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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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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년같은 남자의 열정과 상상력을 사랑했던 여자와 이제는 슬슬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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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3.uf.1537391549E718686B5584.jpg" class="align" width="300" height="126"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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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잊혀진 상상력을 일깨워주기만 하면 다시금 그 남자가 결혼하기 전의 그 남자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이 무대에 섰던 날 사람들에게 혹평 당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꿈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무기력한 가를 깨닫는 여자. 그 여자는 자신의 꿈이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자와의 부부싸움이 끝나고 다음날 남자에게 그 꿈들을 실현할 수 있는 방편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남자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면서 그 남자의 꿈 많았던 어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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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5.uf.1654411849E718F65E3204.jpg" class="align" width="300" height="126"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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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남아있는 ‘꿈’을,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말하려 한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파리에서 사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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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1.uf.160EAD1949E718939BEEBC.jpg" class="aligncenter" width="610" height="258" alt="" filename="Revolutionary.Road.2008.DVDSCR.XviD.AC3-DEViSE.avi_00169323.jpg" filemime="image/jpeg" /><br /> 남자는 이미 현실에서 발을 딛고 하루에 10시간씩 일하면서 가족을 위해 산다고 믿는다. ‘스윗 홈’의 꿈에 젖어있는 남자. 그 남자는 그 ‘스윗 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을 누가 만들었든. 회사에서 ‘먹튀’로 찍혀서 상관을 마주 대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그럭저럭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스윗 홈’의 아빠들과 상관의 뒷담화와 함께하는 술자리로 스트레스를 풀 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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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1.uf.190D781949E719401C95C1.jpg" class="align" width="200" height="84" alt="" /><br /> 이게 이 남자가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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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제안에 남자는 흔들린다. 20대에 품었던 청운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잠시 탈출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에서 종종 이야기하듯 큰 기대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창의력’을 가지고 했던 일 하나가 ‘대박’을 터뜨리고, 남자는 고민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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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49" target="_blank">2009/02/20 – [Life Log/A day in the life] – 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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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지만, “일상이 가장 힘이 세다.” 남자도 그랬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전의 감내보다 지금 피할 수 없는 순간에서 버텨내는 것이 더 익숙하다. 살다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 따름이다. <span style="font-weight: bold;">남자를 탓할 수 없다. </span>또한 ‘스윗 홈’의 가부장으로서 살아오던 그가 선택할 보헤미안의 삶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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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3.uf.140E4B1949E7194052663E.jpg" class="align" width="300" height="126"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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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궁극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신이 아이를 키우며 ‘위기의 주부desperate housewife’로 살면서 잃어버린 가능성을 처음 만났던 때의 남편의 모습이라면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여자. 그 여자에게 남편의 미적지근한 모습은 자신의 붕괴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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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3.uf.1144E81649E719E79032E7.jpg" class="align" width="200" height="84"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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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세번 째 임신과 파멸적 결론은 예정되어있다. 여자에게 그 세번 째 임신은 자신의 모든 꿈이 송두리채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행동은 수순이었다. 그녀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모습과 아무 상관없는 모습으로 곁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남자. 최종적으로 자신이 ‘스윗 홈의 안주인’으로 담소를 나눠주는 모습을 <span style="font-weight: bold; color: rgb(0, 0, 0);">진심으로</span>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를 본다는 것은 그녀의 모든 ‘사랑’이라는 정의에 대한 사형 선고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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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5.uf.1637311549E71A51F07203.jpg" class="aligncenter" width="610" height="258" alt="" filename="Revolutionary.Road.2008.DVDSCR.XviD.AC3-DEViSE.avi_00544869.jpg" filemime="image/jpeg" /><br /> 여자가 사랑했던 남자는 그 남자가 아니고,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는 남자가 바라는 대로의 변화를 거부한다.<br /> 휘발되어버린 남편의 꿈에 집착하는 여자, 여자를 집에 들어앉혀 자신을 마냥 바라봐주고 사랑해주길 바랬던 남자. 그 순진한 욕망들이 타협하지 못하고 충돌한다. 남자의 폭력성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 여자의 기대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 대한 일탈 그 자체가 원래 큰 무게가 있을 따름이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에게 주어진 ‘스윗 홈 사수’의 원칙이 너무나 강력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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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2.uf.1737311549E71A51F1EA2B.jpg" class="align" width="200" height="84"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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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차이는 춤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린디합(lindy hop)을 추고 싶어하는 여자과 미들 템포의 지터벅(jitterbug)을 추고 싶은 남자의 차이. 여자는 여전히 뛰고 싶고 기교를 부리고 싶으나, 남자는 이제 안정적인 Step, Step, Rock, Step을 밟고 싶다. 둘이 춤을 출리가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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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cfile3.uf.170EEA1949E71A126EE031.jpg" class="align" width="300" height="126" a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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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37" target="_blank">2009/02/09 – [Culture/Films] – 상식에 기댄 보수주의자들의 가치관 – Changeling(200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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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체인질링Changeling>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미국남자들은 습관적으로 ‘정신병원’을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이들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종종 활용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애니악이 등장하던 이 시대에 여자들은 ‘낙태’라는 것에 대해 지금 민주당이 취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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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윗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줌마, 아저씨’ 역할로 다시 만났다. 디카프리오는 예전의 ‘날티’는 사라지고 이제 성인 연기자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기분이고, 케이트 윈슬렛을 보면서 <더 리더>와 <이터널 선샤인>에서 보여주었던 완숙함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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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게 씁슬할 것도 없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그 차이를 적대로 만드는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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