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

서울에 다녀온 친구의 블로그(http://leopord.egloos.com/4070704)의 포스팅을 보다가, “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라는 말에 한 대 맞은 느낌이다.

한 몇 달 방방 떠 있었고,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나 자신을 과대평가 했었다.
1. 구라 vs 뻥
며칠 전 김태원이 ‘억삼이’라는 자기의 별명을 이야기하는 ‘놀러와’의 토크를 본적이 있다. 억가지 말하는 중에 세가지만 진짜고, 나머지는 다 거짓말이라는 그의 ‘억삼이’라는 별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해철이 어렸을 때 자기가 거짓말을 잘했다고 하자, 그 떡밥을 문 김태원의 이야기였는데.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에 나도 억삼이었다. 김태원의 ‘억삼’이 주로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그런 ‘구라’였다면, 난 이루어 질 지 이루어 지지 않을 지에 대해서 맘대로 해석한 창조된 세계를 말하고 다니는 ‘뻥’쟁이였다. 물론 그랬던 데에는 ‘맞기 싫어서’가 참 많은 이유를 차지했다. 맞기 싫어서. 초등학교 6년 내내 맞으면서 자랐고, 맞지 않으려고, 비겁했지만 뻥을 쳤다. 그리고 그 감담은 엄마가 하거나, 싸움을 잘하는 내 친구 한 녀석이 하거나, 아니면 아빠가 했다. 그 의존성의 껍데기가 여전히 남아있을 지 몰라 몸서리 칠 때가 있다.
물론 본질적으로 구라나, 뻥이나 자명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형식 논리상으로 어쨌거나 거짓이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뻥’에는 ‘자기실현적 명제’가 깔려있다. 그 ‘뻥’이 ‘뻥’이 아니라 진짜가 되게끔 하려고 빨빨대면서 뛰어다닌 게 내 어렸을 적의 모습이었다. 보통 그게 ‘뻥’으로 끝나긴 했지만.
하지만 ‘구라’는 ‘의도intention’에 따라서 전혀 다른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구라 황석영 선생의 ‘구라’는 보통 소설가들의 전형적인 ‘허풍’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의 정교함과 상관없이 이해 당사자stakeholder가 걸려있을 경우 , 거기에 혹여 하나 모를 의도의 ‘비열함’이 깔려있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지금 어떠냐고? 난 ‘뻥’인 줄 알았는데, ‘구라’였고. ‘구라’를 연방 쳐대는 내 자신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몇 명에게 충고를 들었다. 난 연신 ‘하얀 거짓말’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 그 밑바탕에 “그래도 우리 사이인데……”라는 막연한 방어막만 설치해 놨던 것도 사실이다. 좀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내가 뭣 좀 안다고 설치는 것과, 뭣 좀 해보자고 일을 벌려놓는 것이 정말 아는 것과, 일을 수습하는 것과 항상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물론 이런 방방 떠 있는 분위기를 만든 이유는 있다. 원래 조금만 주눅들어도 아무것도 안하고, 감정의 기복도 큰 편이라, 되도록이면 ‘조증’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증’의 임계치에 올라가지 않게 항상 잘 내 자신을 만져야 하는 데 별로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잠깐 정신을 ‘놨다’라고 해야하나?
결국 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라는 친구의 명제가 가장 정확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나타나는 실천이겠지. 거기서부터가 시작이겠지?
2. 공부에 관해서
군대 오기 전 대학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항상 파트 타임 석/박사 ‘학생 선생님'(왜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인지? 오로지 나이, 그리고 사회적 지위만이 있었을 따름이다.)은 교수가 내주는 숙제를 하지 않았고, 난 악착같이 해 갔다. 그나마 공부에 대한 몰입도가 풀 타임 학생들과 파트 타임 학생들 사이에 많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수는 항상 ‘쪽수’를 채워주는 파트 타임 학생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물론 대학원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풀 타임들이 빼곡히 채워 리딩을 충실히 읽고 교수는 ‘테일러주의’자들의 방법으로 미친 듯이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들이 대체로 우리가 말하는 ‘명문 대학’들이었다.
몇 가지의 사정으로 학부를 졸업한 학교의 대학원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난 좀 타협하기 싫었고, ‘정치학’을 공부하는 자세는 항상 들판에서 창을 들고 말에 타서 적장과 ‘일기토’를 하는 장수의 그것을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쨌거나 매일 나는 읽어간 책들을 근거로, 집요하게 파트 타임 학생 선생님들을 공격했고, 비판했고, 마음 속으로는 비난했다. 마음 공부는 뭐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덕택에 반년 동안 2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게 유일한 밑천이라고 작년에 남기기도 했었다.
생활 환경이 바뀌고, 이제 ‘생활인’으로써 책을 읽고 또 그것에 대한 서평을 3년동안 써왔다. 그러는 동안 주안점을 둔 것은 ‘쉬운 글’ 그리고 ‘유려한 문장’을 갖는 것이었다. 일단 전자는 충족한 것 같고, 후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실제 내가 하려던 ‘공부’는 어디로 갔나 싶다. ‘실종’되었다는 것이 좀 요즘 들어 정확한 것 같다. 물론 이것을 핑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절박함은 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요 며칠 전 내가 쓴 글들을 모아놓은 폴더에 들어가서, 예전에 학교 교지에 썼던 몇 가지의 글들을 읽어보았다. 분명 난해한 정치학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거기다가 원래 좋아했던 몇 명의 문장을 쓰고 있었다. 메타 비평과 디테일에 대한 내용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래도 거기는 최소한 충실히 현상을 읽고 해석하려는 성실함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내가 썼던 글들은 쉽고 알맹이가 없을 따름이다. 쉬워졌지만, 알맹이가 없다. 저널리스트의 글을 ‘흉내’만 낼 뿐, 실제 공부하는 저널리스트의 글은 아니다. 내공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서평’이라는 형태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거대한 책들에 대한 대화는 시도하지 못하고, 기껏 인상비평이나 줄줄 쓸 뿐이다.
나에게 글을 쓰라고 권했던 동생은 언제나 ‘쉽게’ 쓰라고 했고, 그는 내 글이 점점 좋아지고 쉬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난 사실 요즘의 글들이 가장 맘에 들지 않는다. 답답함이 점점 글 쓰는 것을 두렵게 한다. 어떤 책에 대해서 내가 과연 평할 자격이 있나 싶다. 쉽지만 단단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진지하게 공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이 왔다고 마음 속의 양심이 내게 외친다.
그렇게 공부 안한다고 후배들을 쪼아대고, 또 공부하지 않았던 ‘혁명가’들을 병신취급하고, 또래의 생각없는 ’88만원 세대’에게 독설을 퍼부어 댔지만, 기껏해야 나 역시 ‘글 줄 깨나 훑었던’ 먹물 흉내내는 룸펜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날 아프게 한다.
한동안 너무 안 아팠다. 좀 두들겨 맞을 필요가 있는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외치면서도 여전히 뭔가 놀 거리만 생기면 거기에 미쳐서 해야할 일들을 망각하는 지금을 볼 때 더 그렇다.
3. 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
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 지금 내게 주어진 순간 순간들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어느 순간 내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방어기제들은 ‘충실함’에서 벗어나는 숱하게 많은 퇴로를 모두 열어버렸다.
한동안 ‘여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노는 것’에 대해서 썼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뭉게는 것’ 혹은 ‘소일하는 것’과 격렬하게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나를 불태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일’에 얽매여서 아무 것도 못하는 것과, ‘일’없이 대충 ‘때우는 것’은 다르다. 후자에 대한 예찬은 또 한편으로 ‘무기력’의 일종이다.
알면서 말하지 않았고, 변명을 하면서 실천을 방기했다.
생각해 보면, 책을 가장 진지하게 읽었을 때는 항상 내가 가장 바뻤을 때였다.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가장 여유가 있을 때인 지금 항상 그 사실들을 떠올리지 않고 산다. 이제사 생각이 난다.
좀 몸과 마음을 바쁘게 살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있겠다. 가장 일상적인 것부터. 유가儒家의 말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은 옳다.
이제 정말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를 성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이 순간과 담담하게 차분하게 마주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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