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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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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 ![]() 류승완 |
류승완의 영화의 영화들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면서 본 적은 없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보면서도 그랬고 <다찌마와 리="">를 보면서도 마찬가지. 이번에도 별 생각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p>
지방에 밀어닥치는 서울의 부동산업자들과 결탁한 개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다. 거기에는 한탕 챙기려는 부동산 업자들도 있고, 서울의 업자들의 뒤를 봐주며 작업하는 건달들도 있고, 지역사회에서의 특징들은 묘하게 감정선을 타고 흐른다. 어렸을 적 꼬붕노릇하던 녀석의 열등감이 불을 붙였을 수도 있다. 그러한 미묘한 감정들이 터지는 순간은 아마 새만금에서도, 경주에서도, 그리고 지금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서도 계속 벌어지고 있을 거다.
특별한 정의감 때문에 복수가 펼쳐지지 않는다. 복수는 한 복수 행위의 복수일 따름이다. 모두 죽어서 복수가 종결된다. 그 때 해방감은 없다. “아, 씨발” 밖에 외칠 말이 남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 순간에 울었다면 이 액션 영화는 3류가 될 뻔 했으나 류승완은 툭 뱉는 “아, 씨발”로 끝맺는다. 본인의 입으로. 지방의 사람들은 더 붕괴하지 않는다. 그냥 욕을 읊조릴 따름이다.
영화의 공간 온성은(아마 온양일까?) 농촌이 아니다. 작은 소도시이다. 농촌의 배경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군이나 시에서 조성했을 로데오 거리가 있고 그 거리에는 브랜드 패션 샵이 있고, 그 거리에서 아이들은 서울의 아이들처럼 춤추고 놀고 담배피며 놀고 술마시며 논다. 단지 서울과 다른 건 2000년대의 지금 서로 엮여서 네트워킹 되는 ‘연고’가 있다는 것 하나 뿐이다. 그 ‘연고’는 한동안 토호랑 결탁하는 방향들로 흘러갔던 것 같고 그 앞 선에 10대가 동원되는 설정은 너무나 아프다. 지방의 10대에게 주어진 상황이 서울보다도 더 열악할 수 있다는 은유로 들린다. 소비는 아이들을 더 착취의 사슬로 몰아가는 것만 같다.
<짝패>의 온성에서는 그래도 토호의 꼬붕도 죽고 그 편도 다 죽고 끝나지만, 다른 곳들의 싸움은 판판히 토호들과 서울의 땅주인들이 이겨온 것 같다. 60대 농촌 청년회장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듯하다. 버려진 공간은 토호들의 ‘미개척지’로 다가온 것 같다. 땅을 빼앗기고 땅의 정령의 저주를 받고 있는 쌓여있는 시체들의 원한이 울려온다. </p>
지금 이 순간 난 누구의 시체를 밟고 서 있는 것일까.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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