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목포 여행 그 이후.

난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여행을 꿈꿔왔다. 내가 내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번지 이제 3년째다. 그 3년 동안 나에게 남겨진 건 구입한 300여권의 책과, 수십 벌의 옷, 그리고 여행의 기억이다.

작년 갑자기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내가 보상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생활의 중반 이후 가장 책임감 있는 일들을 해야했던 그 때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을 가고, 전주를 갔다.

 2008/10/06 – [Culture/Travel & Play] – 부산 여행기 ① – PIFF 개막식
2008/10/07 – [Culture/Travel & Play] – 부산 여행기 ② – PIFF 10/3 예매기
2008/10/07 – [Culture/Travel & Play] – 부산 여행기 ③ – 기장 해동 용궁사
2008/10/07 – [Culture/Travel & Play] – 부산 여행기 ④ – 부산의 맛집 ‘해운대 할매 손 칼국수’
2008/10/08 – [Culture/Films] – 부산 여행기 ⑤ – <농민 약국="">, <검은 명찰=""> 관람기</a>
2008/10/11 – [Culture/Films] – 부산 여행기 ⑥ – 운수 좋은 날(2008/10/4)
2008/11/08 – [Culture/Travel & Play] – 전주여행기 ① – 전주에 도착하다.
2008/11/11 – [Culture/Travel & Play] – 전주여행기 ② – 맛집기행 : 왱이 콩나물 국밥집, 서신동 막걸리 골목에 가다
2008/11/11 – [Culture/Travel & Play] – 전주여행기 ③ – 최명희 문학관
2008/11/14 – [Culture/Travel & Play] – 전주 여행기 ④ – 한옥마을의 간판 바라보기 : 손글씨 Calligraphy in Korea </td> </tr> </table> 부산을 갔을 때, 나와 뜻이 통한다고 믿어왔던 동생과 함께 했고, 전주를 갔을 때는, 내 속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함께 했다. 부산의 갯내가 사무칠 지경이 되고,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순간순간들이 좋았다. 메트로시티 옆에 펼쳐진 백사장을 해운대에서 발견했을 때 난 그냥 거기에 푹 눌러앉고 싶었다. 그리고 부산 사투리를 어설프게 떠들고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은 나에게 ‘소도시’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이 뭔지를 알려주었고, 혼자있었던 하루와, 친구와 함께한 이틀 행복했다. 순간 난 경성을 거닐던 모던뽀이의 까다로움과, 자갈치 시장을 뛰어놀던 ‘친구’의 그 녀석들의 정서를 공유하였다. 그리고 여행 그 자체에 사무쳤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다.
난 너무나 피폐해 있었고, 내게 필요한 건 ‘보상’이 아니라 ‘치유’였다. 감정의 굴곡선이 바닥을 치고, 아무런 자신감도 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지고, 누군가에게 감정을 갖게된다는 것이 버거워 잠을 설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궁금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지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사는 그곳이. 그래서 떠나야 했다. > 3번 째 여행 to 서해안, 지리산. > > 발로 걷고 싶은 나와, 많이 보고 싶기에 점령군처럼 공세를 늦추기 싫은 D와의 여행.
나는 오며가며 내게 펼쳐진 몇 가지 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여지를 바랬고, 그 녀석은 가보지 못한 곳들에 가본다는 탐구욕을 펼쳐길 원했다.
> 그는 신시가지의 고층빌딩과 러브호텔의 현란함이 편했고, 난 어스름의 일몰을 꿈꾸었다. 꽃등심과 낙지 볶음의 간격. 차이는 인정과 봉합의 경계를 넘나들었다(2009. 2. 14일 Diary에서)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도, 전주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루 정도 혼자 발로 디디면서, 버스를 찾아 겨우겨우 헤매고 다니면서 즐기는 여행. 그러면서 한적한 공간에 잠시 앉아 들고 갔던 책을 펼쳐놓고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을 펼쳐놓고 그것을 읽고, 다시 그 생각들을 갈무리하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했다. 나에겐 절박했다. 그런데 지리산과 목포를 기점으로 하는 여행에서 난 마치 깃발을 따라다니며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야 했던 관광객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지리산 빨치산의 역사와 근대 도시 목포의 자취를 따라가길 바랬던 친구의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목포에서 신시가지의 마천루를 바라보며 감격하는 그 친구의 모습 뒤에서 난, 정말. 목포 해안도로에서 일몰을 보면서 내 생각들을 천천히 한 시간이라도 정리하길 바랬는데, 우리의 일정이 그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보상’을 받기 바랬던 때의 나이기만 했더라도, 난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조정래를 통해 뭔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의지를 느꼈을 것이다. 또 장흥의 꽃등심을 먹으면서 그 육즙을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에서 벗어난 세계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필요했던 건 치유의 시간이었고, ‘고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모습을 목포라는 도시의 결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욕심이 너무 강했고, 그것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난 훨씬 멀리 미끄러지듯이 마음이 떠나가고 있었다.
여행은 여전히 내가 치유받지 못했음을 확인해 주었을 따름이었다. 갯내를 못맡은 서운함이 여전히 큰 것도, 일몰을 보지 못한 서운함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난 갯내와 일몰을 같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느껴보고 싶었으니깐. 여전히 난 아프고, 이제는 어떤 약을 누군가가 그냥 처방해주었으면 하는 약한 마음까지도 든다. 바람은 가을부터 불어 풍향이 바뀌어서 더 매섭게 불어왔을 뿐 멈추지 않았다. 봄이된 지금도 내 가슴을 서늘하게, 때로는 철렁하게 하는 것은 여전하다. 난 점점 굳어가고, 내 손과 발은 오그라 들었고, 내 입은 항상 열려있다가도 어느 순간 닫히고 표정이 굳곤 한다. 숙제만 남아서 지금까지 내 주위에 풀리지 않은 채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