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하고 구체적인 사람들의 역사 –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 지성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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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VERTICAL-ALIGN: top" align=left><A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8434&ttbkey=ttbpanic822253001&COPYPaper=1">고양이 대학살</A> – <IMG alt=10점 src="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 border=0>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문학과지성사</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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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style=”BORDER-COLLAPSE: collapse” cellSpacing=1 cellPadding=1 width=600 bgColor=#e6ecfe>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302" target=_blank>2009/05/10 – [Book Reviews/Social Science] – 교과서를 읽다가, 문화의 시대를 생각한다- 원용진,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91" target=_blank>2009/04/19 – [Book Reviews/Culture Books] – 처음 잡은 문화연구 입문서 – 존 스토리,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현실문화연구</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03" target=_blank>2008/12/17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여자들의 ‘오래된 현재’ – 신여성을 읽다 ①</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05" target=_blank>2008/12/17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여자들의 ‘오래된 현재’ – 신여성을 읽다 ②</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06" target=_blank>2008/12/23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황금의 지식시대를 넘어서! – 천정환, <대중지성의 시대=""></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200" target=_blank>2008/12/11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김진송, 현실문화연구</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73" target=_blank>2008/11/02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기발하지도 않고, 엄밀하지도 않은 팩션 : 이수광,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다산초당</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71" target=_blank>2008/10/30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20년대엔 모두다 망국의 한에 울었을까? –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 ①</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72" target=_blank>2008/10/30 – [Book Reviews/Liberal Studies] – 20년대에는 모두다 망국의 한에 울었을까? –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 ②</A>
</TD></TABLE> 문화연구를 전공으로 하게 되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기나긴 혁명="">을 읽다가 집어던져 버렸다.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교과서’만 한번 죽 읽은 수준이다. 다만 좀 그나마 읽은 문화와 관련된 부분들은 한국 근대의 문화사들이다. 아직 얕고 좁다. 아직 신분이 군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에 집중이 안된다. 오히려 한참 군생활의 복판이던 시점에서 책이 더 잘 읽혔다. 생각은 많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거나 인터넷을 한다. 인터넷부터 끊어야 하나?? 늦게배운 블로그질에 날밤 새는 줄 모르던 한동안이었다. <A title="[http://jihaeng.net]로 이동합니다." href="http://jihaeng.net/" target=_blank>지행네트워크</A>에서 하는 ‘예사인'(예술, 사상, 인문학을 읽는 모임) 세미나에 참가하게 되었다. 참가한 목표는 하나다. 어디가서 거들먹 거릴 만한 책들의 ‘목록’은 잘 알고 있으면 그 중에 ‘읽은 책’은 별로 없는 내 심각한 수준의 ‘지적 영양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사실 1주일에 한 번인 줄 알고, 아주 빡세게 책을 읽어보자 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이란다. 첫 번째 책이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었다. 읽느라 죽는 줄 알았다(사실 이제사 밝히자면 어제-2009.6.24-에야 다 읽었다…). ‘망탈리테’의 역사란다. mentality. 습속, 무의식, 집단에 내재된 심성 같은 이야기이다. 이데올로기는 대체로 어떤 지향을 갖고 있지만, 망탈리테는 방향이 정형적이지 않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로버트 단턴은 프랑스 대혁명(1789) 이전의 망탈리테를 추적한다. 단턴의 배치가 흥미롭다. 가장 밑바닥 민중들의 ‘이야기’인 마더구스 이야기(빨강 모자 소녀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고양이 대학살의 이야기, 그리고 점차 계급은 상승하고 부르주아의 세계의 이야기가 후반부의 주가 된다. ‘예사인’ 세미나에서 단턴이 결국 ‘혁명 전야’를 보여주려는 전략을 썼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의 전략은 기존의 맑스주의 역사학이나 혁명사들이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사회경제사’의 그것과 다르다. 대체적인 혁명에 대한 이야기들은 역사의 ‘필연’을 강조한다. 피폐한 민중의 삶은 끓어오르고 어느 순간 참을 수가 없게 되고, 어떤 계기(!)에서 혁명의 도화선에 불이 붙어 혁명이 일어난다. 그리고 혁명과 ‘강한 인과’를 갖는 주요 사건 혹은 주요 배경들에 대한 조명을 한다. 이를테면 대문자 세계의 이야기가 된다. 혁명의 문화사 역시도 그럴 것이다. 대문자 Culture의 이야기. 단턴의 전략은 소문자 culture의 이야기이다. 소소하고 내밀하고 구체적인 자료들, 역사학의 변방에 있던 자료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서 세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궁극적인 방향에서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 가는 길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준다. 대중은 절대 순응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삶에 대한 ‘대응’을 할 뿐이다. 자신을 고용한 자본가에 대해 적극적 저항 수단을 찾지 못해 카니발 제의의 의식을 통해 자본가의 고양이를 죽이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부인과 자본가를 ‘강간’해버리는 노동자들의 해악과 재치를 읽는다. 절대왕정 시대에 권력을 전복한다는 ‘아이디어’가 없었을 뿐이다. 나름의 저항은 상존했다. 그것이 불가능할 만큼 철권통치가 이어지던 시대에도 그들은 삶에 대한 ‘대응’은 멈추지 않았다. 협잡군의 ‘사기’치는 일은 거대 권력의 바깥에서 민중들이 살아남는 방법인 것이었다. 거기다 대고 “혁명이 아직 고조되지 않았다”라는 해석을 통해서 마치 모든 일을 일군의 혁명 세력이 다 해버렸다고 하는 해석이야 말로 패배주의적이지 않은가. 이러한 해석은 현재에도 모든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개론’이나 ’20대 개새끼론’ 모두 그런 주장에 불과하다. 대중이 권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직 그에 대한 ‘아이디어’가 온전히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부르주아들의 행태를 보는 것 또한 퍽 즐거운 일이다. 몽펠리에 시에 대한 지리지(우리나라에서의 이수광의 <택리지>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를 그리는 자의 시선을 통해 부르주아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고 있는 지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 부르주아가 ‘억압’을 말하고 ‘해방’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혁명’을 말했던 것은 그들이 그 개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디드로로 대표되는 백과전서파가 ‘신학’을 카테고리에서 ‘철학’의 하위범주로 넣어버림으로서 ‘휴머니즘’의 범주화가 시작된다. 또한 문필들의 뒷조사를 했던 어떤 수사관을 통해 당대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사고하는 방법과 평가하는 방법, 그리고 분류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어떤 부르주아 지식인의 도서 구매목록과 그의 서신을 통해 당대의 독서법을 이해할수 있다. 루소의 <신 엘로이즈="">를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흘리던 부르주아들은 함께 공감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갔던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무의식의 결계들이 어느 임계점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그들이 형성한 습속이 견뎌낼 수 없는 순간에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다. 물론 다른 한 편으로 그러한 배치를 통해서 혁명을 그리려 했던 로버트 단턴의 전략 또한 하나의 ‘목적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동의한다. 하지만 기계적인 인과율을 통해서 ‘주요 모순’과 ‘주요 전략’을 도출하려는 사고를 하려는 조야한 ‘혁명론’의 역사학에 대해서 훨씬 더 깊고 넓은 통찰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단턴의 전략에 이끌리는 나를 발견한다. 대중은 훨씬 더 복잡하고, 부르주아 역시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것들의 ‘구체성’을 자꾸만 중심성의 사유로 환원하려할 때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은 다시금 ‘뒤집힌 억압’의 체제를 소환하지는 않을까? “~만 없어지면”이라는 생각으로 성립되었던 사회들의 말로를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던가?? ‘자본주의’만 폐절하면 된다던 소비에트를 위시했던 20세기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다시금 ‘감시와 처벌’의 사회를 만들고 민중을 억압했다. ‘파쇼 민정당 독재’, ‘박정희 유신독재’만 깨부시면 될 것처럼 떠들던 20세기의 한국의 ‘자코뱅’들이 만들어 낸 것은 ‘민주주의’였던가??? 68혁명이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집권’이나 ‘국가 전복’을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꿈을 주는 것은 그 ‘구체적’인 삶의 ‘다양성’들의 영역이 다 정치적으로 구조화되어있고 보수적인 ‘유기체적’ 배치를 통해서 돌아감을 폭로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는 데에 있다. 신좌파 사회주의자들이여 당신들이 바라는 혁명은 ‘~을 극복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개 아무개 또 어떤 아무개의 소망들 하나 하나가 실현되는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소극적 ‘부정’의 시대에서 적극적인 ‘긍정’과 대안들의 분출을 쏟아내는 시대로 가는 것. 좌파의 비전은 여기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잊혀진 삶의 모습들과 무의식의 층위에서 작동되었던 사람들의 망타리테를 추적하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다. 단턴의 저작을 기회가 될 때마다 더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