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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류학 콜로키움, 최재천
연세대학교 청년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필통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한동안 우석훈의 <밤섬 해적단=""></a>이라는 프로젝트에 올리는 글을 읽기 위해 들어갔었다. 요즘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주관하여 개설하고 대학원 문화학 협동과정과 이대 여성학과, 연대 청년문화원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경제 인류학 콜로키움의 영상을 보러 자주 들어간다.밤섬>
지금까지 진행된 수업은 첫 강의였던 조한혜정 선생과 우석훈 선생의 강의를 비롯하여 최재천, 김성례, 박찬웅 그리고 장하준, 오영석 선생의 수업이 있었다. (모든 강의는 동영상으로 필통 안에서 서비스 되고 있다.)
오늘은 이대 에코 생명학부 최재천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한동안 가졌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오해 몇 가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를테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 결정하는 가? 최재천 교수는 최소주의적 관점에서 유전자의 ‘개입’을 말한다. 쉽게 말해 한 개의 유전자가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고, 여러 유전자들이 그것들을 복합적으로 결정한다는 거다. 그래서 A 유전자가 내가 담배를 피우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는 것까지는 나도 동의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 ‘유전자’라는 개념 자체가 강의를 들었을 때 이해되는 수준에서는 거의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섭리’ 수준으로 상승한다는 거다. 그것은 리차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이라는 말을 표현할 때 그런 생각이 드는데. 강의에서는 Gene, Protein, Morphology, Behavior, Culture 이것들이 다 유전자의 표현에 미치는 경향적 요소라고 한다.
이것들은 그냥 생물학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치는 순서일 지는 모르겠으나, 딱히 ‘유전자’가 어떤 특별함을 가지는 지에 대해서 판정을 하는 데 유익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를테면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개념을 잡는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문화를 승인해버리는 순간, ‘환경 결정론’에 쉽게 그냥 손을 들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물론 ‘생물학적 결정론’ vs ‘환경 결정론’의 관점을 ‘유전자 결정론’이 탈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내게 그것이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말 자체가 하늘에 좀 떠있다는 느낌일까? 그냥 쉽게 차라리 환경과 유전자의 속성들이 마주치면서 관계에 따라서 다시 재편된다. 이 말 정도가 쉽지 않나? 어쩌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내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통섭’이라는 것이 개개 학문들의 취약함을 서로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 극복하자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나 역시 공감을 하는데, 그 밑바닥에 진화생물학이 컨트롤하는 구도에 대한 의심을 씻고 있지 않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자연과학을 잘 몰라서일까?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과학사회학과 철학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여전히 내게 있어 ‘두 문화’는 결합되어 다가오지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