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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② 강릉 돌아다니기 – 첫날밤 그리고 초당 순두부
2009/06/18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① 강릉 가는 길
6월 15일 강릉
강릉역에 도착했다. 내려서
날은 더웠고 내 건빵바지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디카, 지갑1, 지갑2, 동전, 카드 모든 게 다 버석거렸다. 배가 그리 고프진 않았는데 시간을 보니 저녁을 먹어야 할 것만 같았다. 강릉역부터 한참을 걸어다녔는데 그리 먹을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보통 여행객이 혼자 다닐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좀 한정이 되어있다.
혼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확실한 것 몇가지. 삼겹살, 회. 일단 회는 먹을 수도 있을 지 모른다. 시장에서 사다가 도시락 봉투에 담아서 먹으면 먹을 수도 있을 텐데, 횟집에서 파는 회를 혼자 먹기는 비싸기도 하고 뻘쭘함도 극에 달한다. 그래서 포기. 그리고 삼겹살 구워 먹는 것도 뻘쭘함의 극치이다. 혼자 구어서 혼자 먹고 있는다. 아.
생각해 보니 도전해 볼 법도 한데, 원래 나는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으로 패스.
그래서 ‘일품’ 요리를 찾아보려 했다. 가장 만만한 메뉴는 어느 동네에 가나 ‘백반’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따위이다. 개 중에 직접 즉석에서 만들어 먹어야 하는 음식은 낭패. 30분을 헤매고 찾아다녀도 식당은 잘 나오지 않았다. 강릉 문화의 거리 쪽으로 가봐야 했는데 그 쪽 가는 길을 잘 몰랐다. 그리고 ‘김밥천국’, ‘김밥친구’, ‘용우동’ 류는 가기가 싫었기에 그나마 보았던 몇 군데 음식점을 통과했다. 또 어떤 집에서는 저녁 시간이라고 ‘식사’는 안된다면서 문전 박대를 했다.
결국 찾아간 집은 조그만 중국집이었다. 짬뽕 하나를 시켰다. 한참을 걸었더니 배가 너무 고팠고, 3분 만에 짬뽕 하나를 다 먹어버렸다. 밥 먹고 담배 한 대를 물고 소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저씨들의 대화가 재미있다. 정치 이야기를 한참 한다. “야, 전쟁 나면 다 죽는다야?” “김대중이 노무현이가 빨갱이긴 해도 그 때는 전쟁 걱정 안했잖아?”
걸진 강원도 사투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는데 어쨌거나 그들의 대화는 재미 있었다. 나한테 한 마디 거들라 해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 거에요?? 빨갱이도 싫고 전쟁 나기도 싫으면??”이라고 추임새만 넣고 식사비를 내고 빠져나온다.
한 주일 전에 강릉을 갔었기 때문에 실은 강릉 지리가 눈에 익었는데, 조금 더 헤매니까 전 주에 갔던 문화의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소도시 도심의 목표는 ‘명동’ 혹은 ‘압구정’인가? 별 특색없이 패션 쇼핑몰이 죽 늘어진 골목이 눈에 띄었고, 그 옆에 스타벅스, 엔젤리너스 커피, 던킨 도넛, 파리바게트, 신라명가, 크라운베이커리의 간판들이 특색없이 늘어져 있고, 사람들은 술집으로, 커피집으로, 옷가게로, PC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1100원짜리 버스를 타고 공군 송정 휴양소로 향했다.
휴양소에 도착하여 l님이 부탁한 달팽이를 방생해 주었다. 휴양소에서 체크인을 한 후에 방에 들어갔다. 모기가 천장을 뒤덮고 있었다. 습하고 시원하고 모기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비도 후둑후둑 떨어지고 있고. 일단 내려와서 PC방에서 인터넷을 만져 번개에 응한 블로거가 있는 지 살펴봤다. 역시 없었다. 여행 가서 부럽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죽 읽고 난 후, 편의점(군대 BX/PX와 같다)에 들어간다. 병사가 “봉지 드릴까요?”하는 말에 곧이어 장교 꼰대의 말투로 “여기는 근무 할 만 하냐?”라는 대답으로 내가 상관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맥주 두 캔과 새우탕 큰사발 하나를 사서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 저기 전화하고 밖에 나갈까 했는데 일단 처음 연락했던 동아리 선배가 다음 날 보자고 했다. 원기자한테는 같이 노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쪽팔려서 구라쳤다. 어쨌거나 혼자 방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책을 보다가 온 게임넷을 보다가 MBC 게임을 봤다. 장윤정과 노홍철의 <놀러와>에서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서 “이미 이 때쯤은 작업이 거의 끝났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TV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어느 순간엔가 잠이 들었다.놀러와>
잠이 깬 건 순전히 모기 때문이었다. 이 놈의 모기들은 쉴새가 없다. 50마리는 학살한 것 같은데, 벽은 빨갛게 물든 것 같은데도 여전히 모기는 기승을 부렸다. 맥주가 달달하니 피운 담배와 어우러져 방안의 매캐함과 함께 머리는 지끈 거리는 데 모기를 잡으려고 겨우겨우 몸을 가누어서 모기를 잡기 시작했다. 10마리 정도를 더 잡고 나니 누웠을 때 앵앵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6월 16일 오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깨어나서 개운하지 않았다. TV를 만지작 거리다가 컵라면 하나를 까먹었다. 슬슬 강릉 구경을 가야하는 데 혼자 방에 있으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머리까지 아팠다. 아침을 먹으려고 굳은 다짐을 했지만 비가 오는 핑계로 방에서 조금 더 뭉갰다. 12시면 체크 아웃하고 나가야 하는데 11시까지 TV만 봤다. 온게임넷과 MBC게임을 전전한다. 겨우 씻고 나와 콜 택시를 불렀다. 일단 아점을 먹기로 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동아리 선배의 조언이 떠오른다. ‘초당 순두부’!! 바로 그거다!! 순두부를 먹고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자고 계획을 잡았다.
초당 순두부까지 택시 아저씨가 데려다 준다. 초당 할머니 순두부!
이거 비려서 어떻게 먹나 싶어 서빙하러 온 남자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에요?” “묵은지 내려서 드셔도 되구요. 아니면 간장 좀 넣고 드셔도 되요.” 김치라곤 1년에 3끼 정도 먹는 내가 김치를 넣을리가 없었고, 곧장 간장을 넣고 간을 했다. 순두부의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찼고, 생각보다 비리거나 금방 물리는 맛이 아니었다. 두부를 좋아하게 된 요즘의 입맛 때문일 수도 있었으나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좀 느끼하거나 물릴 때마다 강원도식 찍어먹는 간장을 한 숟갈씩 밥에다가 찍어먹으면 입안이 한 없이 개운해졌다.
국수 그릇 하나에 가득 담겨있는 두부를 다 먹고 밥 한 공기를 먹었더니 한 없이 배불렀다. 매일 이렇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좀 해봤다. 울 아빠랑 동생 / 나랑 엄마의 식성이 갈리는 분기점이 여기에 있다. 무조건 육고기를 매끼니마다 최소한의 양 만큼 보충해야 하는 사람들과 두부만 먹고도 배가 부르다며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차이.
포만감을 끌어 안고 뭐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누구 또 만나야 해서 어쩌냐는 이야기. 뭐 상관없다고 말하고 그래도 볼 수 있음 잠깐이라도 저녁이라도 하자고 했다. 혼자 놀기도 좋지만 누군가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후배한테 만났다고 이야기했으니까 최소한 얼굴을 보긴 봐야겠다는 생각. 생각들이 많았다.
선배와의 통화를 끝내고 순두부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