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를 읽다가, 문화의 시대를 생각한다- 원용진,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8점
원용진 지음/한나래

바람구두의 리뷰

노래패. 대학시절.

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말하는 게 있다. 또 군인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지금에서야 말한다. 나 대학 시절 내내 노래패였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노래패가 뭥미?”할 수도 있겠다. 민중가요를 부르고 현장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 위한 노래패. 그게 내 대학시절 ‘동아리’활동이었다.

민중가요를 부르고 또 가르쳤다. 몇 백 곡의 민중가요를 익혔다. 동아리 방에서 술 상을 봐놓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았다. 통기타의 소리와 가다듬어지지 않은 소리가 어울러질 때 나오는 소박한 낭만의 맛을 알아버렸다.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청계천 8가>와 <우리들의 외식=""> 같은 천지인의 노래가 좋았다. 우리 엄마, 아빠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리고 저녁 어스름, 낡은 건물의 찌든 냄새를 간직한 사람들의 걸음걸이, 그 사람들의 입에서 가늘게 삐져나오는 담배연기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민중가요를 좋아하게 되었다. </p>

처음 노래패를 할 때에는 ‘노래패’라는 것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그 노래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는 80년대 운동권 마냥 좀 빈곤해 보이고, 스타일에 대해서도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띄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기에 그들의 빈곤함을 ‘자발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 멋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동아리를 운영해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그리고 후배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을 때, 동아리 회원 수의 증가와 반비례로 내 노래패에 대한 애정은 사그라 들어갔다. 그건 내가 별로 민중가요를 좋아하지 않게 되고 노래패라는 것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난 노래패를 ‘대안적인 문화’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안적인 문화’라는 것을 참지못했다. 가장 헌신적인 노래패 활동가일수록 스타일에 대한 추구를 억압했다. 그건 순전히 대한민국의 운동판에서 그악스러움과 권위주의가 공존하는 NL 주사파들이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의 ‘탈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창작’. 그리고 ‘대안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많지 않았고, 실천으로 담보하지도 않았다. 다만 민족주의적 에토스가 느껴지는 노래를 점점 부르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유일한 항쟁이었다. 그 효과는 ‘대안문화’가 아니라 노래패의 ‘정치성의 사상’으로 나타났지만. 뭔가 새로운 ‘우리의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몸담았던 노래패는 가요 몇 곡과, 윤민석이나 <우리나라> 등의 노래를 적당한 배합으로 부르는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집단이 되어갔다. 그들은 점점 민중가요를 ‘의무감’ 혹은 ‘일’로써 받아들이고, 다른 부문에서의 각자의 자기 정체성들을 말했다. 동아리는 어느 순간 붕 떠버렸고, 술먹는 모임 + 약간의 꼰대들의 정변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다가가기엔 너무 아파서 요즘은 솔직히 좀 피한다. </p>

대중문화 교과서를 읽다.

문화 연구를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다.

 관련글</p>

2009/04/19 – [Book Reviews/Culture Books] – 처음 잡은 문화연구 입문서 – 존 스토리,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현실문화연구
2009/03/16 – [Reasoning] – 문화정치의 시대로 – 프로포절 (~ing)
2008/12/11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김진송, 현실문화연구 </td> </tr> </tbody> </table>

처음 읽었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은 영국의 존 스토리의 저작이었다. 한국 사람이 쓴 문화연구에 대한 책이 궁금했다. 수능 끝나고 처음 잡았던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이후로 대중 문화에 대해 거론한 책을 거의 잡지 않았다. 작년(2008) 읽었던 의 편저자 원용진의 책을 언젠가부터 영풍문고 미디어 칸에서 본 기억이 났다.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사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기나긴 혁명="">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책의 갈피를 놓쳐버렸다. 일단 내려두고 다시금 교과서를 잡았다. </p>

교과서를 두 번째로 보니까, 이제 슬슬 문화연구의 지형이 보인다. 예전에 맑스주의에 대해서 공부를 할 때 펼쳤던 지도가 떠올랐다. 별로 낯설지 않았다.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에서 읽었던 이론가들이 다시금 재론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편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p>

문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접근부터 시작하여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 그람시주의 등의 접근으로 가는 길을 ‘표준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대체로 사회과학의 문제는 ‘구조’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행위자’의 구도 안에서 펼쳐진다. 그 기준으로 최근의 이론들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알튀세를 위시한 ‘구조’에 대한 천착을 하는 이론가, 그리고 그 반대로 행위자들의 역동성에 대해서 말하는 E. P. Thomson과 에릭 홉스봄 등의 논의을 생각해 본다. 구조를 갖고만 설명하다보면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역동성을 빠뜨리기가 쉽고, 행위자들의 문제에만 몰입하다보면 구조가 주는 제약에 대한 분석을 상실하고 자칫 주관론으로 빠질 수가 있다.

이러한 각자의 강약 때문에 언제나 그람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 헤게모니라는 구조. 하지만 헤게모니는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며, 그 안에는 항상 갈등이 내재되어있다. 걸어가면서 말하고, 투쟁하면서 분석하는 것. 그리고 영국의 문화연구 그룹이 그러한 관심을 또한 받는다. 특화되어 ‘문화론자’라는 호칭을 받는 그들.

문제는 ‘구조’냐 ‘행위자’냐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의 어떤 구조가 어떤 행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냐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잘 적시하는 것이 좋은 분석이 된다. 영국 Birmingham 대학의 CCCS(Centre of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계열의 학자들(지금은 사회학과로 통합)-레이먼드 윌리엄스, 스튜어트 홀-의 논의가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은 구체적인 분석들을 내놓았다는 것에 있다. 한국의 CCCS. 그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국에는 문화연대가 있고, 몇 군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소가 있다.)

공부해야할 것들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현대 대중문화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구조주의적 분석(알튀세와 라깡), 그리고 기호학을 익혀야할 것이고, 대중의 대응과 그들의 능동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E.P. 톰슨의 방법, 그리고 그람시주의의 방법들을 습득해야할 것이다. 거기에 영국의 ‘문화론자’들의 ‘비판적 실재론’에 입각한 방법들, 또한 문화인류학적인 ‘역사적’ 연구의 방법을 익혀야 한다.

씁슬함 그리고 문화의 시대.

이론들을 잘 정리하고 당시의 사례들과 엮은 한 권의 교과서를 읽으면서 씁슬한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지금의 대중문화에 대한 담론이 얼마나 성장해있는 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초중고 교과서는 문화라는 것을 지하철 화장실에 붙어있는 개념인 ‘고고한 것’으로만 치부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여전히 지배담론에 있어 순수문화/대중문화의 구도는 깨지지 않고 있다.

동시에 그러한 구도는 순수예술/대중예술의 구도를 양산한다. 물론 다양한 층위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적 분석과 저술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대중문화를 접하고 있는 이들이 그 가치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뮤지컬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뮤지컬이 비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양’의 상징으로 여전히 기능한다. 그들이 보는 TV 드라마가 훨씬 더 익숙하고 자신의 상황과 쉽게 맺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상상된 교양’에 대한 주눅이 들어있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정치의 문제 또한 떠오른다. 전형적으로 촛불시위를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문화를 ‘동원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걷히지 않았다. 모두다 한 공간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내고, 연사는 대중을 계도하려 한다. 대중은 ‘듣는 사람’-군중이 될 따름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은 연단에 올라가는 몇 명의 선택된 군중일 따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1조>를 같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부를 따름이다. 자유를 뿜어내기 위해 나갔던 집회에서 그들은 학교 교장 선생의 훈화와 같은 운동권 어르신의 훈화 말씀을 듣는다.

대학 시절 불렀던 민중가요는 박정희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새마을가>와 내용은 다르지만 그 전달 방법은 같았는 지 모른다. 물론 대중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각자의 노랫말에 대한 서로 다른 형상화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 같은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정체성으로 엮을 수 있다고 믿는 좌/우파 엘리트주의자들의 오만이다. 대중은 그들의 생각보다 현명하다. 민중가요가 시들해 지는 것은 순전히 자본주의 상품 메커니즘에 ‘오염된’ 문화의 독성 때문만이 아니고, 민중가요가 시대를 포착하지 못하고, 그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대상화’ 시켰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p>

여전히 엘리트는 대중을 계도하려하고, 대중은 자신들의 일상인 ‘문화’에서의 새로운 대안들을 접하지 못하고, 그 일상의 소중함을 말해야 할 인텔리들은 두드러지게 활동하지 못한다.

90년대를 떠올려 본다. <문화과학>이 나오던 시점. <현실문화연구>와 <한나래>등의 문화연구 전문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들에서 보여주는 구체적인 분석들과 다른 방향에서의 해석.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참 여러가지 담론들을 이끌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이동연, 신현준, 이 생각났다. 서태지를 가지고 담론을 이끌던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압구정동의 문화를 차분히 살펴봤던 일군의 문화이론가들도 생각이 난다. </p>

물론 그들의 이론이 지배적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 있어 IMF가 터지기 전까지, NL/PDR이 작동을 멈추고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가득했던 시절, 새롭게 문화를 ‘유물론적’으로 분석하겠다고 덤볐던 이들의 참신함. 지금 그 참신함이 절실한데, 그들은 IMF 이후 크게 흐름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아쉬움이 슬몃슬몃 삐져나온다. 가장 극한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질서를 마지막까지 펼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오히려 여러가지 대안들이 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20대의 당사자 운동, 스쾃 운동, 노리단을 비롯한 사회적 기업의 운동. 운동은 펼쳐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엄밀하게 분석하는 이들이 아직 대세를 점하지 못하고, 꼰대같은 시선으로 그것들을 ‘준엄하게’ 꾸짖으려는 시도에 대한 ‘발칙한 반박’이 그리운데 잘 안 보인다.

그 ‘발칙한 반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부터 해야할까? 그 공부를 하고 싶다. 몇 주 전 지원했던 <문화학 협동과정="">의 입시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걸 하고 싶으니까.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