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쓴 논문 – 초국적 사회운동 연구를 위한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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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쓴 논문이다. 국제정치경제학(IPE)에서 국제정치학(IR)으로, 그리고 또 사회운동론으로 문화연구로 내려오게 된 계기들을 발견한다. 쓰던 당시에는 네그리/하트 Antonio Negri and Michael Hardt와 로버트 콕스Robert W. Cox에 미쳐있었다.

국제정치학의 양대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현실주의Realism과 자유주의Liberalism의 구도 하에 맑스주의를 위시한 구조주의Structualism과 틈새 시장을 공략하던 구성주의Constuctivism이 펼쳐진 양상이었다. 각 입장의 배분을 보자면 현실주의 50%, 자유주의 30%, 구조주의 15%, 구성주의 5% 정도의 입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국에서는 85:10:2:3 정도인 것 같다.) 내 입장은 구성주의적 맑스주의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었다. 현실주의의 꼰대 舊현실주의자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나 말 장난 잘하는 新현실주의자 케네스 월츠 Kenneth Waltz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둘 다 싫었으되 월츠의 구조주의적 맥락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국가들의 협의들을 통해서 뭔가 될 것처럼, 기구를 잘 세우면 될 것처럼 이야기했던 로버트 코헤인Robert Keohane과 조지프 나이Joseph Nye의 자유주의 모두 싫었다. 다이나믹스가 없었다. 세상은 어차피 짜여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꼰대들의 시선과, 착한척 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구들만 세워놓고 거기와서 이야기하자는 자유주의자들의 위선도 꼴보기 싫었다.

맑스주의의 공리는 인정하지만 역시 사회경제적 맥락의 토대의 변혁만을 이야기하는 구좌파 구조주의자들의 국제정치도 세상의 변화를 말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구성주의자들이 유연해 보였으나 얘들은 모든 게 협상으로 열리고 그 열린 세계의 인식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낙관론에 빠져있었다.

따라서 물적토대의 탈근대적 맥락을 강조하고 그러면서도 구성주의적인 담론 게임을 알고, 또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적 맥락을 걷어차 버린 네그리와 하트의 주장에 동의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다만 당시를 회고해보자면 그 때는 뭔가 세련된 이론이 나오면 거의 교조적으로 빨려들어갔던 것 같다. 이 논문은 그 교조성에서 빠져나와 이론들을 재평가 해보자는 시도였고 군대를 가기전에 내가 하고싶은 일(변혁)을 이론적 층위에서 어디에 있는 지 위치지어보려는 시도였다.

Antonio Negri

지금 보면 엉성하지만 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