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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아저씨들과 비굴한 애들 사이. 김현진이 간다! – 김현진, <그래도 언니는 간다>, 개마고원, 2009
2009/06/03 – [Culture/Films] – 마더(2009) – 내 새끼즘 2009/04/02 – [Book Reviews/Social Science] –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촛불을 다시 생각하기(당대비평 기획위원회,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산책자, 2009) 한윤형, <그래도 언니가="" 간다=""> : 김현진과 개마고원이 만나게 된 사연?</a> </td> </tr> </table> ![]()
그녀의 글쓰기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의 ‘사회적 참여’라니. 놀랐다. 지금은 </font>10asia로 변한 <매거진T>의 필진이던 그녀의 이력(<토이남>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김현진)이나, 자퇴를 하고 빠져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쓴 <네 멋대로="" 해라="">의 그녀는 ‘사회적 참여’와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p>
한윤형은 김현진의 글쓰기가 “</font>놀랍도록 깔끔하고 알기 쉽게 경험이나 사태를 정리한다는” 사실을 부러워 한다. 나 역시 부럽다. 난독증을 일으키는 좌파 먹물 Hendrix의 글쓰기는 “아직까지도 NL이 뭔지, PD가 뭔지 모를 만큼 ‘운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그녀에 미치지 못한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녀는 확인시켜 준다.
김현진의 그 전까지의 저작들이 본인의 경험을 통해서 체험한 ‘사회적 외톨이’들에 대한 특수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장로님의 시대가 도래해 절대 다수가 ‘외톨이’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비판이 된다. 그녀에게는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세계일 수는 있으나, 다른 한 쪽에서 새로운 글쓰기에 목말라 하던 ‘건조한’ 좌파들에게는 달콤 쌉싸름한 단비가 내렸다. 어허라디야.
맘대로 다룰 수 있고 맘대로 자를 수 있는, 한 편으로는 아빠인 척하지만 아무런 책임감 없는 ‘아저씨들의 세상’에 대해 김현진은 폭로한다. “모든 문제는 네 (마음) 탓”이라는 그들의 닳고 닳은 ‘시크릿’식 해법의 양면을 파헤쳐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버티면서 ‘비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업노동에 피폐하고, 대학에 가서는 88만원 세대가 되고 마는 그들에 대해 그녀는 공감한다. 그리고 그 현실이 슬프다. 그래서 같이 운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위로’한다.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견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대단’하다면서 말이다.
예수가 2008년 여름의 컨테이너 앞에 서 계셨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다 큰 아들을 잃은 과부를 마주하신 예수가 가장 먼저 꺼내신 말은 “울지 마라”였다. 오늘도 거리에서 우리가 정말로 싸워야 할 대상은 MB를 넘어 틈만 나면 우리 마음속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별 수 있나, 어쩔 수 없는 거지’하는 패배주의다. .. 상처 입고 거리에 서 있는 모든 시민 여러분을 위해 딱 한 구절만 읽어드리고 싶다. “애통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그러니 부디 울지 마시기를(p.259).
그녀의 위로가 ‘명상록’에 그쳤다면 이 책을 소개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잔인한 세상을 뛰어넘기 위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 ‘연대’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이라도 나누려 한다. 그녀의 글의 힘은 그녀의 삶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과 같다. ‘아저씨들’의 세계를 넘고, ‘비굴한 아이들’의 세계를 넘어 뭔가를 이야기할 시점이 보이지 않을까? 이 시대를 견뎠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저기 사람이 있다. 저기 여전히 슬퍼하는 자들이 있다. 함께 슬퍼하지 않으면 그 슬픔이 남 일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한 인간 된 도리로 함께 슬퍼하자. 더 슬퍼하자. 더 슬퍼하자. 더 감정적이 되자. 스러져 간 올드타운의 아버지들을 잃은 슬픔, 여기 둔해지면 우리는 모두 뉴타운의 유령이 된다. 이성적인 것은 놈들의 몫으로 놔두고 나는 더 울고 더 소리치고 더 슬퍼하겠다. 이렇게, 100일이다(p.299).
글쟁이의 예민함은 방안에서 집필할 때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밖에 나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예민한 시각과 촉각과 후각이 그 글쟁이의 글의 섬세함을, 기민함을 만들어 준다. 김현진의 체험에 따른 글이 값지다.</span></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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