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2009) – ‘어쩌라고 씨발냄아’의 세계를 알아?

똥파리10점
양익준

leopord의 리뷰를 계속 보지 않았다가 영화를 보고야 읽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에서 한 3분을 제외하곤 욕으로 도배된 영화다. 어렸을 적의 면목동의 기억이 너무나 선연하게 나타나게 하는 영화다. 주인공이자 각본을 쓴 사람이자 감독인 양익준의 세계가 펼쳐진다.


손쉽게 막장 인생이라고 말하기엔 그 말이 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바닥의 인생이다. 하지만 그 바닥의 인생을 손쉽게 선/악 혹은 좋고/나쁨의 범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삶’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도덕률로 이 영화의 캐릭터들을 분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애당초 폭력의 씨앗을 만든 ‘애비’가 개새끼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애비를 바라보는 상훈의 눈빛을 설명할 수가 없게된다. 순수한 ‘악'(이를테면 <양들의 침묵="">에서의 렉터박사)과 ‘악질 양아치’ 상훈은 다르다. “우물쭈물하면 뒈진다. 씨발놈아”를 연발하는 상훈에게는 사실 ‘우물쭈물함’과 싸우는 자아의 분열이 언제나 상존했다. 따라서 쉽게 꼰대의 문법으로 “저 상스러운 하류 인생들의 순수한 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보겠다면 그냥 착한 영화들, 이를테면 <크로싱>을 보길 권한다. </p>

영화는 주장하지 않는다. 주장이 혹여 있다해도 그것은 영화의 관습적 문법(양아치의 얽혀있는 가족비사 – 치유하는 천사 – 회개 – 원죄에 의한 사망(타살) 혹은 개과천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크게 도드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똥파리>는 메시지의 강도보다 한 씬 한 씬이 전개될 때 느껴지는 공기로 말하는 영화다. 욕을 하지 않고 대화할 수 없는 양아치 한상훈의 개인적 문법을 설명해주는 영화이고, 바깥에서 유유자적하게 관찰하는 ‘전지적 작가시점’을 버린 영화이고, 그냥 “씨밸냄아 어쩌라고”하는 세계의 땅바닥의 침처럼 딱 붙어 징그럽게 안 떨어지면서 시선이 따라붙는 영화이다. 마치 연희(김꽃비)가 아구창을 맞고도 “씨발놈아”하면서 따라붙어 맥주 한 캔을 얻어먹듯이. </p>

쿨하고 젠틀하고 에티켓을 구비한 자들의 ‘속물근성’에 대비하여 뜨겁고 젠틀에 대해선 ‘좆이다’를 외치고, 이미 ‘속물근성’을 표현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다. “누굴 때리는 개새끼는 지가 안 맞을 줄 알거든. 근데 그 개새끼도 언젠가 좆나게 맞는 날이 있어. 근데 그 날이 좆같이도 오늘이고, 때리는 새끼가 좆같은 새끼네.” 데모하는 학생회 ‘애새끼들’을 때리까면서 “신성한 학교에서 공부나 할 것이지. 이 씨밸냄아”를 뱉는 깡패들에게서 우리는 ‘수구꼴통’의 파시즘적 이념세계를 읽어낼 것인가? 거기엔 단지 ‘먹고살리즘’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대한 과잉해석들이 언제나 엘리트 꼰대들의 “대중은 쉽게 선동당하는 무지한 존재이다”라는 명제를 만드는 건 얼마나 개소리인가?

용역깡패이고 사채빚을 받으러다니고 시비 붙으면 언제나 가볍게 주먹과 함께 “씨밸냄아”를 남발하는 상훈이 조카에게 쩔쩔매는 씬이나, 지 애비를 샌드백처럼 후려까다가 손목을 그으니까 들쳐업고 병원에 가서 “내가 아들이라고 씨발. 내 피 뽑으면 되잖아”를 연발하는 씬을 보라. 조카가 “애비 없는 새끼, 후레새끼”소리 들을 때 아빠노릇을 하려고 표현해보지만 기껏 한다는 짓이라고는 암바나 거는 짓꺼리를 하는 상훈에게서 무엇을 느끼는가?

오히려 문제는 그런 내밀한 개개인의 구체적인 이야기들 하나 하나의 소중함을 포획해서 묶어버리는 권력의 ‘동일화’의 방정식이 문제가 아닐까? 쉽게 말해 “난 나라고 씨밸놈아. 내가 어떻다고? 좆이다.”라고 상훈식으로 말해볼 수 있는 거다. 권력의 억압의 작동은 어쩌면 다 똑같은 범주로 묶어버려 편리하게 다룰 수 있을 때야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구체적 세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공감’하기 시작하고 우리를 구태여 한 범주로 묶어서 다스리려고 하는 권력 장치에 대해 도전한다면 거기에서 어쩌면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도 물음표 뿐이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에서 그 사과 맛을 누가 알까? 우리는 감히 추측해 볼 뿐이다. 먹어본 사람만 알지?? ‘삶’은 환원되지 않는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