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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통법 – 공지영, 도가니, 창비, 2009
2008/09/04 – [Reviews / Previews/Essays] – 공지영, 그녀가 해주는 위로. 지승호를 통해 듣다 (공지영, 지승호, <괜찮다, 다 괜찮다>,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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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 공지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공지영이 돌아왔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환기를 항상 잊은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더욱 강렬하다. 그는 항상 실화를 써 왔지만 이번처럼 그 문제가 복판으로 파고들어오는 것은 드물었다.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 대해 말한다. 거기에는 ‘상식’있는 사람들이 쉽게 확신범들에게 어떻게 당하는 지가 나타난다. ‘상식’은 그 자체로 힘이 약하다. 상식 따위는 짓뭉개버리고 우리에게 순응을 강요하는 완고한 ‘그들만의 세상’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도가니>
충격적이다.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조용히 눈으로 읽었다. 조금씩 이야가 전개되고 집에 와서 읽으면서는 담배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손이 떨리고 눈이 점차 붉어졌다.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 머리에는 살면서 배운 모든 욕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개 씨발(년)놈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주창했던 노무현의 죽음에 사람들이 아파한 이유를 떠올릴 수도 있다. ‘대통령’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했던 최소한에 대해서 반대해본 적은 없었다. “그 이상”을 항상 주문했었는데. 어쨌거나 그의 ‘개혁’이라는 것이 좌초하는 데에 있어서 항상 고려해야 했었던 변수를 잊었던 것도 이번에 떠올랐다. 여전히 ‘그들’의 세계라는 것이 환상이 아닌 ‘실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력하다.
특별하게 사회의식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강인호가 무진시에 도착한다. 자애학원의 청각장애인 중2 학급 담임을 맡게 된다. 그가 처음 접한 것은 ‘큰 거 한 장’으로 할 것을 ‘작은 거 다섯 장’으로 선생질 하게 해주었다며 툴툴대는 행정실장의 말이었다. 그리고 학교 선생들의 세상 물정을 알려주는 교무실 옆자리 선생의 말과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아내의 말이었다.
“앞으로 여기 계시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피해의식이 심한 것이 농인들이에요. 자기네들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도 특징이구요.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민족이라고 하면 그들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민족이죠. 아시겠어요? 다른 민족이라구요.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거짓말도 그들의 풍습 중 하나지요.”(p.32)
“나 당신에게 불만 없어. 육개월 직업이 없었다 해도 당신 훌륭한 남편이었어. 좋은 아빠였고. 다만, 당신이 가끔 세상일에 대해 도덕선생처럼 까탈스럽게 구는 거, 그건 좀 힘들었어. 학교 발전기금 내는 거, 그게 뭐가 나빠? 만일 우리에게 처음부터 돈이 많았다면 일부러라도 장애인학교에 돈을 냈을지 몰라. 그걸 낸다고 해서 뭐가 나쁘지? 그리고 눈 한번 감고 그 돈을 내면 선물은 너무 많아. 요즘 같은 세상에 교사가 된다는 일이 그렇게 쉬울 줄 알았어, 당신?”(p.35)
사실 강인호는 구태여 저항하려 하지 않았다. 현실을 깨버릴 각오로 덤빈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너무나 추악하다. 그는 눈 뜨고 침묵해야 하는 상황에서 입을 열었을 따름이다. 본대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다.
아이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 발톱 없이 태어난 사자, 다리 없이 태어난 사슴, 귀먹어 태어난 토끼, 팔 잘린 원숭이 …… (p.38)
“저희 아이가 무얼 잘못했는 지 모르지만, 제가 담임으로서……”
“참 나, 어디서 이런 씹새가 굴러왔어? 너 지금 누구 훈계하냐? 경찰서에서까지 나온 거 못 봤어? 지금 학교가 발칵 뒤집혔는데 너 말고도 줄서 있는 선생들 많아!“(p.50)
하지만 진실 그 자체는 힘이 없고 그것에 대한 대응인 ‘상식’ 역시 아무런 힘이 없다. 강인호가 고민하고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주는 위압감보다는 그것에 대응했을 때에 아무런 결과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체념이다.
‘솔직히 말해. 너는 서유진에게 말했듯 세상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니야. 너는 월급을 받기 위해서 왔을
뿐이야. …… 서른네 해를 살고도, 그렇게 수없이 패배하고도 아직 그걸 모른다면 너 역시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을
거야. …… 그만하면 넌 너의 할 바를 다 했어(p.54).
그렇다고 그것들을 그냥 참아내지는 못한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자애학원의 안개속에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 같은 성폭행 사건과 비리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분노한 것은 사실 ‘그들’은 ‘그들’이 노는 물에서 충분히 다들 하는 대로 놀 수 있는 데 구태여 가장 취약한 아이들을 데리고 그렇게 ‘놀았’다는 거다.
자애학원 설립자의 아들인 교장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여자를 살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리에 널린 것이 매춘부들이었다. 룸쌀롱 까페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전화방…… 자신의 성기를 팔아 돈을 벌고 싶은 젊고 싱싱한 여자들이 좌판에 누운 젖은 생선들처럼 화려하고 퇴락한 거리거리마다 널려 있었다.
“근데 너무 후지지 않아? 어떻게 예순이 다 된 교장이라는 인간이 학교에서 애를! 그것도 모자라서 화장실에서!”(p.71)
연두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말이 번개였다면 이건 땅이 갈라지고 해일이 이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연두는 귀염성 있는 아이고, 어쩌면 변태적 성욕을 가진 성인에게 충분히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말하자면 … 어떤 인간적 약점을 헤아릴 여지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교장과 행정실장이 혹은 생활지도교사가 지적장애아를 성폭행했다면, …… 그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는 …..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p.75).
강인호와 무신시 인권운동센터의 서유진이 분노한 것은 상식적인 것이었고 그들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시작한다. 권력은 강경한 저항에 대해서는 유화책을 만만한 저항에 대해서는 거절과 완강함을 섞어가면서 대처한다. TV에 유포하기 전까지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자애학원의 문제에 대해서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공무원의 태도로 임하지만 TV에서 방송이 되고 나서 일은 손쉽게 흘러간다.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방송국에서 떠가고, 미적대던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고, 교육청은 감사를 시작하고 재판은 시작된다.
세상의 뭇 사람들은 TV 시사프로를 보면서 공분하고 아이들의 편인 듯하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소통법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다. 사실 서유진과 강인호도 알고 있다. 그것이 두렵다.
방송의 파장은 생각 밖으로 컸다. 각지에서 증언들이 쏟아져나오고 진정이 접수되었다. 언론은 연일 이 사실을 보도했고 피의자 이모 교장 형제와 박모 교사의 처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국고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복지법인과 학교법인 경영진과 이사진은 해임될 것이다. 그리고 관선이사가 파견되어 이후 정상화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었다(p.157).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니까…… 이렇게 당연한 범죄를 온 무진의 상류층들이 겹겹이 에워싸서 은폐하려 하고 있어. 삼척동자도 다 아는 범죄를 범죄 아니라고 하고 있어. 강선생 나…… 실은, 그게 무서워, 너무 불길하고 무서워.”(p.144)
이제 노회한 ‘그들’의 수작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의 자신들을 위한 선동이 시작된다. 씨발 놈의 목사는 자신의 교양과 학식과 변증술을 가지고 신도들은 선동하기 시작한다.
“얼굴을 숙인다거나 재킷으로 가린다거나 이런 짓은 절대 하지 마세요. 나는 몹시 억울하다, 음모가 있다, 나는 희생자다, 모든 것은 정의로운 경찰과 검찰이 밝혀줄 것이다, 이런 주문을 외우면서 담담하게 고개를 들고 살짝 미소도 지으세요. 잘되지 않겠지만 노력해보라구요. 알았어요? 네?”(p.153) – 장경사
“자 여러분, 이밖에도 대책위에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잇습니다. 먼저 전교조 출신 기간제교사. 이 사람은 이 사건이 나기 겨우 한 달쯤 전에 홀연히 서울에서 옵니다. …… 그리고 무진 인권운동쎈터. 이들은 말이지요. …… 이사장과 이사진을 해임하고 관선이사를 파견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자, 그럼 교육청과 시청에서 그걸 들어준다고 칩시다. 그럼 누가 그 관선이사가 될까요? ……”(p.161)
“그런데 여러분, 그분들이 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그 죄가 너무 지저분해.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그래요. 사람이니까! 남자니까! 사춘기 가슴 빵빵한 아이들 보고 마치 다윗이 유부녀 밧세바 보고 유혹에 빠지듯이!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사탄의 유혹인줄도 모르고! 그럴 수 있는데! 그러면, 에잇 장로님, 어서 벌받으쇼! 하겠는데…… 이건 좀 너무 많이 갔어요. 너무 싸구려 뽀르노로 가버린 거야. 가다보니까 너무 많이 가서 마치 뱀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던 그때처럼 과장하고 거짓말이 거짓을 낳고 또 거짓을 낳아서 코미디로 변하게 해버린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상식을 가지고 이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적어도 상식 말입니다!“(p.162)
입에 담기조차 힘든 사건이 자신의 도시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 마음이 편했다(pp.164-165)
이제 일은 진흙탕속으로 들어가버린다. 아니 멀쩡한 진주를 뻘밭에다가 다시 담그는 일이 벌어진다. “너도 그만큼 더럽잖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들의 진실은 ‘수작’이 되고 ‘이기주의’가 된다. 좌파 빨갱이들의 선동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 된다. 멀쩡한 생사람 잡는 다는 말을 그들은 쓰기 시작한다.
“이 쌍년아, 니가 그년이구나. 어디 상판 좀 보자, 이 마귀 같은 년아! 니가 내 남편 잡아먹으려고 이런 누명을 씌운 그년이구나. 너 남편도 없이 산다더니 그짓을 오래 못해 환장을 했구나. 그래서 너 빼고 다 그짓만 하고 사는 줄 알았니? 이년아, 내가 우리 주 예수님 모시고 너 같은 마귀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니 씹을 갈아마시고야 말 테다, 이년! 이 사탄!”(p.177)
“정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머리 한번 더 쓰다듬어주려고 한 것이 성폭행이라면 저와 제 아우에게 벌을 주십시오. 이건 요즘 저희 재단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일부 젊은 좌파 교사들과 저희 재단을 통째로 삼키려는 좌익운동세력이 가여운 장애아들을 세뇌하여 자신들의 권력욕을 위해 이용하려는 파렴치한 사건입니다.”(p.185)
강인호는 순간 어떤 뜨거운 것이 끝없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이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 뒤에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숨겨져 있다. 어둠의 세계, 공포의 세계, 위선과 가증과 폭력의 세계(p.210)
“그렇다면 당신은 무진시민 모두와 싸워야 할 거요. 사방에서 거짓말을 하며 서로서로를 눈감아주고 있어요. 시의원과 건설업자의 처남이, 운전면허시험장 직원과 병원장 사모님이, 룸쌀롱 마담과 경찰서장이, 밤무대 무명 가수와 외로운 사모님이, 유부녀와 목사가, 교수와 교재 출판업자가, 시교육청과 입시학원 원장이 서로를 봐준다며 눈을 감고 거짓말을 해대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쩌면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은 가끔 포기할 수 있어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거에요.”(p.255)
소설속의 자애학원 교장과 행정실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현실 속의 광주 인화학교의 교장과 행정실장 역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성폭행 사실은 인정되지만 지금까지 애썼다는 이유가 참작되고 전관예우의 힘이 작동된다.
그냥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상식’이라는 기준과 ‘진실’이라는 무기는 항상 무력하다. ‘그들의’ 소통법을 참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화해야 할까? 아마 대화는 불가능한 것 같다.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체계에 대항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 속의 서유진처럼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힘들이 많이 있다. 잘 기억되지 않고 주목받지 않지만 그래도 묵묵히 버티면서 조금 씩은 또 한 걸음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욕을 하다가도 욕을 멈추고 그래도 희망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