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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과 김대중
2009/08/20 – [Reasoning/Current Issues] – 한 시대의 종언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008/01/05 – [Reviews / Previews/Theology] – 장공 김재준을 만나다. |
8월 17일. 내가 다니는 경동교회에서 故 강원용 목사의 3주기 추모 음악 예배가 있었다. 베트남 의료봉사 보고 영상을 만드느라 교회에 상근하다시피 있었다. 미디어 선교위원회 소속이고 평일 저녁에 시간을 낼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예배의 촬영을 맡았다. 예배는 장엄했고, 마지막의 <사랑해 당신은="">을 들을 때는 눈물이 모두 그렁그렁했다. 나 역시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사랑해>
강원용 목사의 추모 예배에 참가한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야 말로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들의 모임이구나.” 70~80년대 사회운동의 거목들과 정관계의 거목들이 등장했다. 도대체 강원용 이 사람은 누구인가 싶었다. 크리스찬 아카데미(현 대화문화 아카데미) 시절에 그 곳에 들르고 경동교회의 “젊은 둘째”에서 활동했던 최순영, 박노해 같은 운동권들부터 수구 꼴통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
‘품’에 감동하게 된다. 카랑카랑하고 ‘바리새인’의 신앙을 질타하던 그의 사자후의 뒤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었나. 아니면 그의 진심이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일까. 굽히지 않고 살았던 이의 행적. 강원용 목사가 다시 그리워졌다.
다음 날 8월 18일, 김대중 前 대통령이 서거했다. 우연찮은 일. 자꾸 어떠한 상징들을 떠올리게 된다. 18일 밤 MBC에서 하는 김대중에 관련된 다큐를 보았다. 강원용 목사의 인터뷰가 나온다. “이 사람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내 평생에 이렇게 결연하게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은 단 한명 김대중 뿐이다.” 김대중에 대한 평가였다.
사실 자료들을 찾아보면 둘 사이의 관계가 항상 순탄하지는 않았다. 1979년 12.12 사태 직후 강원용 목사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연합을 통하여 김영삼이 대통령을, 김대중은 당대표를 하라고 제안했었다고 한다. 스마트하고 판단력이 좋은 강원용 목사다운 이야기였으리라. 김영삼은 자신이 신민당에서 다수파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의 원칙을 깨지 않으려 했기에 거절했고, 김대중은 군부가 박정희 이후에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줄 알기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되는 거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5.18이 벌어졌다고 강원용 목사는 회고한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쨌거나 그들이 ‘정치적 판단’에서 항상 일치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강원용 목사는 노태우 정권에서 방송통신위원장(현재 최시중이 꿰찬 자리)을 하기도 했고 서울올림픽 유치에 관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순수한 ‘민주투사’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는 그렇게 품이 넓게 행동한 것 덕택에 다른 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언제나 여해 강원용 목사는 탄압받는 이들의 ‘비빌언덕’이 되어준 것은 맞는 듯하다. 김대중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는 전두환에게 한 마디 할 수 있었던 것도 강원용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목회자였기에 가능한 것도 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만약 사후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먼저 간 강원용 목사와 김대중 前 대통령은 잘 지낼 것만 같다.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논쟁할 필요가 없다면 서로 편안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엔 오로지 평화만이 있었으면 한다.
강원용 목사의 <역사의 언덕에서="">와 김대중 前 대통령의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그리고 새로 나오게 될 자서전을 읽어봐야겠다. 남재희를 읽으면서 보지 못했던 ‘인물’에 대한 생각들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한국 현대정치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역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