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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③ 강릉에서 허난설헌을 만나다
초당 순두부 마을에서 빠져나와 어디 갈까 고민하던 중. 신사임당, 오죽헌, 퇴계 이이가 떠올랐다. 하지만 별로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유가 생각났다.
6월 23일부로 5만원권 지폐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링크1) (링크2)(링크3) 5만원 권의 얼굴은 신사임당이다. 초창기 김구냐 심사임당이냐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신사임당이 선정되었다.
신사임당이 ‘여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전혀 그럴 수가 없다. 신사임당의 문학과 예술의 실력 때문에 그녀가 선정되었는가? 진보진영의 언론들마저 그것에 방점을 두긴 한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사임당이 5만원 권에 선정되는 것을 우파들이 손들어 주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순전히 ‘봐줄 수 있’기 때문에 신사임당을 선정해 준 것이다. 그렇게 예술적 재주와 문재를 겸비했으면서도 아이를 잘 키웠던 ‘슈퍼 맘’이기 때문에 인정해 주는 것이다.
16세기의 ‘슈퍼맘’ 신사임당 덕택에 일하면서 애 키우느라 등골이 빠지는 21세기의 엄마들은 매일 지갑을 열어 돈을 볼 때마다 ‘엄친아’를 만들 ‘대치동 엄마’의 현명함에 대한 지배계급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개인 신인선은 사라지고 “율곡 이이의 엄마”의 힘이 21세기에도 작동한다. 그녀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엄마’의 표상으로 읽어내는 지금의 우파들의 더러운 꼰대의 시선이 싫은 것이다.
내키지 않았다. 가지 않기로 했다. 오죽헌이고 나발이고 기분 같아선 다… 그러는 와중에 옆 골목의 ‘허난설헌 생가’가 눈에 띄었다. 허난설헌. 그녀는 누구의 엄마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좌파’ 허균의 누이이기도 했다. 신사임당보다 두 세대 뒤에 같은 강릉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금으로 치면 어떤 사람 정도 될까?? 목수정? 조금 전 세대로는 로자 룩셈부르크 혹은 한나 아렌트? 이런 포스를 주는 사람이었다.
규원( 閨怨) : 여자의 원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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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霜打廬洲下暮鴻(상타여주하모홍):
瑤琴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부견) :
“조선에 태어난 것, 더구나 여성으로 태어난것,그중에서도 가장 박색인
김성립의 처가 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한다”
[출처] 역사속 그녀를 찾아서..허난설헌|작성자 캔디
적극적으로 자기 표현을 하려 했던, 시대가 주어놓은 결계 따위에 굴하지 않고 시를 썼던 그녀. 남성 위주의 사회를 400년 전에 고발했던 시인. 허랑 방탕하게 술쳐먹고 색에 빠져있던 남편을 기다리면서 또 저주했던 그녀의 절절함이 들려왔다.
조선 시대에 자의식 강한 여자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 한참 생각했다. 허균을 동시에 떠올리면서 시대 보다 두 발 앞선 사람들의 비극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가 뭐라고 지껄이거나 말거나 세상을 비웃을 만큼의 호기가 있었고, 벼슬 따위는 집어 던질 준비가 항상 되어있고, 민중의 생활에 대해서 이미 400여 년 전에 말할 수 있었던 허균. 남매는 위대했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다시 뒤적거리면서 새소리를 들었다. 전혀 다른 공감의 독서가 가능했다.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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