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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소금 꽃나무 (2007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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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 ![]() 김진숙 지음/후마니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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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사회과학도랍시고, 길거리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또한 함께 뛰어다니며 따라다니곤 했었고, 그들이 집어주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다 읽어대곤 했었다.
누군가 당시 나에게 주던책은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었다. 어떤 시골의 한 어린 아이(당시 내 기준으로도 전태일은
나이를 먹으면서 냉소적이 되어간다. 한편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 그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의지를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왜 노동운동가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그리고 2부의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동운동이
한참동안이나 읽는 이를 괴롭히면서 읽게하는 부분은 3장, 4장, 5장의 이야기다. 김주익에게 보냈던 추모사나, 그녀의
…
노동의 기록은 지금까지 어쩌면 남성의 기록으로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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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다.)가 생존을 위해서 70년대 자본주의의 현장으로 뛰어나와 세상에 조응하지 않고 결국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극한적인 상황에 부딪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편의 불편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평전’은 나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한쪽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세상에 대한 반격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가능이나 하겠어?” 하는 비관적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냉소로 풀기 시작한지도 이제 꽤 되어가는 것 같다.
보내는 그녀의 ‘그러지 말자’고 외치는 편지이다. 서문에서도 인정했듯이, 이 책에 나오는 말들은 종종 철자법도 심하게 어긋나고,
그냥 읽는 대로 말하는 데다 그것도 사투리를 그대로 옮겨 놓아 무슨 말인지 한참 생각해야 할 정도인 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그녀와의 대화를 반드시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1부와 마지막의 이야기(사실 붙여놓아도 무방하겠지만 읽다가 다시금 그녀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에서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한국 자본주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이해하겠다는 학자연하는 이야기(어쩌면 좌파들의 굉장한 나르시즘)를 떠나 가슴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금 공감할 수 있다.
무너져가고 있는 이 시점 그들은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삶의 결에서 나타나는 흠결들을 그녀
나름대로 비판하면서도 그것들에 대해서 어떠한 미움을 갖기 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문제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가족사를 작금의 세태와 연관하여 읊어주는 그녀의 글들은 나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편하게 만들고 또 한편의 분노를 계속 품게끔
만들었다.
한국사회에서 쓰여있었는 지 모른다. 은연중에 우리는 노동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로만, 피의 역사로만 기억했는 지 모른다. 물론
‘소금꽃나무’의 역사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녀가 보여주는 글 쓰기는 우리의 일상의 섬세함을 비추어 줄 수 있는
노동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녀는 반성이라 이야기했지만, 그건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자의 반성이 되어야하고 또한 우리의 미래를
다시금 노동의 승리의 역사에서 바라보려는 ‘오래된 미래’를 그리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소금꽃나무 –
김진숙 지음/후마니타스