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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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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
강릉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여행의 기술="">을 꼭 다 읽어내겠다고 다짐했다. 매번 여행길마다 <여행의 기술="">을 갖고 다녔었는데 생각해 보니 읽은 적은 없었다. 단 한 페이지도. </p>
올 초 좋아했던 친구가 알랭 드 보통을 읽어내는 것을 보고 나 역시 다시 알랭 드 보통을 읽었던 적이 있다.
2009/01/02 – [Book Reviews/Literature]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2009/01/06 – [Book Reviews/Essays]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 알랭 드 보통 |
알랭 드 보통의 저작들이 나왔던 시점은 대충 내 나이 정도였다. 지금 내 나이 28. 알랭 드 보통은 지금 우리 나이로 41살이지만 그래도 그의 책들은 그가 한참 팔팔했던 20대 중후반 ~ 30대 초반에 걸쳐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아무래도 사교계의 말 잘하는 똑똑한 댄디 정도 인 것 같지만 그래도 그의 책들에는 풋풋함이 묻어있다.
우리는 여행을 생각하면서 보통 “어디에 갈까?”를 가장 고민하게 되는 듯하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고 무엇을 먹을까?” 그러한 계획하에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 베스트”로 시작하는 시리즈가 항상 여행 관련 책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보통의 우리는 ‘관광’에 더 몰두하는 듯 하다. 하지만 최근 이병률의 <끌림>이라던가 이상은의 여행 수필 등의 ‘이야기’ 그리고 ‘단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무엇을 보는 가보다 ‘나’ 자신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바꿔내는 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임을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p>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힘들다. 보통은 그 이야기를 한다.
왜 갈까? 보통의 말투는 늘 그렇듯이 까칠하고 예민하다. 그리고 냉소적이고 회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의 말이 공감이 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문제들을 ‘꼰대’가 아닌 ‘친구’의 목소리로 전해주기 때문이다.
강릉에 가서 뭐하지 뭐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들을 똑같이 했다. “나의 관심은 어울리지도 않고 관계도 없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 때문에 곧 시들해졌다. 그 가운데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얻은 목감기, 어떤 동료한테 내가 휴가를 떠난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걱정, 양쪽 관자놀이를 놀러오는 압박감, 점차 강해지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 등이 있었다. 중요하지만 그때까지는 간과해왔던 사실 또한 차츰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이 섬에 데려왔다는 것이었다.”(p.33)
그리고 여행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던 예전의 기억들 또한 그는 떠올리게 해 주었다.
“따라서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나무 오두막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p.41)
동행했던 친구와 말다툼으로 헤어지고 혼자 바닷가에 남아서 술을 먹던 심정, 같은 방향을 생각하고 동행했던 친구가 자기 차로 간다는 이유로 여행 경로를 맘대로 바꿔버렸을 때 펼쳐진 ‘도살장에 들어가는 돼지’의 풍경. 이번 여행에 구태여 혼자 청승맞게 간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혼자는 변덕스러워도 누구도 탓하지 않음으로.
어쩌면 어떤 장소에 대한 환상보다 그 장소에 가기 전 그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더 환상적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p.43)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행을 간다. 왜일까???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p.52)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p.52).
위안을 받는다. 별게 없을 것 같으면서도 떠나는 자의 마음. 뭔가 있을 것 같아도 그것이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르는 데 그래도 가보는 마음. 그걸 안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p.83)
이런 마음들을 갖고 떠나는 여행. 그가 호기심에 보았던 것들에 대한 예리한 생각들이 좋았다. 소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끄집어 내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 한 송이의 소중함을 알았다. 도심에 찌들어 있는 내가 어떻게 해독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 그리고 지금 마시고 있는 바닷가의 갯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또한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작으마한 끌림이라도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떠올려 본다.
덕택에 무엇을 꼭 찍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내 손으로 천천히 쓴 기록들이 좋았고,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 행복했다.
보통 덕택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할 때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은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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