건 저자의 요량 밖이다.

다만 이야기의 결을 통해서 추론해 볼 수는 있었다.

근데 참 재미있는 게……, 영국 사람들의 성격이 그 사람 집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거 아세요? 영국 사람들이 참 보수적이잖아요, 집도 똑같아요. 겉은 보수적인데 안은 화려하고. 영국은 법으로 건물 외관을 바꾸는 게 금지되어 있대요. 역사가 깊은 건물의 경우 창문조차 함부로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그 시대의 건축이 고스란히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거구요. 그런 보수적인 영국인들의 집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시대마다 벽돌의 색과 모양이 다르더라구요. 근데 그런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러다 건축에 빠지게 된 거죠(김자경과의 인터뷰, p.84).

그래서 대부분의 보딩 스쿨에는 동양 학생들이 많은 편이야. 우리 학교는 70%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동양인이었고 20%가 독일인, 5%가 다른 유럽 국가 애들, 그리고 나머지 5%가 영국인이었어. 웃기지?(Leo Rang과의 인터뷰, p.125)

영국 교육과정 중에 중요한 게 바로 리서치 과정이고. 또 셀프 스터디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그래서 내가 준비를 안 하면 수업 동참이 안 되고. 그러다 보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혼자서 미리 준비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한국 애들 중에 돈 아깝다고 하는 애들도 있어. 가르쳐주는 것도 없는데 돈만 많이 받는다고 하면서 투덜대고(박이화와의 인터뷰, p.142).

저자에 대해선 별 기대가 안 되고, 그녀의 작업들에 묻어있는 ‘허영’이 싫었지만, 그녀가 만난 몇몇으로 한국사회와 영국사회에 대한 스케치를 해보게 된다.

그리고 영국에 간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박터지게 싸우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또 취업하느라 스펙 쌓기와 토익 공부에 몰입하는 이 지겨운 대한민국의 20대 학대 시나리오를 참을 수가 없어 탈출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내버려 두는 사회. 그게 영국이 최소한으로 20대에게 해주는 일이다. 우리 사회로 돌아와보자. 빈둥대면서 자신의 샵을 내보겠다고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패션 전공자를 집에서 어떻게 바라볼까? 아니면, 만화를 그리겠다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자신의 창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윗 세대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처우를 해주고 있는가?

최소한 한달의 생활비 88만원 이상을 한 주에 20시간 정도만 노동하면서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제는 모든 20대를 ‘엄마’에게서 독립할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높은 물가도 최소한 젊은이들의 창작욕을 감퇴시킬 정도로 가혹하게 그들을 대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젊은 음악가들이, 화가들이, 건축가들이, 조각가들이, 시인들이, 소설가들이 나오지 않겠는가?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살려면 일하다가 죽을 정도로 일만해야 하는 세상. 여기서, 이 인질경제에서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조금 완화시킬 수는 없을까? 조금 배고프지만 그래도 ‘꿈’은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지금 영국으로 갈, 독일로 갈, 프랑스로 갈 이 사람들을 조금만 끌어 안아도 조금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