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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해태 타이거즈’와 나의 ‘LG 트윈스’ – 김은식,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이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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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 ![]() 김은식 지음/이상미디어 |
아빠는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었다. 돈을 내고 야구장에 뻔질나게 다닐 수는 없어도 TV 앞에 OB 병맥주와 오징어를 펼쳐놓고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 그의 낙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로서는 언제나 멋쟁이 김재현, 유지현, 이병규가 만들어내는 타선의 폭발력과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투구를 하는 이상훈의 LG가 좋았지만 LG의 경기를 TV에서 볼 수 있는 건 LG와 해태의 경기 때뿐이었다. 엄마와의 공모하지 않았더라면 LG 트윈스 리틀 야구단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1994년 LG 트윈스 우승할 때. 아, 이상훈의 장발이 사무친다! ㅠㅠ
아빠에게 프로야구는 그냥 야구가 아니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마당이었다. 전라도 출신의 우리 아빠는 해태가 우승할 때마다 잔뜩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면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옆에 펼쳐둔 술에 거나하게 취했을 때에는 19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10살 남짓의 어린 나에게 젖가슴을 잘라버린 공수부대의 이야기는 너무나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왜 매번 해태의 경기만 하면 그러는 지에 대해서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p>
김은식의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을 읽으면서 아빠와 야구 보던 시절을 회상해 본다. 선동렬이 0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던 시절, 김성한이 오리 궁둥이를 내밀며 안타를 치던 시절, 이종범이 출루하기만 하면 도루를 견제하려다가 제구가 엉망이 되어 무너져 버리던 투수들의 시절. 잠실구장이 LG와 OB의 홈이면서도 해태 경기만 하면 절반은 해태의 팬들로 채워지던 시절. </p>
전성기 해태의 선동렬과 장채근
해태 타이거즈는 90년대까지 한국의 야구 명가임에 틀림없었다. “아홉 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아홉 번 모두 우승했던 팀. 여섯 명의 정규시즌 MVP와 46명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한 팀”. 미국의 뉴욕 양키즈와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같은 반열의 팀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해태는 언제나 재정난에 허덕이던 팀이었고, 돈으로 선수를 영입할 조건도 되지 않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하던 시절 최소 기준 인원이었던 14명을 맞추기가 어려워 “국가대표 김일권을 숙소에서 탈출시키고, 대학생 투수 방수원을 데려”오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간신히 머릿수를 맞추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아한 야구 역시 할 수가 없었다. 뉴욕 양키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야구는 언제나 이길 법하고 우아하게 잘 이기다가 어쩌다 한 번씩 약팀들에게 무너지는 시나리오였다면, 한국의 프로야구는 항상 모든 면에서 유리한 팀들이 우승이라는 것과 항상 거리가 있었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가장 연봉을 많이 주던 삼성과 롯데, 그리고 LG라는 강자가 약자에게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그 중심에 해태 타이거즈가 있었다.
이러한 해태 타이거즈의 승승장구는 전라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의미였다. 해태 타이거즈는 “서러운 패배와 차별의 굴레를 벗고 승리의 희열과 부러움의 눈길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는 단순히 야구가 아니라, 1980년의 광주에서의 학살의 상처를 달래주는 위안이었고, 개발독재 시대에 배제당한 지역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인물도 필요 없고,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살림살이도 필요 없어. 그저 숟가락만 들고 오면 돼. 아무 것도 따지는 거 없어. 그저 전라도 여자만 아니면 돼.” “나는 전라도 놈들은 안 뽑아. 거짓말이나 살살 하고 좀 키워줄까 생각하고 있으면 뒤통수나 치고 말이지, 천성이 아주 야비하거든요.” “전라도 사람이란 빨갱이랑 일본 놈 다음으로 나쁜 피를 받은 종족들임에 틀림없었고, 만나는 족족 신고하거나 무찌를 수야 없는 일이더라도 가급적 얽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삶의 위험천만한 덫들임이 분명했다.”(pp.44-45)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인아(손예진)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덕훈(김주혁)에게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언급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스페인 내전에서 독재자 프랑코 장군에 대항해 저항했던 지역이 바로 카탈로니아이다. 전 세계의 진보주의자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결국 패퇴하고 카탈로니아는 한국의 전라도와 같이 배제된 지역이 되어버린다.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카탈로니아 인들의 마음과 무등 경기장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마음은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p>
십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좋아했던 LG가 계속해서 죽을 쑤는 바람에 나는 야구를 안 보기 시작했고, 아빠는 기아의 경기를 종종 보지만 예전처럼 <목포의 눈물="">을 열창하지는 않는다. 김대중 선상님이 대통령이 된 다음부터였을까? 아니면 해태가 매각되었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김대중, 노무현의 정부가 끝나고 나서부터였을까? 지금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의 기억뿐인 듯하다. 어쨌거나 나는 목소리가 작아진 아빠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p>
덧붙여
빙그레 팬이 본 해태 타이거즈 1
빙그레 팬이 본 해태 타이거즈 2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