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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⑤ 태백 잉걸의 땅에 가다, 석탄 박물관
2009/06/18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① 강릉 가는 길 2009/06/29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② 강릉 돌아다니기 – 첫날밤 그리고 초당 순두부 2009/06/29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③ 강릉에서 허난설헌을 만나다 2009/06/29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태백 여행 (2009. 6. 15-17) – ④ 테라로사 커피 그리고 l형 만나다 2009/06/15 – [Culture/Travel & Play] – 강릉 한잔 번개~ (6 15 강릉 번개!) – 헨드릭스와 함께하는 ‘술. 신들린 혀와 귀. 취할 여지 없는 밤’ 2009/06/14 – [Culture/Travel & Play] – 아무 생각 없이 여행 간다~ 2008/10/08 – [Culture/Films] – 부산 여행기 ⑤ – <농민 약국="">, <검은 명찰=""> 관람기</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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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강릉에서 출발한 버스는 동해, 삼척의 주요 터미널들을 다 경유해서 가기 시작했다. 삼척 터미널부터는 학생들을 태우고 집 앞에까지 다 내려다주면서 갔다. 마치 통학버스처럼. 기사 아저씨와 아이들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아저씨한테 CD나 TAPE를 주면서 틀어달라고 하고 아저씨는 그 음악을 틀어주었다. 고속버스 중에서는 아마 가장 정겨운 고속버스였으리라.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표정에서 학교 수업을 마친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걸어서 통학을 했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은 행복했구나 싶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사람들의 고단한 표정이 길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예전에 난곡의 달동네나 구로공단의 문닫은 공장을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리와 흉물이 되어버린 공장들이 내 마음까지 피곤하게 만들었다.
터미널에 내렸을 때 나는 경계심을 이상하게 품기 시작했다. 처음 터미널에서 만난 중학생 남자 애들 때문이었을까? “이 씨발놈아. 내가 묻잖아. 니 내 말 씹나?”라는 영동 지방의 사투리를 듣고 있으니. 주위 사람들이 다 낯설게 보이고 피곤에 찌든 사람들 중 하나가 험상궂은 얼굴로 나에게 시비를 걸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이면서 생각해보니 나처럼 옷차림도 남루하고 돈이라고는 털어도 기껏해야 몇 만원 나올 것 같은 놈을 왜 건들까 싶었다. 마음을 누그러 뜨렸다. 그리고 역전 앞에 있는 여관방을 잡았다.
태백에 대한 내 편견과 상관없이 모텔은 굉장히 깨끗하고 좋았다. 서울의 애지간한 러브호텔들에 있는 것이 다 있었다. 60인치는 훌쩍 넘을 TV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음료수가 종류별로 2개씩 4쌍은 있었다. 화장실에 있는 비데와 월풀 욕조는 “여기는 어디인가?”를 다시금 묻게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앞에 있는 크리넥스 티슈 통을 보니 역시나 ‘방석집”티켓다방’의 전화번호가 빽빽하게 프린트 되어 있었다.
영화 <창>에서의 방울이 같은 여자가 전화를 걸면 올 것만 같았다. 그런 여자들을 부르는 남자들의 마음과, 거기에 불려오게 될, 돈벌려고 그나마 도시로 흘러흘러 들어온 삶들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TV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졸다가 깨다가 했다. 술은 더 먹기 싫었다.
이날 역시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어기적 걸어나오니 태백역이 보인다. 태백역 현판을 보면서 왜 시커멓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어쩌면 더 새카만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작년 부산 영화제에서 <태백 잉걸의="" 땅="">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태백으로 대표되는 탄광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나는 그 길을 언젠가는 밟아보겠다고 싶었고, 탄광도 가능하다면 좀 구경해보고 싶었다. 다만 걱정이 되었던 것은 이 호기심으로 덤벼드는 다 큰 놈의 호기가 괜히 그 사람들에게 성가신 것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거였다.
선지 해장국 하나를 먹는데 너무 맛이 좋았다. 다음 번에 혹여 태백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집이 보는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뭔가 있어보이긴 했다. 이 역시 도시 촌놈의 선입관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점심을 먹고 <관광안내소>로 찾아간다. 그런 데에는 외국인이나 찾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설마 가게 될까 생각했었는데 급하니 할 수 없다. 택시를 계속 탈 만큼 돈이 많았거나, 차가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내 주머니엔 그 다음 주까지 써야할 돈 5만원이 있었을 따름이다.
<관광안내소>에는 나보다 2~3살 정도 어려보이는 20대 중반의 여자가 앉아있다. 예쁘장한 얼굴로 메이크업 베이스와 약간의 색조를 하고 머리를 묶어서 틀어올린 그 여자. <해커스 토익="">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여자는 아마 대학생이거나 아니면 졸업하고 취업 준비생이거나 아니면 여기로 채용이 된 상태이겠지? TV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하는 여자는 내가 말을 걸자 친절하게 몇 가지를 물어본다. “석탄 박물관 가실거에요? 아니면 탄광 체험 가실거에요?” 사투리가 전혀 묻어있지 않은 이 여자의 말투. 이 여자는 수도권이 연고일까? 아니면 태백 연고인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을까? 알 수가 없다. 버스 시간표와 관광 안내도 두 장을 받아서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처음 간 곳은 석탄 박물관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 참을 걸어 산길을 올라가니 대리석으로 외장을 한 석탄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의 입구 앞에는 여러가지 화석들과 광물들이 놓여있다. 여기에 놓여있는 화석들은 다 만져도 된다고 친절히 쓰여있다. 연대가 빼곡하게 적혀있고, 그것들의 특징이 씌여있다. 돌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40대 후반~50대 초반 정도의 아저씨 4~5명이 몰려온다. 담배를 피우면서 쌍욕을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있는 이 아저씨들은 한 때 같이 일했던 동료였거나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을 불알친구였을 것이다. 내가 어정거리자 “아저씨, 여기 관람하러 오셨어요?”하고 묻는다. 들어가서 박물관 관람이 시작되었다.
초입의 광물에 대한 설명들을 읽으면서 중학교 1학년 때 배웠던 ‘모스 경도계’, ‘굳기’,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같은 한 동안 잊어먹었던 생경한 단어들을 입으로 되뇌여 본다. 한 때는 사회과목보다 과학을 더 좋아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한 때 외웠던 경도 순서라던가 삼엽충이 고생대라는 걸 떠올리면서 그 시대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사는 ‘사회’와 ‘국가’에 더 관심이 많아버려 그런 광물학적 지식들은 점차 지겨운 기호들로 머리를 스쳐갔다. 눈에 들어온 것은 노동자들의 탄광에서의 모습이었다.
우연찮게도 영국의 탄광 노조와 한국의 탄광 노조의 파업의 시대가 맞물렸다. 영국의 탄광 노조의 파업은 1984년. 사북 사태로 일컬어 지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1980년.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영국의 탄광 노조의 파업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보여주듯 패배의 무드를 영국의 노동자 전통에 안긴 반면, 사북 사태는 바뀔 세상의 전조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핏자리가 어떤 궤적들을 찍었을까에 대해서 생각에 잠겼다. 다시 시작되어야 할 변화의 시대를 잠시 상상했다.
지금은 쇠약했지만, <석탄 박물관="">의 노동자들에 대한 표시는 최소한의 존중이 느껴졌다. 관제 박물관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노출되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숨결을 제대로 알 수가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노동자들이 직접 세운 탄광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폐광에 세워진 그들의 사택촌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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