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① 강릉 가는 길
2009/06/14 – [Culture/Travel & Play] – 아무 생각 없이 여행 간다~ 2009/06/15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한잔 번개~ (6 15 강릉 번개!) – 헨드릭스와 함께하는 ‘술. 신들린 혀와 귀. 취할 여지 없는 밤’ |
강릉 가는 길
아무 생각 없이 떠났다. 그냥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난 어딘가에 봐야할 뭔가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청량리발 강릉행 열차를 타고 15일 떠났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었다. 종종 졸다가 깨서는 책을 보다 배고프면 김밥을 먹고 심심하면 카페 칸에 가서 인터넷을 했다. 6시간 30분. 짧지 않았지만 또 책을 읽기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여행의>
기차역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다가 태백을 조금 지나가고 있을 때 ‘하이 원’ 리조트와 ‘강원랜드’ 광고를 본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보았던 <태백, 잉걸의 땅>이 연상이 되었다. 탄광 노동자들의 피와 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세워진 강원랜드와 하이원 리조트가 지금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수익의 티끌 만큼의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정붙이고 살아왔던 태백/사북/고한/정선을 떠나는 그들. 입맛을 다셨다. 뒷끝이 썼다.
태백을 지나 열차는 후진을 했다. 2004년에 후배와 기차 여행을 갔던 어느 날. 그게 굉장히 신기해 보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신기했다. 그 사이 통리역, 도계역, 심포리역, 흥전역…. 존재하지만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기에 잊혀져버리는 작은 역들을 보았다.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한참 운행일 때 많이 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고3 때 친구들과 함께 통일호를 타고 강촌을 갔던 기억이 났다. 객차 사이 사이의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낭만을 즐겼던 추억이 떠오른다. 기타를 들고 가서 <춘천가는 기차="">를 불렀던 기억이 생각난다. 요즘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KTX를 타고 그러고 있으면 곧 이어서 차장이나 역무원이 나타나 말릴 것 같은데. 그 때는 그게 멋이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니.춘천가는>
이 즈음에서 여행을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그냥 “서울이 답답했다”였고, 방법은 “최대한 남들 안 가는 곳으로”였다. 그런데 최대한 남들 안 가는 곳으로 가자는 계획은 ‘강릉’을 떠올릴 때 실패였다. 으레 피서지로 생각하는 곳. 대학생들의 로망 ‘경포대’.
또 몇 시간을 가고 삼척을 벗어날 즈음에야 바다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해의 어느 바닷가.
눈으로 보이는 바다를 바다라고 생각했었다. 시각이 주는 이미지가 얼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난 차창 밖으로 보여지는 바다의 성난 파도를 관조했다. 파도는 육지의 모래를 다 흩어버리겠다면서 공세를 멈추지 않았지만 난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갯내를 맡고 출렁임의 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동해 바다를 실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랫만에 만난 바다와 온몸으로 부딪히며 인사하지는 못했다.
난 기차라는 공간에 수용되어 있었고, 그 바깥의 세상은 나에게 잘 그려진 한 폭의 풍경화와 같았다. 허옇게 일어나는 파도 이후의 거품의 짠내는 연상되었지만 곧 희미해졌고 바다를 본 지 10분 도 지나지 않아, 내 머리 속에서는 바다의 감흥이 아닌 다음 일정에 대한 고민만 가득차 갔다.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객차에서 먹었던 김밥 때문에 배는 불렀고, 나중에 입이 궁금해 먹었던 칙촉과 바나나 우유 덕택에 입이 텁텁했다. 항상 과자는 먹을 때 좋고 뒤는 깔끔하지 않다. 입안에 가득한 밀가루 가루의 잔여감. 그것조차 거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