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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담배. 자전거. 습관

2006년 진주에서 찍은 셀카다. 자주 내 프로필 대신으로 사용했었다. 종종 담배피는 사진들을 프로필로 사용하곤 했다. 이 때는 내가 그리도 선망하던 공군 장교로 임관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얼굴에 나르시즘이 가득하다. 그 때를 추억하는 건 내게 나쁘지 않은 일이다. 자신감만으로 가득차 있던 그 때. 그 땐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냄새에 예민했다. 아니, 냄새 그 자체에 예민했다기 보다는 ‘냄새’를 잘 기억했다. 추억은 영화처럼 눈 앞에 떠오른다고? 아니. 나한테는 언제나 그 ‘장소’의 ‘냄새’로 기억이 남곤 했다.
1.
어느덧 나이가 자연스레 쌓이다 보니 담배를 피운 햇수도 늘어간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지난 몇 년간의 일들보다 더 선명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담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개개 담배의 나름의 향들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각 담배의 첫 인상과, 추억, 그리고 처음 물고 빨았던 그 순간의 느낌이라는 것 역시 설명할 수 있다. 내 첫 담배 디스를 피웠을 때, 주위에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또렷하고, 그 캬라멜과 초콜릿에 잿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맛과 냄새로 기억되던 첫 경험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담배와의 이별을 준비하려 한다. 물론 다시 재회할 수도 있겠지. 내 모질지 못함 때문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어떤 상황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일 수도 있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leopord는 담배를 ‘커피’처럼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글쎄? ‘커피’처럼? 난 커피도 미치면, 한동안 정신 못차리고 그 맛만 찾아서 먹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건 마치 연애 후를 연애가 끝나기 전에 생각하는 것과 같다. 아직 난 담배와 이별한 지 3시간밖에 되지 않았거든? 곧 다시 “사랑해서 그랬어”라며 만날지도 모르는 것을….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하고, 식당에 갔더니 금연 포스터가 눈에 보인다. 확실하게 해두자. 난 그 포스터 때문에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고,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몇가지 때문에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모두 담배를 끊고나서의 ‘효과’에 불과하다.
내가 담배를 끊는 것은 오로지 ‘향기’ 때문이다.
매년 향수를 산다. 샤넬의 Allure Homme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종류별로 하나씩 갖추는 것이 내 ‘소박’(?)한 취미 중에 하나인데(사실 매일 같이 술 먹는 일을 두 번만 줄이면 75ml짜리 샤넬 향수를 살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향수를 쓸 때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었다. “이 향기가 오늘 하루 종일 내 주위에 ‘나’를 전달해 주길”.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몸에서 향수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침에 처음 나를 만나는 10명 내외의 지나가는 사람 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10명 내외의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격하게 섞인 불쾌함으로 날 규정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여자가 그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난 그녀에게 ‘향기’로 기억되고 싶다. 말로는 항상 뻘타치고, 주위에서 덜덜 떨지라도 내 향기가 최소한 그녀에게 ‘불쾌함’ 혹은 ‘무시할 만함’으로 기억되기는 싫으니까. 그리고 담배를 피면서 무뎌진 후각을 찾고 싶다는 것. 내 주위에서 누군가 나에게 ‘향기’로 대화하고 싶은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내 후각은 조금 더 예민해야 한다.
2.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집에 접이식 자전거가 있었는데, 동생이 원주에 살다가 그냥 두고 왔단다. 지금 서울집에 있는 자전거는 60대 갱년기 방지용으로 아버지가 타시는 것이고, 이걸 가져올 수는 없겠다 싶었다.
한동안 ( 2008/09/10 – [Life Log] – 9월 Wish List – 자전거 시보레 CSF-2007a) 이 자전거를 갖고 싶었는데. 그냥 선배의 두번 탔다는 그 자전거를 술 한잔에 사기로 했다.
두 발에 의지하여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요즘 장난감, 자전거, 프라모델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왜 그런 것에 관심이 갈까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손’으로 직접, ‘몸’으로 직접 만진다는 것이 주는 매력이 어떤 느낌인 지에 대해서 알 것 같다. 카메라에 몰두한 어떤 사람의 시선과 제스쳐와 손짓이 멋지듯이. 좀 멋지게 살고 싶다. 그건 ‘웹 2.0’ 시대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
습관.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보다가, 한유주(채정안)을 최한결(공유)이 규정하는 말이 있다. “습관. 지독한 습관.”
습관에서 벗어날 때가 이젠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저 위의 나르시즘에 가득찼던 나는 최소한 내가 갖고 있던 습관 중에 절반 이상을 잊거나, 극복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그 때의 그러한 나르시즘은 온데 간데 없이, 습관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담배 끊기, 자전거 타기, 그리고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 더디겠지만, 하나 하나 차근차근 가만 가만 해보려고 한다. 그게 내 28살에 살고 싶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