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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촛불을 다시 생각하기(당대비평 기획위원회,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산책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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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산책자 |
2008년 거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라는 말을 정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명박 산성’이 아무리 단단하게 길을 막고 있어도 무섭지 않았다. 주위에 많은 촛불들이 결국에는 이길 것 같았다. 하지만 장맛비가 내렸다. 촛불은 ‘집’에 갔다.
그래도 두 가지 쯤은 변할 줄 알았다. 보수적이었던 인식들이 ‘거리의 정치’로 인해 조금은 진보적으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것, 그리고 정부도 몸을 좀 사릴 것이라는 것. 착각이었다. 7월 30일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촛불의 도시 서울 시민은 공정택을 선택했다. 그리고 정부는 촛불이 사그라지자 개혁입법을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1968년의 파리의 젊은이들의 혁명 운동처럼 세상을 뒤집을 것 같았던 촛불은 지금 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생업에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 간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나오지 않는 계간지 <당대비평>의 “당비의 생각”의 두 번째 편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이다. 촛불이 꺼진 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촛불의 민주주의’를 묻는다. </p>
우리는 촛불 시위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왔을까? 그건 대체로 ‘광장’에 모인 대중들이 주는 스펙터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의 이면의 그림자는 어땠을까? 우리가 놓친 것, 그리고 촛불이 계속 타오를 수 없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촛불 시위 때에 가장 많이 했던 그리고 나왔던 이야기는 집회의 ‘순수성’과 ‘비폭력’이었다. 물론 ‘순수성’과 ‘비폭력’의 이야기는 수구언론이 만든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집회에 나온 ‘순수한’ 시민들은 비폭력을 지키는 것이 촛불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법과 공권력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시민과 시위, 그러니까 ‘순수한 시민’과 ‘순수한 시위’만을 보호한다. 나머지는 모두 소탕 대상이다. ‘순수한 시민’과 ‘순수한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이상길, pp.99~100)
‘촛불’의 아이콘은 선봉에 선 ‘빨간 깃발’의 불온한 이미지와도, ‘노란 조끼’가 연상시키는 노조원의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와도 확연히 달랐다(이상길, p.102).
왜 우리는 이렇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비유하자면 평화시위는 화폐와 같고, 폭력시위는 황금과 같다. 한때 화폐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금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한윤형, p.33).
‘순수성’과 ‘비폭력’의 프레임 덕택에 본인들의 행위는 언제나 규제되었다. ‘순수하지 않은’ 정치적 주장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시위, 자신들의 목을 겨누지는 않겠다는 얌전한 평화 시위로는 설득할 수 없었다. 어떤 시위도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순수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거세해 버리는 순간 그 힘은 자기부정으로 인해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그리고 정부한테 받아야 할 것은 안전 보장이 아니라 항복이었다. ‘비폭력’은 언제나 정부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또한 촛불은 철저히 중산층의 것이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쇠고기 협상 결과에 분노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촛불 시위의 뒤편에서 있는 “이들이 보기에 촛불은 그림의 떡이었다.”(김영옥, p.232~233) 촛불이 켜지던 순간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은 단식투쟁을 하고 있었고, 이랜드 노조도 파업을 하고 있었다. 촛불은 경계를 넘지 않았다. 쇠고기 문제는 먹거리를 걱정할 수 있는 중산층의 엄마들에게 촛불을 쥐어주었지만, 그것을 걱정할 새도 없는 이들은 촛불을 들 여유가 없었다.
촛불을 들고 내 새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여성은 누구일까? 내 새끼에게조차 그 쇠고기를 먹여야 하는 여성 집단은 최소한 아닐 것이다. 내 새끼에게 1년에 문제집 하나 사주는 것조차 버거운 여성, 내 새끼에게 선행 학습을 시키는 것을 꿈도 꿀 수 없는 여성은 아닐 것이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간신히 월 10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는 필자가 만났던 여성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중산층 여성은 되어야 그 시간에 촛불을 들 수 있으며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김영옥, p.226).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이듯이, 현 사회구조에서 지켜야 할 확실한 이익과 지위가 있는 보수 기득권 세력과 그 지지계층은 오히려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결집된 투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몫이 있는 자들은 투표소로 가고, 지켜야 할 몫이 없는 자들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해 보이는 선거보다 생계 벌이가 더 걱정인 형국이다(김정한, p.143).
촛불 시위에 대한 냉소가 점차 커진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당장의 밥벌이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점차 피곤한 것이 되었다.
촛불은 더 많은 이들과 연대해야했다. 하지만 촛불과 함께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뎠고, 그것들을 정치 의제로 설정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10대 촛불소녀’의 ‘정치적 각성’에 대해서 예찬했지만 ‘88만원 세대’가 비정치적인 것은 비난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민주노총이 촛불 시위와 관련해 연대 파업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노동자들의 파업 그 자체에 대한 생각자체는 촛불로 인해서 변하지 않았다.
광장은 사람을 변하게 하지만 그냥 광장에 있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촛불의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은 광장에서 나와야 했던, 나눠야 했던 이야기들에 대한 고백이다. 이제 광장은 닫혔고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대답과 대답에 대한 수정은 계속되어야 할 듯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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