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시 마을이다! – 조한혜정, <다시 마을이다>, 또 하나의 문화, 2007

 2009/04/10 – [Book Reviews/Literature] – 도시의 뒷켠, 우리의 밑바닥 – 이명랑, <삼오식당>, 뿔, 2009</a>
2009/03/17 – [Reasoning] – 늪에서 벗어나기 – 문화, 지역, 교육을 통한 변화 ① 총론
2009/03/10 – [Culture/TV] – 커피 프린스 1호점
2009/02/19 – [Reasoning/Current Issues] – 20대여! 이제 우리의 말을 하자!
2009/03/23 – [Reasoning/Current Issues] – 개혁이 아니라 정치다.
2009/02/24 – [Book Reviews/Culture Books] – 딕 헵디지, 이동연 옮김 – <하위문화 Subculture=""></a>
2009/02/16 – [Book Reviews/Culture Books] –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2009/02/11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지식인, 당신이 지금 가야할 곳 – 임철우 외 <행복한 인문학="">, 이매진, 2008</a>
2009/01/21 – [Book Reviews/Essays] – 88만원 세대의 간지나게 살아가는 법 – 허지웅, <대한민국 표류기=""></a>
2008/12/24 – [Life Log/A day in the life] – 감성 좌파
2008/12/23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황금의 지식시대를 넘어서! – 천정환, <대중지성의 시대=""></a>
2008/12/17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여자들의 ‘오래된 현재’ – 신여성을 읽다 ①
2008/12/17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여자들의 ‘오래된 현재’ – 신여성을 읽다 ②
2008/12/11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김진송, 현실문화연구
2008/12/05 – [Book Reviews/Literature] – 모던 뽀이 구보 성장기 in 서울 – 1
2008/12/05 – [Book Reviews/Literature] – 모던 뽀이 구보 성장기 in 서울 – 2
2008/12/04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신윤복의 눈에 비친 조선 사람들
2008/11/18 – [Book Reviews/Social Science] – 진보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홀로서기 –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이매진
2008/10/30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20년대엔 모두다 망국의 한에 울었을까? –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 ①</a>
2008/10/30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20년대에는 모두다 망국의 한에 울었을까? –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 ②</a>
2008/10/23 – [Book Reviews/Literature] – 지금 서울에 대한 풍자 – 윤고은, <무중력 증후군="">, 2008</a>
2008/10/11 – [Culture/Films] – 고고 70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2008/08/10 – [Book Reviews/Social Science] –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 절절한 기자로서의 투쟁 일지
2008/07/28 – [Life Log/A day in the life] – 집으로 가는 길.. </td> </tr> </table>
다시, 마을이다10점
조한혜정 지음/또하나의문화
무너져 버린 기반, 환상적인 ‘개혁’의 추억 ‘민주개혁세력’의 10년 집권이 끝나고, ‘CEO 대통령’ 시대를 맞았다. 그가 진정 CEO 인지는 둘 째치고라도, 사람들은 어쨌거나 민주주의보다 ‘경제’를 선택했다. 사람들이 경제를 선택한 이유는 ‘민주’라는 말이 사실상 예전의 군부 정권 시절보다 더 나아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불행해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부는 경제를 택했고, 사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정치인’을 같다고 생각하면서 ‘정치’ 그 자체를 버렸다. ‘민주개혁세력’의 말이 허망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개혁’의 추억에서, ‘서울광장의 100만 인파’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미FTA를 체결하고, 극우파와의 대연정을 제안하고, 양극화를 심화발전시키면서도 ‘개혁’을 외쳤다. 사실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대처와 레이건, 부시의 개혁과 별 차이가 없었을 따름이다. 그들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몰락했다. 다만 아직 깨닫지 못할 뿐이다. ‘민주개혁세력’이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10년동안 어떤 일들이 우리의 밑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을까? 97년을 정권 교체의 해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97년은 IMF의 해였다. 민주개혁세력의 정부 10년보다 IMF로 상징되는 금융위기의 경험이 훨씬 더 크게 사람들에게 작용했다. 종종 TV에 나오는, 그리고 신문 정치면에 나오는 세계를 무협지 읽듯 읽다보면 오히려 세상살이에 대한 감을 잃을 때가 있다. 사실 IMF 이후 10년 우리가 잃은 것은 ‘민주개혁세력’이 아니라 ‘행복’이었다. IMF는 대학가 잔디밭에서 신문지를 깔아놓고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던 청년들을 도서관으로 집결시켰다. TOEIC으로 대표되는 영어 점수를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로 만들었다. 회사에서도 ‘승진’이 목표가 되기보다는 ‘생존’이 목표가 되었다. 아빠는 회사에 갔다가 퇴근해서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칼칼한 된장찌개를 아이들과 먹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소풍을 가는 생활이 ‘고용불안’으로 붕괴했다. 동네사람들과 인사하면서 같이 종종 동네 앞 슈퍼마켓에서 같이 맥주 한 잔씩 마시는 문화가 ‘대형마트’로 붕괴했다.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아빠와 순돌이가 사라졌다. ‘골목길’에 대한 추억은 부동산 버블과 아파트 선호 현상으로 붕괴했다. 너무나 일렀던 꿈, 현실에 발 딛다. 조한혜정을 기억한다. 대학교 1학년 사회학 수업에서 그녀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읽었다. 그녀의 아들 전한해원을 기억한다. 장문의 자퇴사유서를 던지고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나 역시 자퇴서를 쓰고 교무실에서 100대 쯤 맞게 만들었던 이. 하지만 20대의 초입, 그녀의 모든 말들이 나에게는 설었다. 그리고 너무나 유약하게 보였고, ‘혁명’에 대해서 꿈꾸던 나에게는 너무나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여성주의자들이 조금만 자유주의적으로 흐르기만 해도 바로 그녀들의 ‘부르주아 계급성’에 대해서 힐난하던 시기였기에 그녀의 논의를 공들여 읽지 않았다. “한가한 이야기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하자 센터에 나가는 내 친구 leopord를 뜯어말렸던 경험도 순전히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최소한 5~6년이 지나서야 그녀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 문제의식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모든 차원의 문제가 ‘국가’, ‘정당’, ‘혁명’으로만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다. ‘계급’이라는 것을 추상적인 경제관념이 아니라 ‘문화’를 포함한 개념으로 읽어야한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리고 노래패 운동이 왜 실패했는 지에 대해서 고민이 슬슬 정리되면서부터다.
처음엔 ‘민주당’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이 잘못했기 때문이고, 김대중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잘하면, 진보신당이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투표에서 이기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 안식년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 이런저런 자리에 가면 386세대 부모들의 드센 기가 아이들을 망친다는 소리가 자자해요. 스스로 정의롭고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의지로 밀고 가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압도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 386세대는 가난하지만 사랑이 풍부한 어른들의 손에 키워졌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모와 삼촌, 동네 아주머니들, 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을 가진 어머니들이 계셨지요. 그런 사랑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실은 386세대가 그 무서운 군부 독재와 싸울 수 있던 힘이었을 겁니다(pp.220-221).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공동체였고, 비빌언덕이었다. 10대의 아이들은 ‘교실지옥’에서 벗어나는 대신 엄마의 통제를 선택했고, 대학생들은 ‘혁명’ 대신 토익책을 들었다. 각자가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생존’이라는 게임은 사람들 각자의 다양성이라는 것들을 짓밟아버리고 ‘입시기계’로 ‘취업기계’로 전락시켰다. 다른 한 편,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협동’과 ‘윤리’ 같은 것의 의미를 이제는 아무도 행하지도 않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 우리 ‘고장’은 사라지고, 각자의 가족만이 남아있는 세상이 되었다. > 그간 한국 사회는 경제 개발을 목표로 국가 주도의 양적 ‘성장’과 ‘발전’에 매달려 왔다. 그런 가운데 ‘토건 국가’적 발상으로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인프라와 관성이 만들어졌고,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도 그 연속선상에서 “국가 예산을 뿌려 만들어 버리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p.153). 중요한 것은 당장 정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삶의 ‘지옥’ 같은 조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그러나 어느 단계에 가면 경제 성장이 멈칫거린다. 그때가 되면 갑자기 근대인들은 더 개척할 땅도, 이루어야 할 유토피아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그들은 다시 고향을, 그리고 자신의 역사와 대면한다. 쓰던 것, 손때 묻은 것을 사랑하게 되고, 재활용할 생각을 하게 되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농촌적이고 봉건적인 것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도시적인 것, 새것, 반짝거리는 것, 시간성을 죽인 것이 참을 수 없이 촌스럽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후기 근대’, 또는 ‘탈근대’의 시작이다(p.130) > > 이들은 이제 일과 놀이에 대해 근원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성찰, 놀이와 쾌락의 복권, ‘웰빙’에 대한 감각의 회복, ‘저속 기어’로 가면서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 세계를 다시 구축하자고 말한다. 스스로 소생하면서 사회를 소생시키기. 이것이 바로 ‘놀이하는 몸’을 갖고 싶어하는 후기 근대인들이 해내려는 작업이다(p.133). > >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경비원이 있는 성벽을 두른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이고, 소비를 과시하기 위한 이웃이 아니라 상호호혜적 관계를 맺어가는 이웃의 형성이다. 이간이라는 생물적 존재의 생존은 기본적으로 소통과 나눔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를 돌보는 마을을 가지고 협동함으로써 인류는 꽤 오랜 기간 지구상에서 잘 살아왔다. 미래의 주거는 바로 이런 인간 삶의 기본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근대주의’를 넘어서서 대안적 미래를 만들어 가는 지점에서 사유되어야 한다(pp.142-143). > > 이제 우리 사회는 ‘토건 국가’에서 ‘돌봄 사회’로 전향적 선회를 해야 한다. 거대하고 거창한 구호의 시대를 지나, ‘관계의 소중함’과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아갈 때가 온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노는 것이 곧 많은 창의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공유 지대가 있는 사회 만들기. 나는 그 방법론으로 ‘작은 마을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주거를 제안한다(p.145). 그녀의 글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순전히 그녀가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여전히 ‘하자 센터’를 통해 아이들과 만나고 있고, 성미산 학교의 ‘마을 프로젝트’와 함께하고 있다. 허무맹랑하고 한가한 이야기로 들렸던 그녀의 이야기가 위험천만하고 사람들 하나 하나를 피폐하고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빛이나는 것은 당연하다. 며칠 전 그녀를 만났을 때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우스운지, 두려워 할 필요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하나의 거대한 국가가 아니라, 거대한 도시가 아니라,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보살펴 줄 수 있는 마을들, 공동체들이 수백개가 되었을 때 이사회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마을에서 보살핌을 받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공존을 몸으로 익힌 아이들이 커졌을 때, 그들의 문화적 감수성이 사회에 대한 관점들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하자 센터에서 육성된 아이들이 슬슬 사회로 진출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가치들이 얼마나 큰지 점차 증명되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비판을 잘한다고 달라질 세상이 아니기에 ‘소통 능력’과 ‘일머리’를 갖게 하는 것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p.219). 굳어버린 적을 향해서 전향을 요구하는 것보다, 굳어있지 않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치지 않도록 서로 공동체를 통해서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화와 예술이 꿈틀거리는 작은 마을. 홍대나 대학로처럼 인디 아티스트들의 젊은이 꿈틀대는 공간. 마을들이 모여있는 역사성이 새 건물들로 인해 훼손받지 않는 서울. 거기에서 태어날 까다로우면서도 서로 이해하고 나눠줄 줄 아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 우리가 저항해야할 것은 가가멜 정부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조건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한동안 가졌던 ‘모던뽀이’의 생각들이, 서울에 대한 생각들이, 내가 사는 집에 가는 길에 봤던 ‘중랑구’에 대한 생각들을 펼치다가, 그것들을 묶어낼 수 있는 틀들을 조한혜정의 <다시 마을이다="">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2007년 우석훈을 만나면서 시작된 여정. 이제 슬슬 속도를 높일 때가 되었다. 이제 날 준비가 완료되었다. 몇 가지 해야할 일들과, 공부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고맙다. Fly, Hendrix, 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