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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환대의 지식 공동체 – 조한혜정 외 : 교실이 돌아왔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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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2학기 <사회학 개론=""> 시간. 수업 과제 중에 연세대학교 조한혜정 교수의 <글읽기와 삶읽기1="">를 읽는 게 있었다. 고답적으로 장과 장이 나뉘는 책이 아니라 거기에는 대화가 있었고 소통이 있었다. 갈증이 생겼다. 내가 한 학기 동안 배운 학문이라는 것은 교수는 떠들고 지적 호기심은 각자 알아서, 혹은 교조적인 맑스주의나 주체사상을 전수하는 선배에게 “학습”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상호간의 대화가 있었고 자신의 삶과 겉도는 지식들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면서 평가하는 시선이 있었다.글읽기와>사회학>
대학 2~4학년을 관통하는 내 대학생활의 공통분모를 찾자면 그것은 바로 ‘세미나’였다. 선배들처럼 ‘가르치려드는’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지식을 통해서 서로 다른 삶들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회과학 기초를 공부하거나 맑스를 읽거나 철학사를 공부했다. 실패였다. 개개인의 인기를 통해서 모인 후배들과 동기들과 선배들은 세미나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흩어져 갔다. 그들에게 전화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동원된’ 사람처럼 행동했다. 거기에는 자기 주체적인 ‘선택’이 없었다. 선배의 설득 혹은 강요가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5~6년이 지나 조한혜정(조한)이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한 <교실이 돌아왔다="">를 읽는다. 순전히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수업조교를 하기 위해서 읽은 것만은 아니다. 지식의 소통이라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흘러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가졌기 때문이다.지구촌>교실이>
<교실이 돌아왔다="">는 위에 언급했듯이 2006년 1학기와 2학기에 진행한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의 자기기록이다. 선생의 정리가 아니라 학생들의 자기 체험과 선생의 메시지들이 버무려진 그러한 기록인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한혜정, 한운장, 홍아성, 김연지, 방영화, 김한솔 외 103명”이 되는 것이다. 세대론에 대한 조한의 기록들에 공감하게 된다. 그것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90년대 학번들이 자기 정체성을 못드러내 안달난 ‘X세대’ 혹은 ‘신세대’로서 수업시간에 펼쳐낸 것이 <글읽기와 삶읽기="">의 배경이었다면 지금의 2005~6학번으로 이어지는 세대는 수업에서 엄마의 영향권 아래서 고분고분하게 자라난 아이들이다. 거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로 인해 “개기면 죽는다”의 음울한 배경이 깔려있다. 제시된 문제에 대한 답을 “완결적인 글”로 표현은 잘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목소리는 없는 아이들. 논술세대이지만 그들은 입시를 위한 표준적 답안을 알 뿐이다. 조한은 짐짓 모른척하고 기다린다. “침묵이 불편하면 말을 하겠지”하고 오히려 여유만만이다. 아이들은 어떤 정답을 찾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 나름의 의미들을 수업에서 발견한다. 그 기록이다. 나름의 일머리를 통해서 조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완결되지 않은 결론에 대해 자기 의미를 다시 부여한다. 각자가 깨닫고 변화한다. 그 변화의 기록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설레는 일이고 2009년 수업조교를 맡게된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에 대한 기대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수업시간에 만날 친구들(몇 명은 아는 친구들이더라)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돌보며 독려하는 것, 너무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