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적 개념 – 조한혜정, 글 읽기와 삶 읽기 1

글 읽기와 삶 읽기 110점
조한혜정 지음/또하나의문화

사회과학에서, 특히 현실을 이해해 가려는 과정에서 ‘감을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면에서 ‘감응적 개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감응적 개념’이란 그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감으로는 알고 있으나 아직 명확한 개념 규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개념을 뜻한다. 사회과학의 발전사는 어떤 면에서 이런 감응적 개념을 보다 확실한 개념으로 풀어가는 역사이다. 그런데 기존의 교실에서는 이런 감응적 개념을 싫어한다. 그런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그런 개념을 담은 책들을 교재로 쓰지 않는다. 학생들도 이 감응적 개념을 참아내지 못한다. 불명확하게 규정된 개념에 대한 불신감은 참으로 대단하다. 확실한 것에 대한 유혹은 어쩌면 자신의 사고력에 대한 불안과 비례해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개념이란 거의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한 지성계를 생각할 때 이러한 반응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그러나 “감을 잡아가는 과정”을 않겠다고 버티는 한 우리 학문은 자라날 수 없다(p.180).

조한혜정 선생의 수업조교가 되었다. 대안적인 학습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사실 그녀의 작업은 그녀가 교편을 대학에서 잡은 순간부터 시작된 일이고 여전히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1991년 수업의 중간 보고가 <글 읽기와="" 삶="" 읽기="">이다. 마찬가지로 2006년의 수업보고, 거기에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함께 실려있다. 그게 <교실이 돌아왔다="">이다. (2009/08/27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우정과 환대의 지식 공동체 – 조한혜정 외 : 교실이 돌아왔다, 2009 )</p>

대학원에서 만난 어떤 여성주의자는 조한을 “한국의 알뛰쎄”라고 했고, 우석훈 선생은 조한을 “한국의 몇 세대 동안 나오기 힘든 대학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정확하게 명료하게 떨어지는 말인 지는 모르겠으나. 감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여전히 자신의 지적 여정을 마치지 않은 선생 밑에 약한 학생으로 남고 싶지 않다.

‘감응적 개념’ 이 한마디가 요즘 나의 공부를 장악하는 말이다. 구체적인 나의 상황,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토대로 개념은 움직여야 하고 지식인 소매상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리의 맥락에 끌어들여와 이야기해야 한다. 지식체계를 그대로 외부에서 들여오는 것은 다시금 남들의 나름의 질서를 우리의 세계에 그대로 주입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991년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차분히 선생님과의 작업을 하는 것이 즐겁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